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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인간보다 앞선 농사꾼…개미의 분업과 협력

협력을 통한 공생의 지혜

[취재파일] 인간보다 앞선 농사꾼…개미의 분업과 협력
"개미가 농사를 짓는다."

국립생태원 최재천 원장은 지난해 봄 환경부 기자실을 찾아 개미전시회를 열겠다며 토종개미 8종과 흰개미에 얽힌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개미는 어릴적 집과 농경지 주변에서 흔히 봐 낯이 익은 곤충입니다. 흙놀이를 하다가 개미집을 잘 못 건드려 곤욕을 치른 경험도 있습니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처럼 아주 오래전부터 개미는 근면, 성실의 아이콘이었습니다. 창피하지만 이제껏 개미에 대한 관심과 지식은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이런 개미가 고도로 조직화된 사회적 동물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최원장을 통해서입니다. 여왕개미를 중심으로 분업과 협력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대표적 곤충이란 이야기는 개미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흥미를 끌게했습니다.

현대인들이 화두로 붙잡고 있는 협력과 공생이란 낱말이 개미사회를 이해하는 열쇳말이란 것도 귀를 쫑긋하게 했습니다. 최재천 원장은 이야기 말미에 인간처럼 농사를 짓는 잎꾼개미가 있는데, 곧 외국에서 들여와 소개할 계획이라고 덧 붙였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최근 국립생태원에서 말로만 듣던 농사짓는 개미를 직접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까만 색깔의 일반 개미와 달리 연한 붉은색의 ‘잎꾼개미’였습니다.

싱싱한 나뭇잎위로 몰려든 개미들은 날카로운 이빨로 잎사귀를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떼를 지어 일을 하다 보니 손바닥만 한 나뭇잎이 금세 조각조각 잘려 사라졌습니다. 나뭇잎을 자르는 모습도 신기했지만 자기 몸 보다 두 세배 이상 크게 자른 나뭇잎 조각을 입에 물어 개미굴로 나르는 장면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습니다.
국립생태원은 개미 작업장에서 굴까지 거리를 10미터 가량 꾸며놓고 투명한 아크릴통 속에 칡뿌리를 길게 연결해 둬 간접적으로 숲길을 연출했습니다. 나뭇잎을 입에 문 개미들은 흙바닥보다는 칡뿌리위에서 훨씬 빨리 달렸습니다.

녹색 나뭇잎 조각을 입에 물고 개미떼가 끊임없이 이동하는 모습은 볼꺼리를 넘어 감동적이기 까지 했습니다. 나뭇잎을 물어 나르는 개미 모습에서는 지게에 나무를 지고 가는 나무꾼의 모습이 연상됐습니다. ‘잎꾼개미’란 이름이 왜 지어졌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개미굴에 도착해 나뭇잎을 떨어뜨려 놓으면 기다리고 있던 또 한 무리의 일꾼 개미가 톱날같은 이빨로 잎을 잘게 썰어 잎 반죽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효소가 들어있는 배설물을 섞어 버섯균류를 재배했습니다. 스펀지 같은 질감에 구멍이 숭숭 뚫린 버섯균류는 잎꾼개미의 먹거리입니다.

이런 일련의 작업은 영락없는 농사꾼의 모습이었습니다. 얼마나 부지런히 농사를 지었는지 버섯균류의 크기가 지난해 10월 이후 4개월 만에 열배이상 커졌다고 합니다. 버섯균류는 잎꾼개미들에게 먹거리뿐아니라 생활공간의 역할도 합니다. 알을 낳고, 애벌레를 키우는 공간인 것입니다.
잎꾼개미들은 여왕개미를 중심으로 크게 4계급으로 나뉘어 철저한 분업과 협력을 통해 버섯을 만듭니다. 나뭇잎을 잘라 물어 나르는 일은 중형 일개미의 몫이고, 중형 일개미가 나뭇잎을 물어나르는 동안 주위에서 경비를 서는 경비개미도 있습니다.

버섯농장에서는 가장 작은 일개미가 중형개미가 가져온 나뭇잎을 잘게 썰어 잎반죽을 만듭니다. 몸집이 가장 큰 개미는 적의 침입으로부터 조직을 지키는 병정개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잎꾼개미는 중남미 베네수엘라 근처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지난해 10월 들여왔습니다. 개체수는 1만여 마리, 혹시라도 우리생태계에 영향을 줄까 우려돼 엄격한 검역과정을 거쳐야했고, 개미사육장도 3중 보안시스템을 갖춰 탈출을 원천 봉쇄했습니다.

사육사들의 노력도 대단합니다. 열대지방에 사는 곤충이어서 온도와 습도 조절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섭씨25도에 70% 이상의 습도를 유지해주고 있습니다. 먹이를 만드는 재료로는 싱싱한 활엽수가 제공 되는데 잎꾼개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사철나무 잎새이고, 참나무과 나뭇잎도 싫어하지 않는 다는 사실도 새로 확인했습니다.

워낙 부지런하고 성실해서 하루에 1-2회 나뭇가지를 집어 넣어줘야 할 정도입니다. 사육사들은 잎꾼개미들의 농사재료인 사철나무를 공급하기위해 생태원내 온실에서 별도로 재배까지 하고 있습니다.
개미들은 번식과정에서도 철저한 분업을 하는데, 여왕개미는 알만 낳고, 일개미는 평생 죽어라고 일을 하면서 여왕개미를 돕습니다. 그리고 수개미는 한 번의 번식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일개미들이 알 낳는 것을 포기한 것은 직접 알을 낳는것 보다 여왕개미를 통해 번식을 하는게 자신의 유전자와 거의 같은 후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합니다.
 
학자들은 개미의 번식분업을 놓고 “희생이 아닌 이익을 위한 전략”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여왕개미와 조직을 위한 희생처럼 보이지만, 일번 분업은 결국 서로의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생태원 개미전시관내 학술발표장 벽에는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는 글귀도 붙어있습니다. 분업과 협력을 통해 공생의 지혜를 키워가는 개미사회를 표현한 글입니다.
혼자가 아닌 함께, 다 같이 행복한 조직을 만들어 가는 개미는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 인간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 열대지방서 온 이 개미가 '지구 최초 농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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