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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취업하려면 '성형하고 싶은 신체부위' 써라?

한 지방대의 ‘이상한 이력서’와 어떤 ‘불감증’에 대하여

[취재파일] 취업하려면 '성형하고 싶은 신체부위' 써라?
● 참 별 게 다 궁금한 교수님

‘당신의 태몽은?’ ‘돌날 잡은 것은?’
‘허리 사이즈는? 목, 상의 사이즈는?’
‘당신의 미의 기준?’ (1~5순위로 표기)
‘잘 생긴 신체부위는?’
‘신체 중 성형하고픈 부위?’ (어떻게)


참 별 게 다 궁금하다는 이 질문들, 정체가 뭘까요? 한창 유행하던 싸X월드 백문백답? 아닙니다. 스무고개도 아닙니다. 충북에 있는 한 대학 수업에서 1학년들에게 나눠주는 이력서(신상명세서)의 항목입니다. 처음 이 이력서를 받아들었을 때는 장난인 줄 알았습니다. “이게 뭐야?”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습니다. 당직을 마치고 한달음에 달려가 만난 한 학생의 말은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써라.”

문제의 이력서는 이 대학 방사선학과 ‘진로와 취업설계’라는 수업에서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이력서입니다. ‘16학번’ 신입생들은 이 수업 담당교수인 윤 모 교수로부터 이력서를 ‘반드시, 꼼꼼하게’ 써 내라는 과제를 받았습니다.

불쾌감을 느낀 몇몇 학생이 ‘신체부위 같은 것까지 왜 써야 하느냐’고 묻기도 했지만, 답변은 막무가내였습니다. 욕설과 함께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쓰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교수가 말해준 단 한 가지 이유는 “너희의 미래를 위해서”였습니다. 나중에 취업을 할 때 면접관들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으려면 이런 세세한 내용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취재를 하면 할수록 “이런 교수가 아직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렵사리 한 학생에게서 수업 내용을 녹취한 음성 파일을 받아 들어봤습니다. 거짓말 안 보태고 수업의 절반 가까이가 육두문자와 비속어 투성이인 ‘방송불가’ 수준이었습니다. 방송에 낸 부분은 그나마 문장이 5초 이상 이어질 수 있는, 가장 깨끗한 부분이었습니다. (삐~만 계속 내보낼 수는 없으니까요.) 윤 교수는 자신의 강의 스타일을 이 한 마디로 정리해줍니다.

 “너희는 인권이 없다. 너희는 망신을 당하면서 배우는 거다. 이제 그렇게 배우면 절대 각인되어서 잊어버리지 않으니까. 이게 내 교육 방식이고 그냥 망신을 당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너희를 존중해주지 않을 거다”

 나아가 성적(性的)인 발언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성인이 다 된 남학생, 여학생 수십 명을 앞에 두고 분자의 +, - 성질을 성관계에 비유하는 부분은 백 번, 아니 천 번쯤 양보해서 그렇다 칩시다. 방송 리포트에 차마 쓰지 못했던 몇 가지만 소개해 볼까요?

 “너 가운뎃다리(성기를 지칭) 잘 생겼냐? 한번 보여줘봐라” (남학생 몸을 더듬으며)

 “네가 방사선사가 되잖아? 좋아하는 여자가 환자로 와. 그런데 환자는 가운 안에 아무 것도 안 입고 있고 네가 다리를 벌리라면 벌려. 이런 거 때문에라도 취업을 꼭 해야 되지 않겠냐?”


 어떻습니까. 스무 살 대학생, 그것도 여대생들이 듣기에 과연 적절한 말입니까?

▶ "잘생긴 신체부위"…대학교의 이상한 '이력서'

● 여전히 침묵을 강요하는 캠퍼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학생들은 심한 모욕감과 성적 수치심에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저 단순히 기분이 나쁜 정도가 아니라, 자괴감까지 느끼고 있었습니다. “수업을 듣는 두 시간 내내 모욕감을 느끼고”, “부모님이 주신 비싼 등록금으로 학교를 다니는데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까지 다녀야하는가” 하는 생각부터 “지방대를 들어가서 이런 대접을 받나” 하는 자기비하까지, 많은 고뇌를 힘들게 털어 놨습니다.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어떤 위로를 해줘야 하나, 쩔쩔 맸던 기억이 납니다. 한창 들떠있을 16학번 ‘새내기’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부터 생기고 만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황당한 이력서를 써내고, 황당한 수업에 침묵해야 했습니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취업을 해야 하고, 학점을 위해서는 교수에게 밉보이면 안 된다는, 많이 들어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방사선학과라는 과 특성상 실기 점수가 중요하고, 나중에 취업을 위해서는 교수의 추천서도 중요하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부당한 관행들을 어쩔 수 없이 오랫동안 참고 있었습니다.


