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일반 소비자들, 국민들은 가만히 있는데 기업들이 난리다. 초저유가를 향유하는 일반 소비자들은 전기 값이 그리 비싸지 않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교통비에 식료품 가격 등 대부분 생활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데 에너지 가격이라도 싸니 즐겁지 아니할 수 없다.
소비자들에게 또 하나 즐거운 소식이 있다. 단기적으로 기름 값이 오를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에너지 가격은 갈수록 싸질 것 같다는 것이다. 2030년 이후에는 거의 무료로, 아니 일부 가정에서는 오히려 돈을 받고 전기를 쓸 수 있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교수 토니 세바가 ‘에너지 혁명 2030(원제 : ’Clean Disruption of Energy and Transportation‘)에서 전망하는 미래상이다. 토니 세바는 태양광 발전과 전기자동차, 무인자동차가 에너지와 운송 분야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와 석유시대(Oil Era)는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석유나 석탄, 원자력 같은 전통 에너지 신봉자들은 말도 안 되는 꿈에 불과하다고 일축하지만, 토니 세바의 믿음은 확고하고 논리정연하다. 전통 에너지 신봉자들의 말은 기존 에너지 메이저들의 로비로 오염된 사람들의 구차한 논리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기술 발달로 태양광을 받아 전기로 전환하는 에너지 효율이 급속도로 향상되고, 태양광 전지판의 가격도 1970년 W당 1백 달러 수준에서 2013년 65센트 아래로 내려 왔다. 30여 년 동안 150배 이상의 효율이 향상된 것으로 18개월마다 메모리 반도체의 성능이 2배 향상된다는 ‘무어의 법칙’이 태양광 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W당 태양광 패널 가격은 2012년 말 50센트까지 떨어졌고, 내년에는 36센트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20년에는 이 태양광 패널의 가격이 W당 25센트 이하가 될 것 이라는 토니 세바의 예측보다 더 빨리 성능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토니 세바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팔로 알토시가 앞으로 25년 동안 KWh당 6.9센트에 태양광 전력을 받는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말한다. 이는 2013년 미국 가정의 전기료 KWh당 12.5센트의 절반 수준이다. 2020년에는 태양광 발전소들이 KWh당 3.4 센트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 네바다주 사막에 일본 파나소닉과 함께 세계최대 배터리 공장 ‘기가 팩토리’를 짓고, 전기자동차 가격을 30% 이상 낮추겠다고 밝혀온 테슬라의 말이 사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뉴욕 맨하탄에는 이달 말부터 주유소보다 3배나 많은 105개의 테슬라자동차 급속 충전소가 설치 운영된다고 한다. 3개 블록마다 하나씩 설치된 이 급속 충전소에서 1시간 정도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무료로 연료(전기)가 채워지는 데 여기에 대적할 가솔린 또는 디젤 자동차가 있을까?
미국 가정이 한 달에 쓰는 전기는 900KWh 정도, 하루 평균 30KWh이다(한국은 한 달에 400 KWh). 전기차의 배터리 용량은 이미 한 가정에서 하루에 쓰는 전기의 양을 넘어선 것이다.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달아 뜨거운 한 낮에 생산한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해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태양광 패널은 20년 이상 써도 90% 이상의 성능을 유지한다고 한다. 한 번 설치로 20년 이상 에너지 비용을 추가 부담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시대, 이 태양광의 시대에 전통 에너지는 설 땅을 잃게 것이라는 전망이다.
토니 세바의 예측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엔진과 미션, 냉각기 등이 필요 없는 전기차가 확산하면 에너지 효율이 네 배 이상 높아지는 것은 물론 차량의 유지보수비도 제로에 가까워진다.
닛산과 벤츠, BMW 등 자동차 업계가 공언했듯이 2020년 무인자동차까지 상용화되면 차량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만 불러서 타는 시대가 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자동차 판매는 최대 15분의 1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자동차 판매가 급감하고, 에너지 소비는 더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전력 생산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2015년) OECD 국가의 태양광과 풍력, 지열 발전 등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 규모는 15.6%, 104.9 TWh(테라와트시간 : 한국의 연간 발전량 규모의 5분의1) 증가했다. 같은 기간 석탄이나 석유 등 연료를 때서 발전하는 화력발전 규모는 0.9%, 56.3 TWh 감소했다. 원자력 발전은 0.5%, 수력발전도 0.8% 줄었다.
5년 전 동일본 대진에 따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경험한 일본의 지난해 신재생에너지 발전규모는 37.1%가 늘어난 38,461 GWh, 호주는 16.4%가 증가한 18,021 GWh에 달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규모는 재작년과 같은 3,792 GWh로 전체 전력생산(528,253 GWh=515 TWh)의 0.8%에 머물고 있다고 IEA는 밝히고 있다.
에너지 혁명의 무풍지대 한국의 모습은 지난해 전기자동차 판매 실적에서도 나타난다. 초저유가 속에서도 작년 미국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11만6천 대, 세계적으로는 55만대에 달한다. 같은 기간 동안 미국에서 판매된 한국산 전기자동차는 현대차 160대, 기아차 1천 대에 그쳤다.
신재생에너지의 특성은 그 양이 무궁무진하고, 추가 생산 비용이 거의 들지 않고, 생산과 유통 구조가 중앙집중식인 전통에너지와 달리 분산형 네트워크 구조로 돼 있어 배전비용이 저렴하다는 데 있다.
2040년 쯤 독일이 모든 전기를 신재생에너지 전력으로 대체하면 독일의 전력생산 단가는 사실상 제로가 된다. 추가로 연료를 투입하지 않아도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무료로 전기를 생산하고 쓰는 독일기업에 기존 전통에너지를 쓰는 국가의 기업이 경쟁할 엄두나 낼 수 있을 것인가.
석유 값이 싸고 에너지를 흥청망청 쓰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도 새로 늘어나는 전략 생산은 모두 태양광과 풍력 발전에 의한 것이다. 미국의 올해 태양광 시장은 119%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해 7.3 GW 증가했던 태양광 발전 설비 규모는 올해 16 GW가 늘고,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가정도 곧 1백만 가구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에너지가 풍부한 호주의 태양광 패널 설치가구도 1백만 가구를 넘어섰다.
태양광 전기의 가격은 이미 석탄이나 석유, 원자력 같은 전통적인 발전 비용보다 낮아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꿈처럼 여겨지던 이른바 그리드 패러티(Grid Parity)에 도달한 것이다.
영국 일간신문 가디언(Guardian)은 석탄을 무료로 공급해도 석탄 발전은 태양광 발전과 경쟁할 수 없게 됐다고 보도했다. 미국에서 화력발전소 입찰은 아예 응찰자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고 토니 세바는 말한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물론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리차드 브랜슨, 제프 베조스, 엘런 머스크 등 미국의 내놓으라하는 부자들은 마치 개척시대 미국의 이민자들이 노다지를 찾아 서부로 가듯 모두 태양광 발전 사업에 앞 다투어 뛰어들고 있다.
해외 전문가들은 “태양광 발전회사들은 내일의 엑손 모빌이 될 것이다”, “에너지 산업에 변화의 쓰나미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고 외치고 있다. 이제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는 환경을 생각해서 생산을 늘리고 활용해야 하는 에너지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꼭 필요한 깨끗하고 저렴하고 무궁무진한 에너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