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선거 문자 폭탄'…당신의 휴대전화로 쏟아지는 이유

[취재파일] '선거 문자 폭탄'…당신의 휴대전화로 쏟아지는 이유
저도 많을 때는 하루 10통도 넘게 받았습니다. 선거 홍보 문자 말입니다. 열심히 수신을 차단했지만, 어제(24일)도 "후보 등록을 했고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전국 각 지의 선거 캠프에서 네 통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국회를 잠깐 출입했던 적이 있어 각 정당에 번호가 넘어갔을 것이고, 한 번호를 10년 넘게 썼으니 여러 곳에 노출됐을 가능성도 있어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선거 홍보 문자로 짜증을 호소하는 시민이 주변에 예상 외로 많았습니다. 일상에 방해가 되는 수준의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 "수신 동의한 적도 없고, 지역구도 아닌데…"

취재과정에서 만난 34살 직장인 손호원 씨는 "전화기를 던져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선거 홍보 문자에 시달렸던 겁니다.

손 씨가 받은 선거 홍보 문자는 하루 평균 5~6개. 주중이나 주말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문자 수신에 동의한 적이 없던 손 씨. 자신의 지역구가 아닌 다른 선거구에서 오는 문자엔 더 화가 났다고 합니다.

한번은 고객사를 상대로 프리젠테이션을 하던 중 사달이 났습니다.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연동해 프리젠테이션을 하다 선거 홍보 문자가 날아온 겁니다. 프리젠테이션은 중단됐고, 고객사 관계자는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상사에게 따끔하게 혼이 난 건 물론입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 손 씨는 그날 저녁 메시지에 표시된 수신 거부 버튼을 눌렀습니다.

산 넘어 산. 수신 거부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동응답기와 승강이를 해 가며 겨우겨우 수신 거부에 성공했지만, 도로 아미타불이었습니다. 같은 캠프에서 다른 번호로 문자가 다시 날아오기 시작한 겁니다.

선거 때마다 이런 식의 문자 공해가 문제가 되긴 했지만, 이번엔 좀 심각해 보입니다. ▶ 마구잡이 선거홍보 문자…번호는 어떻게 알고? 기사가 링크된 SBS 페이스북 페이지의 댓글만 봐도 분위기를 알 수 있습니다.

"전 울산 00에서 자꾸 이런 문자가 오더라고요. 저는 다른 곳으로 이사 갔는데"
"저는 미성년자인데 문자가 옵니다. 스팸 등록을 해도 또 오더라고요"
"제주도는 졸업 여행밖에 안 가봤는데, 제주도 후보들로부터 문자가 옵니다"


● 선거철마다 번호 확보 '혈안'…해킹 정보 거래도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어떻게 유권자의 휴대전화 번호가 선거캠프로 넘어가는지부터 따져봐야 합니다.

가장 일반적인 경우는 해당 지역의 주요 인사들이 선거 캠프로 지인들의 번호를 가져다 주는 겁니다. "돕고 싶다"며 줄을 서는 것인데, 이들이 들고 오는 지역구 유권자 휴대전화 번호는 캠프 입장에선 유용한 자료가 됩니다. 선(選) 수가 높을수록 이런 식으로 확보할 수 있는 번호가 많다고 합니다.

발로 뛰기도 합니다. 선거 캠프 관계자가 일일이 지역구 아파트 주차장을 돌며 차량에 적어둔 번호를 수집하기도 하고, 지역구 내 학교의 졸업 앨범을 구하기도 합니다.

한 표가 아쉽다 보니 번호 확보 전쟁은 더 치열해집니다. 이 과정에서 브로커가 등장합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사례 가운데 상당수가 이런 경우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대리운전 업체나 택배 회사 등을 통해 연락처를 확보한 뒤 돈을 받고 선거 캠프에 넘깁니다. 해킹을 통해 중국으로 유출된 개인정보가 건당 20~30원에 거래된다는 사실도 취재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해당 개인 정보는 휴대전화 번호 주인의 거주지까지 기록된 것도 있을 정도로 상당히 자세합니다. 선거에 처음으로 뛰어 든 정치 신인이나, 지지기반이 약한 무소속 후보들이 이런 정보를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런 식의 개인정보 거래는 엄연한 불법입니다. 하지만 사실상 수사가 어렵기 때문에,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
● 20건씩 나눠 반복적으로 발송

선거 홍보 문자를 뿌리는 과정에도 꼼수가 숨어 있습니다. 현행 공직선거법 59조에 따르면 대량 문자 발송은 선거 기간 내 5번만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기준이 문제입니다. '대량' 이라는 게 20건을 초과한 경우에만 해당됩니다.

반대로 말하면, 20건 까지는 무제한으로 보내도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뜻입니다. 유권자들이 선거 문자 공해에 시달리는 건 이런 허점 때문입니다.

선거는 시간과의 싸움이라, 문자를 뿌리기 위한 다양한 방법도 동원됩니다. 전용 전화기가 대표적입니다. 10만 원을 내면 전화기 한 대를 빌릴 수 있는데, 버튼을 한번 누를 때마다 저장된 전화번호로 20개씩 문자가 발송됩니다.

일부 선거 캠프 관계자들은 선거 기간 휴대전화 수십 대를 개통해서 '20개'씩 문자를 종일 보내기도 합니다. 유권자들이 당해낼 수가 없겠죠.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선거법엔 문자를 보낼 땐 반드시 수신 거부 방법을 고지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수신 거부를 요구했는데 문자를 다시 보내면 그땐 선거법 위반으로 처벌 받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이유들 때문에  유권자에겐 효과적인 수단이 되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 "개인정보 하찮게 여기는 후보, 국민의 대표 자격 없어"

선거에 나선 국회의원 후보들이 문자 메시지에 집착하는 이유는 짧은 시간에 수많은 유권자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버튼 하나 누르는 것만으로 수많은 사람의 휴대전화에 자신의 이름과 공약을 심을 수 있는 거죠.

여러 선거를 치른 전직 보좌관은 "홍보물은 아무리 나눠줘도 읽지 않고 버린다. 반면 문자 메시지는 알림이 들어오기 때문에 반드시 열어는 본다. 후보가 각인되는 효과가 있다"고 말합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런 문자 폭탄을 막기 위해 국회에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선관위 홈페이지에 유권자가 자신의 번호를 등록하면, 후보들이 문자 메시지를 보낼 수 없게 하는 게 핵심입니다.

하지만 여야가 논의를 미루면서 국회 정치개혁특위에 계류돼 있습니다. 개정의견을 제출한 선관위 조차도 하루 몇 명의 시민이 선관위에 항의 전화를 하는지 집계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몇몇 선관위 관계자는 "선관위가 아니라 후보자에게 직접 전화해 항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여야의 외면과 선관위의 무관심 속에 유권자들은 선거 문자 공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유권자들의 개인 정보누출과 불편을 하찮게 여기면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모순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