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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여론집중도 조사위가 보낸 '유감표명' 서한

[취재파일] 여론집중도 조사위가 보낸 '유감표명' 서한
● 여론집중도 조사 결과 오류 시인… “재발방지 위한 개선안 추진”

지난 24일 SBS에 한 통의 서한이 날아들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가 보낸 공문 형식의 ‘유감표명’ 서한이었습니다. 지난달 21일 발표됐던 제2기 여론집중도 조사결과 중 SBS 관련 내용에 오류가 있었다는 점을 시인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개선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여론집중도 조사는 특정 언론매체에 과도하게 힘이 쏠리는 독과점 현상을 막아 우리 사회 여론의 다양성을 증진하겠다는 목적으로 지난 2010년 시작됐습니다. 3년에 한번씩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조사한 뒤 결과를 발표하므로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텔레비전 방송 부문의 경우 전체 방송물 중에서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선별해 시청률 및 방송시간 등을 집계, 합산한 뒤 특정 방송사의 점유율 및 영향력을 순위 매기는 방식입니다.

여론집중도 조사위가 SBS에 유감을 표명하는 서한을 보낸 건 각 방송사의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추려내는 과정에서 SBS 프로그램들을 누락하는 등 오류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SBS의 대표적인 주간 시사보도 프로그램인 <뉴스토리>는 통째로 누락됐습니다.

위원회는 ‘유감표명’ 서한에서 “(SBS <뉴스토리> 프로그램이 조사대상에서 누락됐다는) SBS의 주장이 충분히 타당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시간, 예산 상의 제약으로 인해 모든 방송 프로그램을 다 검토할 수는 없었던 한계로 귀사의 프로그램이 제외된 부분은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조사 결과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시인했습니다. 위원회는 “이번 조사와 관련하여 귀사와 관련된 문제와 논란이 발생한 것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사과의 뜻도 밝혔습니다.

오류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위원회가 이번 조사결과 보고서에 기재한 ‘대표뉴스 개인 평균 시청률’도 마찬가지입니다. <SBS 8뉴스>는 개별 지역 민영 방송사의 뉴스와 네트워크 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위원회가 지역 민방의 8시대 뉴스 시청률을 과소 산정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사실의 왜곡이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위원회는 보고서 앞머리에 실린 조사 방법론에서 조사대상을 명시할 때 SBS의 경우 “SBS뉴스를 릴레이하는 지역 민영방송 채널을 모두 SBS로 처리”한다고 규정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위원회는 ‘유감표명’ 서한에서 “(SBS의 경우) 개별화된 복잡한 지역 민방 운영 환경 하에서 단일 프로그램의 이름 만으로 전국 단위 시청률을 산출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SBS의 경우) KBS, MBC와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며, 보고서 내용을 정정하겠다고 물러섰습니다.

이와 함께 위원회는 SBS가 요구한 재발방지 대책과 관련해 “귀사에서 제기한 문제점과 관련한 합리적인 개선방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3기 위원회에 공식 제안할 예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조사 목적이 변질된 여론 집중도 조사…이대로 괜찮나?

다른 언론사에 대한 조사 데이터는 미처 확인해보지 못했지만 SBS 관련 내용만 보더라도 오류와 결함이 잇따른 만큼, 이미 정부 산하 위원회 조사의 공신력은 크게 실추됐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지난달 조사결과 발표 당시 언론들의 보도 내용을 보면 확연히 드러납니다.

“00일보 신문 점유율  1위”, “***, 방송 영향력 압도적 1위”, “00뉴스, 인터넷점유율 압도적 1위”, 너나 할 것 없이 정부 조사를 근거로 자사의 영향력이 최고로 확인됐다며 홍보에 열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여론집중도 조사의 근본 목적은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바로 이런 매체집중 현상을 막는 데 있습니다. 여론집중도 조사위가 보고서에서 밝힌 조사 목표는 이렇습니다.

“우리 사회 속의 전반적인 여론형성의 조건이 소수의 특정매체를 중심으로 지나치게 치우쳐 있는지 여부를 과학적으로 조사함으로써, 과도한 여론 집중을 예방하고 여론형성 과정의 건강을 촉진하는 민주적 정책 마련의 토대를 제공하려는 목적을 지닌다.”

특정 언론사의 독과점을 방지하겠다는 정부 조사가 엉뚱하게도 일부 언론사를 홍보해주는 근거 자료로 오용된 셈입니다. 당초 여론집중도 조사가 탄생한 건 지난 2009년 이른바 미디어법 개정 논란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미디어법의 개정으로 신문사들이 종편TV 허가를 받게 될 경우 신문방송 겸영으로 인한 미디어 독과점 폐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고, 이런 문제를 해소할 방편으로 여론 집중도 조사위원회가 탄생한 겁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조사 취지가 정반대로 변질된 걸까요?

무엇보다 주먹구구식 조사 방법의 한계 탓이 큽니다. 해당 언론사가 누리고 있는 영향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객관적으로 수용 가능한 기준이 없다는 점입니다. 언론 시장의 자율 경쟁을 통해 이뤄진 영향력인지, 시장 논리 외의 변수가 작용한 영향력인지 조차 불분명합니다.

만약 이런 부실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특정 언론사에 독과점 규제의 칼날을 들이민다면 납득할 사람이 있을까요? 이렇다 보니 조사위원회 스스로도 순위 발표 외에 여론 독과점을 시정할 아무 대책도 제시하지 못한 채 조사를 마무리지었습니다.

‘단팥’ 없는 ‘찐빵’인 셈입니다. 이 와중에 눈치 빠른 언론사들은 여론집중도 조사 결과가 규제 근거로 쓰기에 턱없이 부족한 허울뿐인 숫자라는 걸 파악하고 자기 입맛대로 골라내 자사 홍보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단순 순위 조사로 보기에도 기초적인 공정성을 벗어난 ‘엉터리’라는 논란이 발표 당시부터 제기됐습니다. 텔레비전 방송 부문의 경우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방송시간이 많은 곳은 점유율 점수가 뛰도록 설계된 산정 방식 때문에 일부 종편 방송사에 엄청난 순위 상승 효과가 생겼습니다.

종편은 말 그대로 ‘종합 편성’, 즉 보도뿐만 아니라 예능과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을 시청자에게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허가됐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종편 채널들은 당초 허가 취지에 역행해 하루 종일 시사보도에 편중된 방송을 함으로써 스스로 논란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단지 시사보도 프로그램 편성 시간이 많다는 이유로 종편 채널들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해 준 것 자체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또 광고업계에서는 이번 여론집중도 조사 결과가 자신들이 실제로 체감하는 시청률과 크게 달라 무척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제 제2기 여론집중도 조사위는 활동기한을 마감했습니다. 제3기 위원회 출범을 앞둔 시점에서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조사 방법을 일부 개선한다고 해서 원래 조사의 취지를 역행하고 있는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현재와 같은 순위 조사라면 이미 시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언론사 신뢰도 조사 등을 제쳐두고 정부가 13억 원이 넘는 예산을 뿌려가며 혼란을 자초할 필요가 있을까요? 3기 출범을 앞두고 여론 집중도 조사 제도 자체의 존폐 여부를 포함한 근본적인 검토가 선행되지 않는 한 3년마다 부질 없는 논란이 되풀이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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