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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우리 편을 심어라…후임 뽑자는데 반발하는 이유는? - 대법관 죽음으로 본 美 대법원①

[월드리포트] 우리 편을 심어라…후임 뽑자는데 반발하는 이유는? - 대법관 죽음으로 본 美 대법원①
미국의 한 대법관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미국이 들썩이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1936년생 우리나이로 81살인 안토닌 스캘리아(Antonin Gregory Scalia) 대법관입니다. 스캘리아는 지난 주말 지인들과 텍사스의 한 리조트로 사냥을 하러 갔다 아침식사를 하러 나오지 않아 확인해보니 숨져 있었는데 사인은 심근경색이었습니다.

지난 1986년 레이건 대통령 시절 이태리계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연방대법관에 지명된 그는 30년간 대법관으로 보수진영의 논리를 대변해 왔습니다. 낙태와 동성결혼에 분명히 반대의사를 밝혔고 사형제를 그대로 존치시킬 것을 주장해왔고 개인의 총기소유를 강력히 옹호해 왔습니다.

지난해에는 대학의 소수인종 우대 정책에 대한 위헌 여부를 심의하면서 “흑인들은 학습능력이 떨어지니 좀 더 낮은 수준의 학교에 가는 게 좋다”고 말하면서 흑인비하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지만 판결논리가 정연하고 판결문 작성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판사였습니다.
텍사스에서 날아든 뜻밖의 부고가 미 정치권에 또 다른 전투를 촉발시켰습니다. 대법관은 대통령이 지명해 상원의 인준을 받아 임명되는데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입니다.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넬은 “국민들이 다음 대법관 지명에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며 “다음 대통령이 지명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두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일 저녁 있었던 공화당 대선후보 토론회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공화당 지도부가 새 대법관 임명을  막아야한다고 강조했고 크루즈는 “지난 80년간 대선이 치러지는 해에 대법관 인준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대선후로 미루라고 지적했으며 다른 후보들도 같은 견해를 밝혔습니다.

반면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대법원에 중요한 안건들이 많이 걸려 있다”며 후임 대법관 임명을 촉구한 뒤 “상원은 책임감을 가지고 최대한 빨리 공석을 채워야 한다”고 반박했습니다. 민주당 대선주자들도 같은 입장을 밝히면서 양당의 대선후보들이 이 문제를 둘러싸고 맞서는 형국이 됐습니다.

치열한 전투중인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도 한목소리로  오바마 대통령이 후임 인선을 해야하며 공화당은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머지않아 후임자를 지명하는 헌법상 주어진 내 책임을 완수할 계획”이라며 조만간 후임을 지명하겠다고 못박은 뒤 “내가 그렇게 할 시간이 충분히 있으며, 상원도 지명자에게 공정한 청문회와 시기적절한 표결을 할 책임을 이행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밝혔습니다. 임기가 내년 1월 20일까지 아직 11달이나 남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다음 대통령 운운하는 공화당을 압박한 것입니다.

대법관 인선이 이렇게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미국내 첨예한 갈등의 최종 해결자 역할을 해 온 연방대법원의 이념구도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수진영을 대변해 온 스캘라이의 사망으로 현재 보수 5명 진보 4명으로 구성된 연방대법원의 이념지형이 진보 5명 보수 4명으로 역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법관들이 이념 성향에 따라 모든 사안을 판단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보수성향 대법관이 한 명 더 많았지만 사안에 따라 스윙보트(swing vote·결정권을 쥔 한 표) 역할을 하며 양측을 오갔습니다. 2012년 건강보험법안 판결 때에는 보수 성향의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지난해 동성결혼 판결 때에는 중도보수 앤서니 캐네디 대법관이 진보 편을 들면서 오바마 정부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하지만 최종 해결자 역할을 하는 대법원에 같은 성향, 우리 편이 더 많아야 유리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운좋게도 재임중 진보성향 대법관 2명을 지명했습니다. 스캘라이 후임 대법관까지 지명한다면 레이건 전 대통령 이후 30년만에 대법관 3명을 지명하는 대통령이 됩니다. 자신의 레전드를 남기려는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진보성향의 대법관을 한 명 더 지명해 대법원의 이념지형을 역전시키길 누구보다 바랄 것입니다.

자신이 눈물을 흘리며 국민들에게 호소한 마지막 과제, 총기소유제한법과 이민개혁법을 완수하려면 이번이 오바마에게 천재일우(千載一遇)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공화당으로선 대선의 해에 연방대법원의 이념지형을 바꿔 민감한 정책들을 민주당 입맛에 맞게 일사천리로 처리하는 것을 눈뜨고 가만히 당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상원 100석 중 공화당이 54석을 차지하고 있어 인준이 되려면 공화당 의원 5명 이상을 끌어와야 하기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이 공화당이 전면적으로 반대할 명분을 줄 진보인사 대신 중도성향의 후보자를 지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 경우 1년 이상 대법관 공백사태을 주도하는데 대한 부담감을 고스란히 지게될 공화당 지도부의 고민이 깊어질 수 있습니다. 때문에 현재 물망에 오르는 인도계 스리니바산 판사나 베트남계 응우옌 판사 같은 아시아계 젊은 후보들은 물론 현직 여야 의원까지 하마평에 오르고 있어 오바마 대통령이 누구를 낙점할 지가 이 싸움의 최대 승부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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