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무기를 든 두 사람이 산산조각 난 물건들로 난장판이 된 방 안에 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곳은 사건 현장일까요?
아닙니다. 이곳은 이름하여 ‘분노 객실(Anger Room).’ 돈만 내면 방 안에 있는 건 다 때려 부술 수 있는 시설입니다. 야구방망이, 골프채 등 도구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가격은 10분에 약 5만원(40달러). 결코 싼 가격은 아니지만 미국의 이 객실은 예약 창구가 열리면 금방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많습니다.
일본에는 각종 그릇을 시멘트 블록에 던질 수 있는 ‘접시 깨기 카페’도 있습니다. 화가 나도 꾹 참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최근엔 물건을 마구 부수거나 사람을 때리는 영상을 재미로 올리는 SNS 콘텐츠도 자주 올라옵니다. “은근히 웃기다, 재밌다”라는 반응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 부수고 나면 정말 스트레스가 풀릴까요?
무언가 파괴할 때 느끼는 ‘쾌감’은 분명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습니다. 심리 치료에서도 간혹 베개 등의 사물을 분노 대상자로 놓고 때리게 하기도 합니다.
“이런 분노 객실의 효과는 매우 짧다. 잠깐의 쾌락일 뿐이다.” (심리학 박사 제니퍼 하트스테인)
하지만 이러한 스트레스 해소법은 일시적인 효과가 있을 뿐 그 뒤에는 오히려 위험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 치료에서 절대 그렇게 과격한 방법을 사용하진 않습니다.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계속해서 뭔가 부수는 극적인 방법을 선택하면 오히려 그 행위에만 중독될 수도 있습니다.” (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강선영 박사)
최근 급증하고 있는 각종 분노형 범죄 역시 스트레스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해소하는 습관이 빚어낸 것으로 분석됩니다. 특히 아동학대 사건은 이런 잘못된 습관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습니다. 생활이 어렵다는 이유로 어린 자녀들을 폭행하고 밥을 굶긴 부부, 생후 7개월 된 아들을 바닥에 내던지고 온몸을 때린 비정한 엄마... 그들에겐 별다른 이유가 없었습니다. 경찰이 발표한 범행 동기는 생활고나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고 싶다면 차라리 터놓고 얘기할 상대를 찾아 하소연을 하거나, 여의치 않을 땐 상담을 받는 게 좋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스트레스 받을 곳은 많고, 제대로 풀 곳은 없는 현대인. 오죽하면 분노 객실까지 등장했을까 하는 씁쓸함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건강한 방법으로 풀지 않으면 더 큰 화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SBS 스브스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