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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아디오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을 아시나요?

1990년대 미국의 프로듀서 라이 쿠더(Ry Cooder)가 쿠바 음악계 왕년의 스타들을 모아 앨범을 녹음해 발표하고, 이들에게 1930~1940년대 아바나의 고급 사교클럽 이름을 붙이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연주자들입니다.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천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곳곳에서 쿠바 음악 붐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1999년에는 빔 벤더스(Wim Wenders) 감독 연출로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최고의 음악 영화라는 찬사와 함께 이듬해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멤버들의 인터뷰와 공연 영상이 교차 편집돼, 그들의 이야기와 음악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보신 분이 적지 않습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이번 주 내한공연을 가졌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오르케스타(오케스트라)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인데, 90년대 원년 멤버 다수가 숨진 상황에서 오마라 포르투온도(보컬), 마누엘 미라발(트럼펫), 헤수스 라모스(트럼본), 바바리토 토레스(라우드) 등 생존 멤버들이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 공연을 하며 그 이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서 주요 멤버로 소개되는 이들 가운데는 현재 오마라 포르투온도와 엘리아데스 오초아(기타)만 생존해 있는데, 이번 내한공연에는 85살의 여성 보컬 오마라 포르투온도가 함께 했습니다.

2시간에 걸친 공연은 쿠바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멋진 시간을 선사했습니다. 감각적인 피아노 연주와 몽환적 분위기를 돋우는 트럼펫 소리, 활기차고 힘 있는 기타와 베이스 반주 속에서 쿠바 타악기의 매력은 빛을 발했고, 물 흐르는 듯한 보컬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공연은 제 머릿속에 쿠바 여행의 추억을 다시 떠오르게 했습니다. 말레콘을 따라 끝없이 밀려드는 카리브 해의 파도, 화려하게 채색된 다양한 디자인의 올드카, 긴 시간을 버텨내며 낡고 칠이 벗겨진 건물들, 그 속에서 웃고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 맨발로 축구를 하던 소년들….

지친 몸과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던 제게 그 곳의 사람들은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춤추지 않을 이유가 없다”라고 말이죠. 클럽은 물론 공연장에서도, 바에서도, 그리고 거리에서도 그 곳 사람들은 춤을 추고는 했습니다. 어디선가 음악이 들려오면 아시아나 유럽에서 온 여행객들은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박자를 맞췄지만, 현지인들과 남미에서 온 여행자들은 자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춤을 추고는 했습니다. 여전히 잘 잊혀지지 않는 모습입니다.

제게는 쿠바에서 온 밴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도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오마라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가운데서도 음악이 나오면 어느샌가 흥겨운 춤을 췄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스탠드 업!”을 외치며 자리에 앉은 관객들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음악이 나오는데 왜 춤추지 않지?”라고 묻는 것 같았습니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 뒤 스크린에선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작고한 멤버들 모습이 스쳐지나갑니다. 루벤 곤잘레스(피아노), 콤파이 세군도(기타, 보컬, 작곡), 이브라임 페러(보컬), 카차이토 로페스(베이스), 마우엘 갈바(기타), 피오 레바(보컬), 마누엘 리세아 푼디타(보컬) 각각의 소년 시절과 한창 활동하던 젊은 시절, 그리고 노년의 사진이 차례로 스크린 위에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자연스레 영화의 장면들도 다시 떠올랐습니다. 영화 속에선 왕년의 즐거웠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여전히 만날 수 있지만,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현실의 그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번 내한공연에서 여전히 멋진 노래를 들려주던 오마라 할머니도 언젠가는 저 흘러가는 영상 속에서 추억의 대상으로 기억될 때가 오겠죠.

오케스트라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이번 내한공연엔 스페인어로 작별인사를 뜻하는 ‘아디오스(Adios)'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오마라 할머니의 무대를 한국에선 보는 건 아마 이번이 마지막이었을 겁니다.

오래전 아바나의 사교클럽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처럼, 90년대 말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밴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처럼, 그 멤버들의 삶처럼, 모두의 인생에서 화양연화는 지나가고 어딘가엔 끝이 있을 겁니다.

공연장을 빠져나오며, 아바나를 떠나올 때 품었던, 그러나 한동안 잊고 지냈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지금 춤추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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