당사자인 윤 모 교수는 다른 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한 뒤 7년 동안 이 학교에서 초빙 교수 생활을 해왔습니다. 당연히 올해에만 이런 이력서를 나눠주지는 않았을 겁니다. 학교에서도 이미 이름이 높은 교수였지만(?) 침묵과 방조 속에 이런 기행이 계속 이어져왔습니다.

이번에도 몇몇 학생이 학교 측에 항의했지만 “외부로 발설하지 말라”는 함구령부터 내려왔습니다. 선배들은 후배들의 SNS를 단속했고, 교수들은 ‘학과 이미지’부터 걱정했습니다. 정작 단속하고 걱정해야 할 건 따로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 ‘같은 공간, 다른 생각’. 그들의 어떤 ‘불감증’


해명을 들으러 찾아간 학교 측의 태도도 문제였습니다. 해당 학과의 학과장은 윤 교수의 수업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황당한’ 이력서 자체에는 “무슨 문제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 개인 정보 보호라는 측면에서는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지만 학생들이 기분 나빠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는 겁니다.

신체 사이즈를 묻는 질문은 “학생들이 자기 (실험용) 가운 사이즈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물어본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해당 교수가 나이가 많고 수업방식이 옛날 방식이라 수업을 재미있게 하려고 한 것 같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대학본부 교무처장의 대답도 비슷했습니다. 해당 교수에 대한 조치와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학생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는 이력서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어보인다”는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이 대답을 듣는 순간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던 학생들의 얼굴이 스쳐갔습니다. 결과적으로, 기자는 이 해명을 들은 뒤 기사화하겠다는 마음을 단단히 굳혔습니다. 이쯤 되면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집단 의식의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네, 그럴 수 있습니다. 살아온 시대가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입장도 다르니까요. 지금 이 기사를 보는 분들 가운데서도 “저 정도는 우리 어릴 때도 많았는데” 하실 분도 많을 겁니다. 기자가 괜히 호들갑을 떠는구나 하실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중고등학교를 남자 학교로 다녔고 육군 만기제대 했습니다. 음담패설? 개인정보 침해? 익숙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한만큼 사람들의 생각도, 감수성도 바뀌었습니다. 기자 역시 혹여나 ‘오바’ 하지 않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의 이력서를 보여주고 확인을 거쳤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익숙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까지 익숙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나에게 익숙한 것들이 누군가에는 엄청난 고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게 어떤 목적이 되었든 마찬가지입니다. 입장 바꿔서 내 여자친구가, 내 딸의 문제라 생각하면 어떨까요?

기분이 나쁘고 수치스러워도 교수님한테 잘 보여야 하니까 허리 사이즈를 적어가고, ‘니들은 인권이 없다’는 소리를 들으며 수업을 듣고, 수준 이하의 음담패설을 한 학기 내내 들어야 한다면 어떨지 말입니다. 타인에게 가해지는 모든 행동과 말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 한번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요?

기자는 이번 취재를 하면서 많이 놀랐습니다. 하나의 현상을 두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건 당연하지만 이렇게도 ‘크고 높은 벽’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해당 교수(윤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끝까지 “학생들이 기분 나빠 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무덤덤하게 말했습니다. 이번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일부 학부모들이 학교에 민원을 했기 때문이지 학생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이력서는 ‘너 자신을 알라’는 뜻이었고 자신의 수업 방식은 학생들에게 친밀하게 다가가기 위함이지, 다른 의도는 전혀 없다고 윤 교수는 덧붙였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학생들에게 사과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도 윤 교수는 “사과할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보도가 나가는 날,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해당 교수를 면직 처분하고 철저한 재발 방지를 약속할 테니 다른 선량한 학생들을 생각해서라도 방송을 하지 말아달라는 학교 측의 부탁이었습니다.

그러나 앞서 밝혔듯, 이번 일은 결코 ‘이상한 교수 한 명이 벌린 일’만은 아니라는 게 저희의 결론입니다. 이런 수업방식을 알고도 7년이나 방치한 학과, 문제 제기를 받고도 ‘쉬쉬’하기에 급급했던 학교, 학생들 마음은 눈곱만치도 헤아리지 않았던 교수, 모두가 함께 빚어낸 사건이고, 모두가 공범이었습니다.

적폐(積弊)를 해소하는 데 가끔은 외부의 충격이 필요합니다. 그냥 덮고 넘어간다면 이런 이력서, 이런 교수, 또 영원히 고통 받는 학생들, 분명히 또 나올 겁니다. ‘뉴스 잘 보시고, 좀 아프더라도 이걸 계기로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해 달라’는 말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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