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이창호 작전'도 실패

인공지능 알파고와 두 번째 대결에 나선 이세돌 9단을 보며 유창혁 9단은 "이세돌이 오늘은 이창호처럼 두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평소 이세돌 9단 답지 않게 안정적이고 신중함으로 무장한 모습에 깜짝 놀란 것입니다.

그러나 이세돌 9단의 회심의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세돌 9단은 오늘(10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5번기 제2국에서 알파고에 211수 만에 백 불계패를 당했습니다.

어제에 이은 2연패입니다.

알파고의 놀라울 정도로 치밀한 수읽기가 이세돌 9단을 당황케 했습니다.

이세돌 9단이 변칙적인 수로 도발해도 알파고는 기계답게 전혀 흔들리지 않고 냉철하게 대응했습니다.

그러다가 허를 찌르는 승부수(백 102수)로 이세돌 9단을 무너뜨렸습니다.

이세돌 9단은 알파고 공략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저돌적인 이세돌 9단과 상반된 기풍을 가진 '돌부처' 이창호 9단의 모습이 떠오를 만큼 신중 모드로 돌아섰습니다.

바둑 국가대표팀 감독인 유창혁 9단은 대국 현장에서 한국어 공개 해설하며 "이세돌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것 같다"며 "보통 때보다 생각이 많아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알파고는 예상을 뛰어넘는 변칙적인 수를 놓고, 싸움을 먼저 거는 등 도발적인 바둑을 뒀습니다.

그러나 이세돌 9단은 응징하지 않고 안정을 추구하는 듯 두터운 바둑으로 일관했습니다.

유창혁 9단은 "이창호는 전성기 때 '너무 참는다'는 말을 들었다"며 "이세돌은 이창호와 정반대인데 오늘은 이창호처럼 두고 있다. 돌들이 빈틈이 없다"고 해설했습니다.

이세돌 9단과 절친한 관계인 박정상 9단도 "그 말이 딱 맞다"며 "원래는 기세를 중시하며 상대를 강하게 압박하는 게 이세돌이지만, 오늘은 평소 이세돌답지 않게 신중하다"고 관전평을 남겼습니다.

유창혁 9단은 "이세돌이 상대인 알파고를 많이 의식하는 것 같다"며 "어제는 이세돌이 심리적으로 무너졌다. 오늘은 그런 부분을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전은 부메랑으로 돌아왔습니다.

너무 신중했던 이세돌 9단은 제한시간 2시간을 모두 쓰고 초읽기에 몰렸습니다.

초조하게 끝내기를 이어가던 이세돌 9단은 형세를 뒤집지 못하고 패배를 인정해야 했습니다.

또 지나치게 안정을 추구하느라 주도권을 가져올 타이밍을 놓치기도 했습니다.

이세돌 9단은 초반 알파고가 약해진 틈을 재빨리 찌를 수 있는 상황에서도 두터움을 유지했습니다.

프로기사들은 이세돌 9단이 좀더 빨리 공격했어도 좋았겠다고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유창혁 9단은 "상대 빈틈이 있으면 과감하게 공격하고 적극적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너무 안전하게 간 것이 패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세돌 9단은 중후반에 강수를 빼들기도 했지만 실패로 돌아가면서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알파고의 대마 공격에 이세돌 9단은 좌상중앙의 다섯 점을 떼주고 우상귀 흑집을 도려내는 바꿔치기를 감행했습니다.

그러나 소득 없이 오히려 반상의 형세는 갑자기 알파고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결국 이세돌 9단은 이틀 연속 '무형의 기계' 알파고의 존재를 너무 의식해 심리전에서 패했습니다.

이세돌 9단의 스승 권갑용 8단은 "이세돌은 쫓기는 상황에서 자기 자신과 싸움을 했고, 알파고는 소리없이 쫓아와 이세돌을 덮쳤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