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취재파일] 등굣길에 숨진 중학생…귀막은 행정이 빚은 참사

[취재파일] 등굣길에 숨진 중학생…귀막은 행정이 빚은 참사

정성엽 기자 jsy@sbs.co.kr

작성 2016.03.08 08:44 수정 2016.03.08 14:16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등굣길에 숨진 중학생…귀막은 행정이 빚은 참사
지난달 5일 아침 8시 20분. 중학교 2학년생 우현 군은 학년 종업식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늘 그렇듯 학교에 가려면 반드시 건너야 하는 남부대로 횡단보도 앞에서 보행신호를 기다렸습니다. 학교까지 거리는 1200m 정도... 걸어서라면 2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입니다. 그래도 1500m나 걸어야 하는 인근 고등학교 형들보단 나은 편입니다. 그래서 우현이에겐 자전거는 통학길 필수품입니다. 보행신호로 바뀌자 우현 군은 평소처럼 횡단보도를 건넜고, 중앙선을 넘어서는 순간 15톤 덤프트럭이 우현 군을 덮쳤습니다. 그게 우현이의 마지막 등굣길이 되버렸습니다. 안타까운 건 횡단보도 30미터 옆에는 이미 지난해 8월 완공된 육교가 있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우현이는 육교를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고가 난 천안시 남부도로는 동남구 신방동에서 병천면 탑원리까지 연결되는 도로입니다. 총 길이는 18킬로미터 가까이 됩니다.  끔찍한 사고가 일어난 지점은 남부대로 청당동 구간입니다. 2km 거리에 취암산터널로 이어지고, 평소에도 왕복 8차선 도로엔 교통량이 많고 특히 트럭이 많이 다녔습니다. 남부도로 청당동 구간에 바로 인접해있는 1,647세대 5천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가 우현이가 살던 동네입니다. 말 그대로 주거단지만 있고, 단지안 학생들은 가온중학교, 청수고등학교로 통학하려면 유일한 통로인 이 횡단보도를 매일 건너야 합니다.

학교로 가는 버스도 마땅히 없었습니다. 아파트 단지안에는 초등학교가 한 곳 있는데, 남부대로 건너편에서 아파트 단지쪽 초등학교로 등교하는 어린 학생도 눈에 띄였습니다. 학생들 뿐 아니라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다른 동네 사람들과 만나 볼일을 보려고 해도 남부대로 건너편쪽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남부대로 건너편은 법원이 새로 지어지는 등 행정타운으로 조성 중이어서 신시가지로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아파트 단지 주민들에겐 남부대로 건너편이 주 생활권인 셈입니다.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평소에도 남부대로 횡단보로를 건너는데 공포심이 컸다고 말합니다. 특히 대형 트럭들이 많이 지나치기 때문입니다. 워낙 대형 차들이 쌩쌩 달리는 길이라 신호등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렇다고 주민들 입장에선 마땅히 돌아갈 길도 없는 형편입니다. 성인들도 이 횡단보도가 위험하게 느껴지는데, 어린 아이들은 물론 노인들은 어땠을까요? 길을 건너는 본인은 물론 그걸 바라는 보는 사람들까지 항상 조마조마했다고 합니다. 지난달 사고 전에도 같은 사고가 몇차례 발생한 적이 있고, 관할 경찰서에서도 이 지역을 사고 빈발 지역이라고 했습니다.

지난해 8월 청당동 남부대로에 육교가 만들어졌습니다. 12억 원의 예산이 들었습니다. 아찔한 횡단보도를 건너며 마음 졸인 걸 생각하면 뒤늦은 감도 있지만 뒤늦게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을 법 합니다. 하지만 육교는 완공된 뒤에도 5달 넘게 개통을 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천안시 측은 원래 완공 직후 9월부터 육교를 개통하려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완강히 반대해서 개통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만약 주민이 그때 육교 개통을 반대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자신들이 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육교 개통을 강행했더라면 우현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공무원의 말입니다.

주민들의 반대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천안시 측이 엉뚱한 곳에, 엉터리 육교를 지어놨다는 것입니다. 주민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존재해야 할 육교가 주민의 불안과 불편을 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육교가 잘못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주민들이 주장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이렇습니다. 첫째, 육교가 설치된 위치가 잘못됐습니다. 육교 옆에는 한 눈에 봐도 '이게 뭐지?' 싶은 구조물이 있는데요, 15만4천 볼트짜리 고압 송전탑입니다. 육교에서 불과 10m 정도 옆에 설치돼 있습니다. 그냥 붙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민들은 비오는 날에는 송전탑 근처만 가도 지릿지릿한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천안시 측은 그럴 때마다 전자파 측정을 해봐도 선풍기 한 대 정도 켜놨을 때의 전자파와 차이가 없다며 주민들의 지릿지릿한 느낌은 말 그대로 느낌일 뿐이라고 일축합니다. 하지만 매일 육교를 지날 때마다 송전탑 밑으로 아이들을 등하교 시키고 싶은 부모는 없을 겁니다.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이 송전탑을 땅으로 묻어준다고 했었는데 아직까지 그 약속이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송전탑 지중화가 쉽지 않은 상황임은 이해하겠지만 어찌됐건 육교가 그 송전탑과 붙어 있을 위치는 아니라는 겁니다.

