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지도를 보시면요, 중구 장충동, 남산의 동쪽 기슭에 장충단 공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직접 들어가 보진 않아도 한 번쯤 지나가 보신 분들은 많을 텐데요, 지금은 동국대학교와 신라호텔 사이에 있는 작은 공원에 불과하지만, 원래는 신라호텔 일대를 전부 포함할 정도로 큰 제사용 제단이었습니다.
저도 몰랐지만, 알고 보니 정말 가슴 아픈 역사를 품은 곳이었습니다. 최효안 기자의 취재파일 보시죠.
"장충단"이란 본래 장수들의 충성심을 장려하는 제단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장수냐 하면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됐을 때 함께 숨진 장수들을 가리킵니다.
끔찍하게 국모를 잃은 조선이 대한제국의 기틀을 다진 뒤 1900년에 일제의 만행을 세계만방에 알리고 국권을 더욱 튼튼히 하겠다는 각오로 도심 한가운데 넓은 땅덩어리에 제단을 세웠던 겁니다.
하지만 중립국 선언까지 하며 자주독립 국가를 향해 가던 대한제국의 꿈은 좌절됐습니다. 1904년 2월에 발발한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더니 1910년 한일합방이 이뤄진 겁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여 년 뒤에 일제는 장충단을 공원으로 바꿔버렸습니다. 대한제국의 비극적 역사의 현장에 위락시설을 세우더니, 국권 침탈을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찰까지 버젓이 지었고, 그것도 모자랐는지 이 사찰의 정문에는 경희궁의 정문을 뜯어와 설치했습니다.
그러다 해방 이후 1967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이 사찰을 허물고 문은 경희궁으로 다시 옮겨다 놨고, 대신 그 자리에는 국가 귀빈을 모시는 영빈관을 지어 이후 이것이 신라호텔의 부속 건물로 바뀌긴 했지만, 아직도 영빈관 앞쪽에 있는 가파른 계단은 일제가 당초 설계한 디자인 그대로입니다.
일부러 숨이 찰 정도로 아주 힘들게 걸어 올라가도록 해서 이토 히로부미의 참배객들이 사찰의 압도적 위용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계단 꼭대기에 서서 뒤를 돌아보면 서울의 전경이 한눈에 조망되도록 만듬으로써 이토가 식민지의 중심을 내려다보도록 의도한 겁니다.
[안창모 교수/경기대 건축대학원·건축역사학자 : 우리의 민족정기를 억누르겠다는 것, 그다음에 여기서 서울 시내 전체를 이렇게 오시하면서 장악하겠다는, 그런 제국주의적 시각을 굉장히 잘 보여주는 장소가 바로 이 장소라고 생각을 합니다.]
현재는 장충단비만이 외롭고 쓸쓸하게 남아 이곳의 슬픈 역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역사는 되풀이되죠.
우리 생활 공간에 엄연히 숨 쉬고 있는 역사의 흔적과 그 의미조차 모른다면 우리에겐 과연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 [취재파일] '비운의 장충단(奬忠壇)'…장충단 공원의 숨겨진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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