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취재파일플러스] 3월의 독립운동가 '원조 석호필' 스코필드 박사

내일은 삼일절이죠. 그런데 1919년 3월 1일 거리에서 대한독립 만세 함성이 울려 퍼질 때 그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은 한 외국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3·1 만세운동의 34번째 민족대표이자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인데요, 그의 일생을 한세현 기자가 취재파일을 통해 소개했습니다.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는 영국 태생의 캐나다 수의사로 1916년 한국에 세균학 교수가 필요하다는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장의 편지를 받고 낯선 타국 한국으로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불행한 역사에 관심이 많았기에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게 됩니다. 독립운동가들에게 국제 정세에 대해 알리고, 실제 운동이 일어나자 소아마비로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는 종로 일대를 뛰어다니며 역사의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한 겁니다.

4월엔 경기도 화성시 제암리의 한 교회에서 일본 군경이 주민들을 집단 학살한 현장에도 달려가 사진 증거를 남겨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폭로하기도 했고, 5월엔 서대문형무소에서 유관순 등을 면담한 뒤 일본의 비인도적 고문의 중지를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이밖에도 그는 일본이 간섭할 수 없는 영국계 캐나다인이라는 신분상의 장점을 이용해 계속해서 일제에 호랑이 같은 비판을 서슴지 않았는데요, 결국, 1920년 일제에 의해 모국인 캐나다로 강제 추방당하고, 이때부터는 세계적인 수의학자로서 명성을 알렸습니다.

그가 바로 다음 해에 농장의 소들이 죽는 것을 보고 발견해낸 물질은 오늘날까지도 널리 사용되는 혈액응고방지제의 개발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늘 마음의 모국인 한국을 잊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1958년 독립한 대한민국으로 다시 돌아와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한 뒤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선교와 후학 양성에 힘썼고, 스코필드 기금을 마련해 가난한 이들을 돕는 데도 앞장섰습니다.

[정운찬/전 국무총리 : 그분(스코필드 박사)은 저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정신적 지주로서 저의 가치관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주셨습니다. 연세는 할아버지지만, 친아버지나 다름없었습니다.]

이후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한 활동으로도 공로를 인정받은 그는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습니다.

생전에 우리말도 부지런히 배운 그는 '석호필'이라는 한글 이름도 지었는데요, 올해는 그가 한국에 온 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는 과연 자신이 영혼을 바쳐 사랑한 나라, 대한민국의 오늘날을 어떻게 평가할까요? 

▶ [취재파일] "강자에겐 호랑이, 약자에겐 비둘기처럼"…원조 '석호필' 스코필드 박사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