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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헝거', 육(肉)에서 영(靈)으로…몸으로 말한 신념

[리뷰] '헝거', 육(肉)에서 영(靈)으로…몸으로 말한 신념
많은 이들이 육체는 정신을 이기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때로 육체는 정신을 대변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 사실은 역사가 말해준다.

아일랜드 독립 역사에서 몸으로 정신을 대변한 이들이 있었다. 영화 '헝거'(감독 스티브 맥퀸)는 보비 샌즈(1954~1981)로 대표된 아일랜드 투사들의 저항의 몸짓을 그린 영화다. 총과 칼이 투쟁의 도구가 됐던 20세기에 몸으로 보여준 신념의 의미는 사뭇 남다르게 다가온다.

1977년, 북아일랜드의 메이즈 교도소에는 자신들의 신념을 위해 죄수복 착용과 샤워를 거부하며 투쟁을 벌이고 있는 IRA(영국으로부터의 완전 독립을 목표로 하는 아일랜드공화국군)의 조직원들이 있었다.

IRA의 핵심인물인 '보비 샌즈'(마이클 패스벤더)는 자신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대화를 거부하는 마가렛 대처 영국 총리에 맞서 마지막 저항을 시작한다. 바로 '헝거 스트라이크'(Hunger Strike: 단식 투쟁)다. 

영화는 탁자를 두드리는 거친 음향으로 시작한다. 이 소리는 저항의 어떤 암호이며 신호다. 영화는 아일랜드 독립의 역사는 곧 투쟁의 역사와 궤를 함께한다고 전한다. 담요를 두르는 담요 시위, 샤워를 하지 않는 샤워 시위로 이어진 저항은 단식 투쟁이라는 극단의 몸짓으로 이어졌다. '헝거'는 보비 샌즈가 감독에서 66일간 이어갔던 저항의 시간을 따라간다. 
주인공 보비 샌즈가 등장하는 것은 영화 시작 후 약 20여 분이 지나서다. 영화는 이들의 저항을 저지해야 했던 어느 교도관의 하루로 문을 연다. 이어 보비 샌즈와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투쟁의 역사를 이어간 동료들의 모습으로 오프닝을 채운다.

영화의 시각은 객관적이다. IRA의 편을 드는 영화가 아니다. 저항의 몸짓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들에 의해 희생당한 교도관들의 모습도 보여준다. 대사는 최소화되어 있다. 카메라는 감옥에 투옥 중인 인물과 그들을 감시하는 교도관을 관찰하듯 따라간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육체의 언어로만 신념을 보여줬던 보비 샌즈가 유일하게 자신의 신념을 말로 설파하는 16분간의 롱테이크다.

보비 샌즈는 무모한 투쟁을 저지하기 위해 찾아온 도미니크 신부에게 단식 투쟁의 당위를 설명한다. 두 사람은 신념과 폭력, 자살과 타살, 순응과 저항, 생명과 윤리의 경계를 오가며 각자의 주장을 펼친다.

도미니크 신부는 "자네가 맞서려는 영국 정부는 거대한 상대야"라고 단식을 중단할 것을 부탁하고, 보비 샌즈는 "제겐 신념이 있고, 그게 강력한 무기예요. 저는 옳다고 믿는 것에 제 목숨을 걸 겁니다"라고 자신의 신념을 다시 한 번 피력한다. 각자의 논리를 펼치는 이 논쟁엔 정답이 없다. 이 신은 흑백 논리를 넘어선 합리적 논쟁의 좋은 예다. 
당시 영국을 통치했던 마가렛 대처(1925~2013)는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대처는 의회적 민주정치의 본거지인 영국에서 철의 여인이자 악랄한 마녀라는 극과 극의 평가를 받았던 정치인이다. 영화는 투옥 중인 IRA의 처절한 몸짓과 완고한 대처의 목소리를 대비한다.

'헝거'는 2012년 영화 '노예 12년'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던 스티브 맥퀸의 데뷔작이다. 영상 아티스트로서 명성을 떨렸던 스티브 맥퀸은 이 작품으로 제61회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비롯해 전 세계 30여 개 영화제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스티브 맥퀸의 페르소나이자 현재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로 발돋움한 마이클 패스벤더의 빛나는 열연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실제 아일랜드 출신인 패스벤더는 보비 샌즈를 연기하기 위해 14kg의 체중을 감량하는 메소드 연기를 펼쳐 호평받았다.

국내에 8년 만에 개봉하는 '헝거'는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등으로 자유민주적 항거에 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지금, 시사하는 바가 큰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상영시간 96분,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3월 17일.
           

(SBS funE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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