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취재파일] '비운의 장충단(奬忠壇)'…장충단 공원의 숨겨진 비밀

[취재파일] '비운의 장충단(奬忠壇)'…장충단 공원의 숨겨진 비밀
서울 한복판 남산자락 아래에 장충단공원이 있습니다. 신라호텔과 동국대학교 사이에 있는 공원으로 지난 1970년대 까지만 해도 정치집회를 하면 당연히 이곳에서 열렸습니다. 당시 서울에 100만 인파가 운집할 수 있는 넓은 광장은 이곳 뿐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80년대 이후 장충단공원은 서울의 대표적 공원으로서의 자리를 빠르게 잃게 됩니다. 장충단공원보다 훨씬 큰 공원들이 서울 시내에 속속 들어서기도 했지만, 장충단공원과 신라호텔 사이의 도로가 강남 자역으로 가기 위한 지름길이 되면서 장충단공원은 차를 타고 스쳐 지나가기만 할 뿐 사람들이 직접 찾지 않는 공간이 된 겁니다. 

장충단공원에 대한 젊은 시절 추억이 있는 어르신들, 그리고 흘러간 가요인 ‘안개 낀 장충단공원’의 배경으로만 남게 된 장충단...그러나 그곳에는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장충단은 원래 공원이 아니었습니다. 충성스런 장수들의 '위대한 충성심을 장려하는 제단’이란 의미로 고종 황제가 세운 대한제국 최초의 국립 현충원 같은 곳 이었습니다. 당연히 장충단의 영역도 엄청났습니다. 현재의 장충단공원은 원래 장충단 영역의 아주 일부일 뿐, 처음에는 지금의 신라호텔 일대 전체가 장충단이었던 겁니다. 

고종황제가 도심 한 가운데 넓은 땅에 제단을 세워 기린 군인들은 1895년 을미사변으로 일제의 칼에 명성황후가 시해될때 함께 숨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장충단이 세워진 것은 을미사변이 일어난 지 5년 후인 1900년입니다. 을미사변 당시 국모의 끔찍한 죽음을 그저 바라만 봐야 했던 조선은 어느 정도 대한제국의 기틀을 다진 이후인 1900년 세계 만방에 일제의 만행을 알리고 국권을 더욱 튼튼히 하겠다며 장충단을 세운 것입니다.       

1904년 1월에는 중립국 선언까지 하면서 자주독립국가의 꿈을 향해 나아가던 대한제국은 그러나 1904년 2월 발발한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모든 꿈을 잃게 됩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제는 1920년대 초 장충단을 공원으로 만들어 훼손합니다. 장충단 일대에 위락시설을 세우고 공원으로 만든 것으로도 모자랐는지 1932년에는 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사찰 <박문사>까지 세웁니다. 대한제국의 비극적 역사 현장에 국권 침탈의 장본인을 추모하는 사찰을 세운 일본제국주의의 냉혹한 행태는 <박문사>의 출입문을 경희궁의 정문을 뽑아다 만들면서 극에 달합니다.    

훗날 박문사는 철거됩니다.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는 1967년 '박문사' 자리에 국가의 내외빈을 모시는 <영빈관>을 짓습니다. 뒤에 이 <영빈관> 일대가 모두 신라호텔이 되면서 국가귀빈을 모시던 <영빈관>은 신라호텔의 부속건물인 <신라호텔 영빈관>으로 바뀝니다.

현재 신라호텔의 <영빈관> 자리는 박문사 자리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영빈관 앞쪽에 있는 아주 가파른 계단 역시 일제가 당초 설계한 디자인 그대로로, 힘들게 계단을 걸어 올라간 참배객들이 박문사 앞에 서서 뒤를 돌아다보면 서울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게 만든 겁니다.

숨이 차게 올라가도록 해서  ‘박문사’의 압도적 위용을 느끼도록 하는 동시에, 계단 위에서 식민지의 중심인 서울을 한눈에 조망하도록 함으로써 제국주의의 공간 구성의 주된 특징 중 하나인 ‘내려다봄의 제국주의’를 실현한 것입니다.     
장충단비
해방 후 박문사는 철거됐지만, 장충단은 현재까지도 복원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장충단공원에서 그곳이 장충단이었음을 기억할수 있도록 하는 것은 비석 하나가 유일합니다. 명성황후의 아들인 순종황제가 직접 친필로 쓴 ‘장충단비’만이 공원 한 구석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이 땅의 슬픈 역사를 전하고 있는 겁니다.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우리 생활 주변에 숨 쉬고 있는 역사 현장과 그 의미조차 알지 못하는 우리에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역사인식을 갖지 못한 국민에겐 미래가 없다고 단언했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때 인것 같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