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계 내부에서는 유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할 경우, 자칫 그를 정권에 맞서는 지사(志士)처럼 만들 수 있는 만큼 그가 자진 탈당하길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 의원이 탈당하기 직전, 친박계 중진인 홍문종 의원이 SBS 라디오에 출연해 “유 의원 스스로 생각하고 결단할 수 있는 선택을 줬다는 것은 특권”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무슨 뜻인지 짐작해볼 수 있다.
지난 2월부터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 출범 이후 한 달 넘게 끌어온 유승민 의원 공천 사태가 남긴 것은 무엇일까? 공천 사태를 주도해 온 당내 친박계와 이해당사자인 청와대의 득실을 위주로 살펴보자.
● 얻은 것… 공천 저지·명분 관철
당청 주류 입장에서 가장 큰 성과는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비박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각을 세웠던 유승민 의원의 공천을 막았다는 점이다. 특히 유 의원이 자진 탈당함으로써 ‘공천 보복’이 아니라는 명분도 얻게 됐다.
또 유 의원이 계속 당에 잔류했더라면 선관위 후보 등록 직전까지 공천 문제를 놓고 김 대표 등 당내 비박계와 충돌이 불가피했을 것인 만큼 큰 부담을 던 셈이다. 실제로 유 의원 탈당 다음 날, '대구 동구을'에는 별다른 마찰 없이 '진박'으로 분류되는 이재만 전 동구청장이 단수 추천됐다.
이밖에 이번 사태를 통해 “당의 정체성에 배치되는 인물은 공천하기 어렵다”고 공언한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말이 관철된 셈이어서 친박계를 중심으로 한 당청 간 내부 결속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유승민 띄워주기’는 안 된다는 친박계의 공감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는 유 의원을 새누리당 공천 논란의 핵심 인물로 만들었다. 공천 작업이 시작된 이후 그의 거취가 끊임없이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그의 인지도만 높여준 꼴이 됐다.
유 의원 지난해에도 원내대표직 사퇴 문제를 놓고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비판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과 청와대 의중에 반한 국회법 개정안 협상이 원인이었다.
논란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일련의 두 사태는 ‘정권 vs. 유승민’이라는 구도를 만들어 냈다는 평가다. 비록 원내대표를 지냈던 중진이라고는 하나 친박계 가운데 한 명에 불과했던 유 의원을, 친박계와 청와대 스스로가 정권 전체와 ‘정당성’을 놓고 다투는 인물로 키워준 셈이 됐다.
● 남은 것…‘잘해야 본전’
친박계와 청와대 입장에서 이번 총선의 가장 큰 과제는 이제 어떻게든 ‘대구 동구을’을 지켜내는 일이 됐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대구에서 무소속 출신인 유승민 의원을 이긴다고 해봐야 본전에 불과하다. 내부 단속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나 크게 자랑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반면 무소속 출사표를 던지고 어떤 권력도 국민을 이기지 못한다며 사실상 박 대통령을 정면 비판한 유 의원이 당선될 경우 친박계와 청와대의 타격은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앞서 얘기한 바로 그 이유, 즉 대구가 박 대통령의 가장 확고한 지지기반이기 때문이다.
사실 유승민 의원 한 사람 공천했다고 해서 친박계와 청와대가 입는 타격이 얼마나 됐을지 의문이다. 이미 ‘유승민계’로 분류되는 상당수 인사들이 낙천했고, 당내 친박이 주류인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역할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친박계와 청와대가 ‘불필요한 위험’을 자초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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