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문득 저 앞 도로 위에 놓여있는 무엇인가가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 식별하기에는 조금 먼 거리였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자 모습이 드러났다. 사람이었다. 차로 한가운데 웬 남성 한 명이 주저앉아 있었다. ‘큰일 났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차량 몇 대가, 빠른 속도로 남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앞선 차량 한 대가 덜컹하더니 2~30m 앞에서 멈췄다. 조금 뒤에 떨어져서 달리고 있던 고 경장도 따라서 차를 세웠다. 사람이 치인 것이 분명했다. 앞차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쓰러진 사람을 확인할 것으로 생각하고 고 경장도 따라서 내릴 준비를 했다. 퇴근은 했지만 교통경찰로서 초동 조치를 할 참이었다.
그 때, 약 15초 정도 잠시 멈췄던 사고 차량이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는 냅다 앞으로 달렸다. 고 경장의 머리에 직감적으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스쳤다. 풀었던 안전벨트를 다시 메고 액셀러레이터를 밟기 시작했다. 캄캄한 밤에, 비도 오고 한적한 외곽도로라 목격자도 없을 것 같았다. 차량에 블랙박스도 없었다.
지금 놓치면 잡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운전대를 놓지 않은 채로 112에 전화를 걸어 상황과 도주차량의 차종, 차량 번호와 색깔을 불러준 뒤 자신은 2km 남짓을 계속 쫓아가 사고차량을 따라잡았다. 한쪽 창을 내리고 차를 세우라고 외쳤다. “사람을 치고 그냥 도망가면 어떻게 합니까!”
추격 끝에 도로 한쪽에 사고차량을 세웠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사고차량 운전자는 “앞선 SUV차량이 먼저 치고 자신은 쓰러진 사람을 밟고 지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고 경장은 112에 신고가 됐으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을 당부하고 다시 차를 몰았다.
그리고 또 한참을 달려 앞에 가던 SUV 차량을 따라잡았다. 두 운전자를 모아놓은 뒤 경찰임을 밝히고 신분증을 요구했지만, 이들은 고 경장이 사복 차림인 것을 보고는 거부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관할 경찰에 인계할 때까지 고 경장은 자리를 지켰다. 뺑소니 용의자 2명을 현장에서 붙잡은 셈이다.
▶ [단독] 뺑소니치고 가다가…퇴근길 경찰에 '덜미'
CCTV나 블랙박스 같은 영상장치의 도움과 각종 과학 수사기법의 발달로 경찰의 뺑소니 사건 검거율은 95%에 이른다. 그렇다 해도 역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의 힘이다. 그런 면에서 고병수 경장의 초동조치는 특히 빛났다.
도주 차량을 추격하면서 112에 신고해 차량 번호와 색깔, 차종을 전파해 빠른 검거가 이뤄질 수 있게 했고 관할 경찰이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용의자를 잡아두었다가 인계했다. 경찰의 <교통사고 초동조치 매뉴얼>에 나와 있는 뺑소니 사고 발생시 초동조치(사건별 초동조치-234)대로다. 우연히 현장을 지나고 있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몸으로 익힌 매뉴얼을 그대로 행동에 옮겼다.
고병수 경장은 서울지방경찰청 교통순찰대에서 3년째 귀빈 경호 싸이카를 몰고 있다. 소감과 당시 느낌을 묻는 질문에는 “현장을 지나는 경찰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경찰은 고 경장에게 경찰청장 표창을 수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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