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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그날의 기억" 민주화 불씨 지핀 김주열 열사

마산 도착 엿새 만에 3.15부정선거 항거…고향 남원서 56년째 추모 이어져

"잊을 수 없는 그날의 기억" 민주화 불씨 지핀 김주열 열사
"마산 앞바다에서 김주열 열사가 떠오르는 순간 그는 다시 태어난 겁니다. 고작 17살 소년 때문에 4·19혁명의 막이 올랐으니까요." 20년 가까이 김주열 열사의 자취를 더듬으며 공적을 연구해 온 한병옥(72) 김주열 열사 기념사업회 제전위원은 김 열사의 '존재 의미'를 떠올리며 힘줘 말했습니다.

김 열사는 남원농업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한 학기 만에 그만두고 경남 마산상업고등학교에 입학원서를 냈습니다.

1960년 3월 10일 입학시험을 보려고 마산에 왔던 김 열사는 마산에 도착한 지 엿새 만에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마산 1차 의거에 참여해 경찰과 충돌했습니다.

그의 나이 17살, 마산상고 합격자 발표를 하루 앞둔 때였습니다.

이날 이후 행방불명된 김 열사는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발견됐고, 흥분한 시민은 부정선거와 경찰의 만행을 규탄하며 4·19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민주화 열사로 기억되는 김 열사는 생전에 동정심이 많고 국어교사를 꿈꾸던 꿈 많은 평범한 소년이었습니다.

김 열사와 동향이면서 또래인 한 위원은 "중학교 학생기록부를 보면 김 열사의 장래희망이 '중학교 국어교사'로 나온다"며 "항상 전교에서 5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하고 똘똘한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습니다.

유족들은 그를 동정심이 많고, 심성이 곧은 사람으로 기억했습니다.

김 열사의 조카인 김윤식(69)씨는 "김 열사는 못 먹고 못 배우던 시절에 동네 아이들을 모아 자신의 집에 '복습방'을 만들고 가르쳤다"며 "자신이 먹기에도 부족한 식량을 굶주리던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따듯한 사람"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동향 사람과 유족들은 평소 올곧았던 심성 때문에 그가 갓 도착한 타향에서도 불의에 항거한 시위대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 위원은 "국어교사가 꿈이었던 김 열사 대신 제가 중학교 국어교사로 퇴직했으니 그의 자리를 내가 꿰찬 것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라며 "그 꿈 많던 소년은 생전 처음 가본 마산에서 정권의 부정을 타도하려고 혈기왕성한 젊음을 바쳤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김 열사의 죽음이 발단이 돼 시작한 4.19혁명이 독재정권을 무너뜨렸으니 그는 마산 앞바다에서 다시 태어난 셈"이라며 "민주주의라는 큰 유산을 남긴 그의 숭고한 정신을 후대가 잊지 않고 이어가길 바란다"고 바람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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