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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오직 연극' 연희단거리패 30년

[취재파일] '오직 연극' 연희단거리패 30년
직업의 특성상 숱하게 공연장을 갑니다. 관람이 일이 되고 일상이 되어버렸지만, 다행스러운 건 여전히 가끔은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고 이따금 가슴 뛰게 하는 공연을 만난다는 겁니다.

가슴 뛰는 공연관람은 그 작품을 만든 이들에 대한 호감과 호기심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부 공연담당 기자로 일한 지난 15개월 동안 ‘연희단거리패’는 제게 꾸준한 호기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올해로 창단 30주년을 맞은 연희단거리패는 걸출한 작가이자 극 연출가인 이윤택 씨가 설립한 연극집단입니다. 부산에서 시작했지만 서울로도 무대를 넓혀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던 극단은 1999년 돌연 서울 활동을 접고 경남 밀양으로 내려가 자신들만의 촌락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밀양연극촌입니다.

단원들은 폐교에 직접 숙소도 짓고 연습실도 만들었습니다. 일사병에 걸릴 정도로 고됐던 노동의 결과 연극촌은 틀을 갖추게 됐지만, 내려갈 당시 30명이 넘었던 단원의 수는 10명 정도로 줄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7년, 단원 수가 60명 안팎에 달할 정도로 극단의 규모도 커지고 서울과 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폭넓은 활동을 벌이는 오늘날까지도 그들은 이 연극촌을 중심으로 공동체 생활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단원들이 함께 연습하고 공연하는 건 물론 함께 숙식하고 노동하며 삶의 공간을 공유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쯤 되면 그들에게 ‘연극을 한다’는 건 일반적인 ‘직업’의 의미를 한참 벗어난 듯 보입니다. ‘일’이라는 단어조차 그 의미를 담아내기엔 충분치 않습니다. 차라리 ‘삶’이라는 단어가, 연극 활동이 그들에게 갖는 의미를 담아내기에 더 적절할 그릇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연희단거리패' 대표 김소희
2016년 이 땅의 시류와는 동떨어져 보이는 이들의 행보에는 어떤 배경이 있는 걸까요? 팟캐스트 녹음을 위해 최근 만난 연희단거리패의 현 대표, ‘이윤택의 페르소나’로도 불리는 배우 김소희 씨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같이 살면 훨씬 더 깊고 훨씬 더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까지 들어갈 수 있어요...그런데 저희가 추구하는 연극, 연극을 통해 가고 싶은 곳은 굉장히 극단적인 상태까지예요. 인간의 깊이든 고상함이든 아름다움이든 밑바닥이든, 그 극치를 같이 경험하고 생각하고 탐구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제한적인 환경 속에서는 어느 선에서 서로 예의도 지켜야 하고, 정말로 서로 얘기해야 할 것도 참게 되고 하잖아요. 가족이 되지 않았으니까. 글쎄요, 그게 어떤 사람들에겐 편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기질의 사람들에게는 성에 차지 않는 거죠.
'연희단거리패' 배우 윤정섭
시류를 신경 쓰지 않는 뚝심, 열정과 진지함은 이 극단의 핵심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태도처럼 보였습니다. 연희단거리패의 오늘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젊은 배우 중 한 명인 윤정섭 씨는 함께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연희단거리패는 하고 싶은 것(연극)을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너무 좋았고, 지금 새로 입단하는 단원들도 아마 비슷할 거예요...사람이 좋을 때가 있고 힘들 때가 있잖아요. 연극이 하고 싶어서 왔는데, 연극은 별로 안 하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일들도 하라고 하면 힘들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나한테 좋은 걸로 쌓일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불편한 것들이 내 안에 쌓여 결국 내가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에요.

연희단거리패는 ‘이상주의적 연극공동체’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들의 생활을 지켜보다 간 일본의 대학원생들이 붙여준 별명이라고 합니다. 네, 어쩌면 그들은 이상주의자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연극으로 먹고 살기 어렵다는 이 시대에, 여럿이 함께 모여 서로가 서로에 기댄 채 ‘오직 연극’을 꿈꾸고 연구하며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몽상가들이 아닙니다. 연극 관련 다양한 사업을 개발하고 쉴 새 없이 노동하며 자신들의 이상을 현실로 만들어왔습니다. 혈기왕성한 청년 연출가가 60대 거장이 되어가는 동안, 극단은 우리 연극계에 의미 있는 작품들을 끊임없이 제공해왔고, 극단의 핵심 구성원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배우로, 극작가로, 연출가로 다양하게 성장했습니다. 그들의 30년 역사가 이를 증명합니다.
지난 금요일 이윤택 씨는 기자간담회을 열고, ‘지나치게 세속화되어 버린 세계에 대한 연극적 저항’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노 연출가의 화끈한 출정사에, 공연담당 기자로서는 물론 연극을 사랑하는 관객의 한 명으로서 덩달아 마음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래주기를...지난 30년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 30년도 이 공동체가 살아남아 자신들의 이상을 현실로 만들어주기를...그래서 그들의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가슴 뛰는 경험을 계속 만들어주기를 기대해봅니다.

사회 다른 분야에서도 그렇지만, 예술에서 특히 연극에서 이런 소수의 열정적인 이상주의자들이 굳건하게 살아남는 것이 그 분야 전체의 생명력과 건강함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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