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앞바다에서 김주열 열사가 떠오르는 순간 그는 다시 태어난 겁니다. 고작 17살 소년 때문에 4·19혁명의 막이 올랐으니까요." 20년 가까이 김주열 열사의 자취를 더듬으며 공적을 연구해 온 한병옥(72) 김주열 열사 기념사업회 제전위원은 김 열사의 '존재 의미'를 떠올리며 힘줘 말했습니다.
김 열사는 남원농업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한 학기 만에 그만두고 경남 마산상업고등학교에 입학원서를 냈습니다.
1960년 3월 10일 입학시험을 보려고 마산에 왔던 김 열사는 마산에 도착한 지 엿새 만에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마산 1차 의거에 참여해 경찰과 충돌했습니다.
그의 나이 17살, 마산상고 합격자 발표를 하루 앞둔 때였습니다.
이날 이후 행방불명된 김 열사는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발견됐고, 흥분한 시민은 부정선거와 경찰의 만행을 규탄하며 4·19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민주화 열사로 기억되는 김 열사는 생전에 동정심이 많고 국어교사를 꿈꾸던 꿈 많은 평범한 소년이었습니다.
김 열사와 동향이면서 또래인 한 위원은 "중학교 학생기록부를 보면 김 열사의 장래희망이 '중학교 국어교사'로 나온다"며 "항상 전교에서 5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하고 똘똘한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습니다.
유족들은 그를 동정심이 많고, 심성이 곧은 사람으로 기억했습니다.
김 열사의 조카인 김윤식(69)씨는 "김 열사는 못 먹고 못 배우던 시절에 동네 아이들을 모아 자신의 집에 '복습방'을 만들고 가르쳤다"며 "자신이 먹기에도 부족한 식량을 굶주리던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따듯한 사람"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동향 사람과 유족들은 평소 올곧았던 심성 때문에 그가 갓 도착한 타향에서도 불의에 항거한 시위대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 위원은 "국어교사가 꿈이었던 김 열사 대신 제가 중학교 국어교사로 퇴직했으니 그의 자리를 내가 꿰찬 것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라며 "그 꿈 많던 소년은 생전 처음 가본 마산에서 정권의 부정을 타도하려고 혈기왕성한 젊음을 바쳤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김 열사의 죽음이 발단이 돼 시작한 4.19혁명이 독재정권을 무너뜨렸으니 그는 마산 앞바다에서 다시 태어난 셈"이라며 "민주주의라는 큰 유산을 남긴 그의 숭고한 정신을 후대가 잊지 않고 이어가길 바란다"고 바람을 전했습니다.
"잊을 수 없는 그날의 기억" 민주화 불씨 지핀 김주열 열사
마산 도착 엿새 만에 3.15부정선거 항거…고향 남원서 56년째 추모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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