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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이란 총선 취재기 ① 1인 30표 행사, 마라톤 투표

지난주 실시된 이란 총선에서 개혁파와 중도파 연대가 보수파에 완승을 거뒀습니다. 전체 의석 290석 가운데 개혁파가 85석, 중도파가 73석을 차지해 68석에 그친 보수파를 압도했습니다. 양측은 158석으로 과반도 확보했습니다. 개혁파와 중도파는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핵 협상과 경제개방 정책을 지지하는 정파입니다.

이들은 오랜 금융·경제 제재로 침체된 이란의 경제 부흥을 위해서는 서방과 교류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개혁.중도파 연대의 승리는 로하니 대통령의 정책에 날개를 달아준 셈입니다. 또, 이란 국민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줬습니다.

이란의 온 국민이 정치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이란 사람들은 정치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1979년 호메이니 혁명 이후 줄곧 서방 특히 미국과 대치점을 형성해왔고, 이라크와 10년 전쟁을 하며 이슬람 종파간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나라니 당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선거방식과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란 총선을 현장에서 취재했습니다. 이란 방문은 지난해 7월 핵 협상 타결에 즈음한 이후 두 번째 입니다. 오늘은 이란의 독특한 정치 문화와 제재 해제 이후 이란의 변화에 대해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 벽보 홍수 테헤란

이란 총선의 선거운동 기간은 짧았습니다. 투표 이틀 전까지 일주일 입니다. 후보자는 그 안에 자신을 알려야 합니다.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후보자일수록 불리하겠죠? 실외 유세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처럼 차량에 확성기를 달고 노래를 틀어가며 요란법석을 떨지 않습니다.

유세는 대부분 실내공간에서 이뤄집니다. 적게는 수십 명이 모여 다과회처럼 진행을 하고, 많아도 회관 같은 곳에서 천 명 이내로 모여 일장 연설을 하는 정돕니다. 선거운동이 조용해 좋습니다.

하지만, 길거리에 나가면 “아, 선거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후보자의 선거포스터 때문입니다. 우리처럼 별도의 선거포스터나 배너를 부착 또는 설치하는 지정된 공간이 따로 없습니다. 벽이란 벽은, 달 수 있는 곳이라면 모두, 선거 포스텁니다.

290명을 선출하는데 1만 2천명이 등록을 했고, 그중 헌법수호위원회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이니의 행동대 같은 곳)에서 자격미달로 절반을 떨궈냈습니다. 그래도 6천여 명이 선거판에 뛰어든 겁니다. 테헤란은 30명 뽑는데 1천 1백여 명이 출마해 37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습니다.

한마디로 후보가 넘칩니다. 그만큼 같다 붙이는 벽보도 많습니다. “아이고, 선거 끝나고 저걸 어떻게 다 떼나?” 싶을 정도로 도시 전체가 선거벽보로 도배돼 있습니다. 경쟁하듯 남의 포스터 위에 자기 포스터를 붙이면서 포스터가 겹겹이 층을 이뤘습니다. 한 번에 똑같은 후보 포스터를 수십 장씩 모아서 붙여놓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육교마다, 심지어 가로수 나뭇가지에까지 후보자 포스터가 걸려 있습니다. 테헤란 대학 앞에는 긴 가로수 길이 있는데 나뭇가지마다 달랑달랑 매달린 후보자 포스터가 한 없이 이어져 있습니다.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매달아 달라’는 팝송이 떠오를 정돕니다. 조용하지만 요란한 선거운동입니다.

● 의석수 = 투표수, '1인 30표'

이란은 인구비례에 따라 31개 주의 의석을 배정한 대선거구제를 채택합니다. 소선거구제를 채택해 국회의원 수 만큼 선거구를 나눈 뒤 선거구마다 1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우리와 많이 다릅니다. 각 주마다 인구비례에 따라 의석을 배정하니 땅이 넓어도 인구가 적은 주는 1명을 뽑지만, 테헤란처럼 1천 4백만 명 (이란 전체 인구는 8천만 명, 이란인의 6분의 1입니다)이 밀집해 사는 곳은 30석이 배정됩니다. 테헤란의 경우 득표순서에 따라 상위 30명이 소위 ‘금배지’를 달게 되는 겁니다.

우리와 가장 다른 점은 바로 유권자 1명이 던질 수 있는 표의 개수 입니다. 우리는 그냥 1인 1표인데 이란은 선거구별 의석수에 따라 유권자 한 명이 던지는 표수가 달라집니다. 인구가 적어 1명의 의원이 배정된 곳은 1인 1표이지만 테헤란 같이 30석이 걸린 곳은 유권자 1명이 30표를 쓸 수 있습니다. 단, 중복 투표는 안됩니다.
● 마라톤 투표와 개표

이란은 이슬람국가입니다. 그것도 종교지도자가 곧 정치지도자인 신정일치 국가입니다.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 IS 말고는 제가 아는 한 세계 유일의 신정일치 국가일 겁니다. 그래서 선거도 대기도회가 열리는 금요일에 치러지고, 투표소도 대부분 이슬람 사원에 마련됩니다.

유목생활을 하던 시절,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살던 이들이 기도회가 열리는 날이면 이슬람 사원에 모였습니다. 사원은 단순한 예배당을 넘어 세상 소식을 듣고 알리고, 부족의 대소사를 의논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사원은 마을회관의 역할도 해왔습니다. 그러기에 사원이 투표소로 쓰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선거 당일 저는 테헤란 북부에 있는 ‘후세이니 알 사드’라는 이슬람식 회관에 마련된 투표소에 갔습니다. 사원 형태의 블루돔과 모자이크로 장식된 실내가 인상적인 곳입니다. 이란의 유명 정치인들이 투표하는 곳이기도 하죠. 오전 8시부터 투표가 시작됐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투표를 하려는 유권자들이 줄을 섰습니다.

