지난달 31일(현지시간) 이틀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제4차 핵안보정상회의가 막을 내렸다.
2009년 취임 첫해 '핵없는 세상'을 슬로건으로 시동을 걸었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최대 외교 이니셔티브가 역사적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2010년부터 격년 단위로 열려온 핵안보정상회의는 애초부터 이번 4차 회의를 마지막으로 상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개인적 어젠다 성격이 강해 오바마 행정부 임기까지만 한시적으로 개최한다는 국제사회의 컨센서스가 형성돼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이번 회의를 끝으로 '핵안보'라는 국제안보 분야의 새로운 레짐을 구축하는 업적을 이뤘다고 볼 수 있다.
비핵화와 비확산의 관점을 넘어 테러리스트들의 손에 핵물질 또는 '더티 밤'(Dirty Bomb.방사성 물질을 이용한 테러용 폭발물)'을 손에 넣지 못하도록 국제사회의 협력 시스템을 만들고 일정한 수준의 공동 노력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핵안보정상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지금까지 국제사회의 공동 노력으로 인해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와 같은 테러리스트들이 핵무기나 방사성 물질로 만들어진 더티 밤을 획득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백악관이 내놓은 현황자료에 따르면, 2010년 4월 첫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린 이후 지난 6년간 30여 개국이 50개 이상의 핵시설에서 핵무기 전용 가능성이 있는 고농축 우라늄(HE)과 분리된 플루토늄을 제거 또는 희석시켰다.
이는 13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의 핵물질이다.
우크라이나가 2012년 4개 핵무기 분량의 HEU를 제거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가운데 대만을 포함한 15개국은 자국 영토 내에서 모든 핵물질을 포기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핵물질의 불법거래에 대한 국제적 공조와 협력체계도 강화됐다.
300여 곳의 공항과 부두에는 핵탐지 장비가 설치됐다.
이번 회의에서도 주목할 성과가 있었다.
일본은 500㎏의 HEU와 분리된 플루토늄을 제거하고 이를 미국에서 희석해 민수용으로 쓰거나 궁극적으로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단일국가로는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핵물질 제거 프로젝트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외교적 치적을 마무리한 오바마 대통령의 심경이 편치만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4차에 걸친 핵안보정상회의가 핵안보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경종의 역할은 했지만, 실질적으로 핵물질을 감축하거나 제거하는 데에는 의미 있는 진전을 거두지 못했다는 비판론이 미국 안팎에서 나오고 있어서다.
패트리카 루이스 채텀하우스 국제안보연구원은 AFP 통신에 "당초 핵안보정상회의는 모든 핵물질 재고를 폐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며 "그러나 실제로 폐기된 것은 민간에서 쓰이는 소규모 핵물질뿐이었다"고 지적했다.
한 외교소식통은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제시된 목표들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라고 설명했다.
특히 지구상에는 여전히 2천 메트릭톤(1천㎏을 1톤으로 하는 중량단위)에 달하는 핵물질이 제대로 된 안전규제나 감독체계 없이 소홀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극단주의 수니파 이슬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와 같은 테러리스트들이 이 같은 핵물질 획득을 기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핵 테러리즘의 위험성은 더욱 높아진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핵물질을 관리하고 감축·제거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돼야할 러시아가 이번 회의에 불참하면서 회의 자체의 의미가 크게 퇴색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기존 3차례의 정상회의에는 참석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를 놓고 오바마 대통령과 대립한 끝에 이번 회의에는 불참했다.
이번 회의의 빛을 바라게 한 또 다른 '훼방꾼'은 북한이다.
지난 1월 4차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이 이번 회의를 앞두고 계속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면서 미국의 동맹들을 향해 공공연히 핵공격 위협을 가했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은 핵안보의 주 타깃인 테러단체는 아니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핵없는 세상' 구상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더 큰 문제는 내부, 즉 미국의 국내 정치다.
핵안보가 오바마 대통령의 개인적 어젠다라는 점에서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정책적 뒷받침이 계속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특히 공화당의 선두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한국과 일본에 핵무장을 용인해줄 수 있다는 발언을 꺼내 이번 회의에 찬물을 끼얹었다.
트럼프의 공약이 반드시 정책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집권할 경우 오바마 대통령의 핵안보 이니셔티브가 퇴색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핵안보를 둘러싼 최대의 문제점은 아직도 대다수 국가의 정부 관리와 국민이 핵 테러리즘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데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날 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 IS가 벨기에 핵 과학자의 활동을 비디오로 촬영한 사례를 거론하며 "IS 미치광이(madmen)들이 핵물질이나 더티 밤을 손에 넣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오바마 '핵안보 이니셔티브' 마무리…北·푸틴·트럼프로 얼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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