두 번째는 육교 자체도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학생들의 통학을 어렵게 한다는 겁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파트 단지 학생들이 다니는 중고등학교는 통학 거리가 멉니다. 그래서 학생들 상당수가 자전거를 통학 수단으로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육교에는 자전거가 통행할 수 있는 경사로가 만들어 있지 않습니다. 물론 육교 양쪽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로 자전거를 싣고 갈 수 있지만, 자전거 2대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공간입니다. 학생들이 아침마다 등교길에 엘리베이터 앞에서 줄을 서서 자전거를 한 대씩 한 대씩 올리고, 다시 내려갈 때도 한대씩 한대씩 내려가겠냐는 게 주민들의 생각입니다. 자전거 경사로만 만들어주면 쉬운 일인데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아파트 주민들은 자비를 들여서 통학 셔틀버스를 구하고 있었는데,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에 육교 자체의 안전에도 문제가 있다는 게 주민들의 입장입니다. 육교 다리 위 양쪽 난간이 너무 낮고, 또 난간봉이 세로가 아닌 가로로 이어져 있습니다. 봉 사이의 간격도 생각보다 너무 컸습니다. 그러다보니 철없는 어른들, 장난치는 학생들이 육교 난간을 사다리처럼 밟고 올라가려하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육교 위에서 행여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육교 아래로 그대로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특히 몸집이 작은 어린 아이들은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육교 계단도 추운 겨울날엔 눈이 얼어붙으면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육교와 관련한 주민들의 요구를 심플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우선 육교를 옮겨달라는 겁니다. 멀리 옮겨달라는 것도 아니라 육교가 세워진 자리에서 30m쯤 옆에 있는 횡단보도  있던 쪽으로 옮겨달라는 겁니다. 육교도 주민들의 편의에 맞게 자전거 경사로도 만들고, 육교 안전을 위한 보완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주민들은 육교가 완공된 뒤 6개월 동안 이런 문제점을 꾸준히 제기해왔습니다. 머리띠 두르고 시청에 찾아가 농성하는 대신 청원서를 제출하고, 천안시 의회나 교육감, 경찰서 등에 객관적인 판단을 구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주민들의 이런 요구에 대해 천안시 측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이런 상황에선 육교 개통에 동의할 수 없었다는 게 주민들의 입장이었습니다.

천안시는 사고가 발생하지마자 바로 육교를 개통했습니다. 육교 개통과 동시에 횡단보도는 없앴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의 요구는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엔 변함 없습니다. 육교의 위치는 2007년 교통환경 영향평가에 근거한 것이라 다른 곳으로 이전할 수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송전탑 문제도 한전 쪽에 어필해야 할 문제라는 입장입니다. 이 역시 육교 위치는 요지부동이니, 한전 쪽이 송전탑을 옮겨야 해결될 거라는 생각인 것입니다. 이미 2007년도에 확정된 계획에 대해 2007년 하반기에 입주한 주민들이 왈가왈부할 입장이 아니라는 다소 황당한 말까지 쏟아냈습니다. 사실 남부대로를 산업도로화하려는 계획을 진행 중인 천안시 입장에선 청당동 육교 문제는 큰 개발 계획 중 크게 고려할 만한 민원이 아닌 듯 보였습니다.

지금까지 상황을 간단하게 요약해보면 행정기관의 정책이 행정 수익자인 주민들의 편의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항의를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제 나름의 결론은 이렇게 내렸습니다. 육교의 위치나 상태를 직접 확인해봤을 때 주민들의 어필은 수긍이 가는 측면이 많습니다. 분명 육교로 인한 편의가 커 보이지 않고, 안전에도 불안해 할 염려가 있어 보입니다. 게다가 지금 주민들의 아파트 단지 주변엔 또 다른 2천 세대의 아파트가 건설 중에 있습니다. 천안시 측은 9년 전과 상황이  달라진 게 없다고 얘기했지만, 2천 세대 아파트가 더 들어서 거주 인구가 지금보다 2배로 늘어나는 것은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공무원들에겐 이게 아무런 변화가 아닌 걸로 보이는 걸까요? 특히 청당동 남부대로 일대는 행정타운 건설이 한창 진행 중이어서 남부대로변으로 계속 건물과 상주 인구가 늘어나고 있음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분명 9년 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른바  사정변경이 생긴 셈인데요, 이런 사정변경을 행정 기관이 모른 채 하고 귀막고 눈 감을 순 없다고 봅니다. 우린 이미 할 일 다 했다는 식으로 철통 방어막을 쳐놓는 것이 과연 옳은 행정일지는 의문입니다. 관청과 주민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을 때 어느 쪽이 그 대립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려고 노력하는 게 바람직한 모습일까요?

이런 문제는 비단 천안시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과 주민이 공존하는 어느 곳에서도 흔히 발생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저는 이에 대한 답을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의 한 구절에서 찾고 싶습니다. '일을 처리할 때는 언제나 선례만을 좇지 말고 반드시 민(民)을 편안히 하고 이롭게 하기 위하여 법도의 범위 안에서 융통성을 발휘해야한다'. 이 구절은 목민심서에 나오는 말인데요, 누구보다 준법정신을 강조했던 정약용 선생도 현장과 유연성을 강조한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안시청 뿐 아니라 지금 시대 모든 공무원에게 가장 요구되는 자세야말로 이런 현장 중심의 유연한 행정 아닐까 싶습니다.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