50미터 정도 되던 줄은 시간이 흐를수록 길어졌고, 마감시간이 임박한 오후 5시 경에는 족히 1백 미터는 넘게 줄이 길어졌습니다. 젊은 20~30대가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앞줄에 있던 사람들은 족히 3시간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짜증도 날만한데 싱글벙글합니다. 왜 웃냐고 물었더니 선거가 즐겁다고 합니다.

내가 바라는 이란, 내가 만들고 싶은 이란을 위해 권리를 행사하는데 3시간 쯤은 괜찮다는 겁니다. 역시 이란은 모든 국민이 정치인이라는 게 맞는구나 싶더군요.

투표행렬은 투표마감시간인 저녁 6시가 돼서도 줄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란 정부가 투표 마감시간을 밤 8시로  연장했다가 다시 9시로 늦췄습니다. 제가 갔던 투표소는 밤 11시 45분이 돼서야 투표가 끝났습니다.
● 동네잔치? 비밀 없는 투표

이런 마라톤 투표는 이번 선거에 대한 관심과 열기를 반영하는 것이겠지만, 제 생각엔 이란의 독특한 선거방식과 문화도 한 몫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게 취재비자 받기 어렵다는 이란인데 국제적 관심 때문인지 투표소는 자유롭게 취재가 가능했습니다. 이란 현지는 물론 세계 각국의 취재진이 이란 총선을 취재하러 왔고, 특히 대표적인 투표소인 ‘후세이니 알 사드’에 마련된 투표소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투표소는 어디 장터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북쩍였습니다. 투표소 실내는 하나로 트인 넓은 마당 같았습니다. 그 안에 취재진과 유권자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투표방식도 우리와 많이 달랐습니다. 우리는 투표용지를 받아서 밀폐된 공간에 들어갑니다. 후보자 명단이 적힌 용지에 자신이 원하는 후보에 표시를 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란의 투표소에는 일단 밀폐된 공간이 없습니다. 확 트인 투표소에서 알아서 투표용지에 지지후보를 표기한 뒤 구석에 있는 투표함에 넣습니다. 투표용지는 빈 칸입니다.

30명을 뽑는 테헤란의 투표용지엔 30개의 빈 칸이 있습니다. 유권자는 자신이 원하는 후보의 이름을 자필로 직접 칸마다 적습니다. 하나하나 이름을 적는 게 귀찮고 번거롭지 않을까? 공간은 비좁고 많은 유권자가 몰리면서 누구는 바닥에 아예 주저앉아서 투표용지를 채우고, 친구의 등을 책상 삼아 후보자의 이름을 쓰기도 합니다.

더 재미있는 건 대놓고 이름을 적다 보니 서로 너는 누구를 썼니? 이 사람은 어디 정파지? 이런 말을 자연스럽게 주고받으며 투표를 한다는 겁니다.
테헤란에 출마한 후보는 1천여 명, 명단만 대자보 크기로 6장입니다. 그 중 30명을 어떻게 골라서 쓸까요?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나 갈까요? 그래서, 이란 유권자들은 저마다 손바닥만한 전단지를 들고 나옵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파가 배포한 후보자 명단입니다.

대부분 그 명단을 그대로 베끼고 있더군요. 일일이 30명의 이름을 손으로 짚어가며 또 상의도 해가며 투표를 하다 보니 투표시간은 길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밖에 왜 그리 긴 줄이 늘어섰는지 이해가 가더군요.

1인 30표에 손으로 쓴 글씨를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구분하며 개표를 하니 개표 시간도 아주 길어집니다. 이번 총선도 최종 집계 결과가 나오는데 사흘이나 걸렸습니다. 좀 더 쉬운 방법이 있을 텐데 왜 자필을 고집할까? 이란 사람들은 “왜? 이게 뭐 어때서?”, “우리는 37년간 이렇게 투표를 해왔다”는 반응입니다. 5분이면 다 적는데 뭐가 힘드냐고 말합니다.

이란에는 정당이 없습니다. 우리처럼 정당에 부여하는 기호도 없습니다. 우리는 선거 때면 “기호 몇 번, 000 입니다”가 먼저 나오잖아요? 이란은 그런 게 없습니다. 그러니, 이름을 적을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또, 후보 이름을 직접 쓰면서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게 된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란도 개표가 늦어지는 것에 대한 고민을 안하는 건 아닙니다. 얼마 전에 한국의 한 업체에서 전자개표방식을 시도했는데 실패했습니다. 이유는 페르시아어가 아랍어 철자를 음만 가져다 쓰는데 아랍어라는 게 필기체로 쓰면 컴퓨터가 쉽게 구분하기 어려운 글자들이 상당수입니다. 결국 판독오류가 너무 많았다고 하더군요.

물론 후보자들을 일렬로 번호를 매긴 뒤 OMR 카드처럼 원하는 후보자의 기호에 색을 칠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선거 때면 앞 번호가 유리하다고 하는데 이란도 마찬가지로 누구에게 앞 번호나 외기 쉬운 번호를 줄 것이냐를 두고 말썽이 많을 겁니다.

우리야 당원이 많은 정당 순으로 주면 될 일이지만 정당이 없는 이란에선 어떻게 순서를 정하겠습니까? (테헤란은 후보 번호가 1000번이 넘어가죠. 492번보다는 777번을 받은 사람이 유리할 가능성이 높죠)  결국 이런 문제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후보 이름을 손으로 적고, 일일이 수작업으로 개표를 진행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란의 선거를 ‘마라톤 선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란 총선을 바라보는 이란인과 국제사회의 시각 차를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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