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쿡방'(요리하는 방송) 열풍에 힘입어 앞치마를 두른 남자가 대세로 자리 잡으며 설 명절 풍속도에도 변화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직장인 박 모(47)씨는 지난 설 연휴 기간 많은 시간을 부엌에서 보냈습니다.
예전 같으면 고작 밤 깎기 정도나 했을 테지만 올해는 자진해서 프라이팬을 잡고 산적, 동그랑땡, 야채전, 명태전 등을 부쳤습니다.
장시간 동안 허리 한 번 제대로 못 펴고 기름 냄새와 씨름해야 했지만 차례 음식을 준비하며 가족들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무엇보다 좋았습니다.
그동안 명절 때마다 아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도 새삼 알게 됐습니다.
박 씨는 "쿡방을 보고 요리에 조금씩 흥미가 생겨 직접 해보기도 하다가 이번 설에는 차례상 준비도 거들었다"며 "차례 음식이 일반 음식보다 손이 많이 간다는 사실을 알고, 그동안 여자들의 고생이 컸겠다는 생각에 미안함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사고방식 변화는 나이가 지긋한 부모 세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도 아들의 '부엌 금지령'을 포기한 지 오래입니다.
청주에 사는 심 모(65·여)씨는 "몸이 힘들면 서로 불만이나 아쉬움이 커지기 마련"이라며 "지난해부터 명절 때 아들, 며느리랑 다 같이 음식을 준비하니 싸울 일도 없고 왁자지껄해 명절 분위기가 더 나더라"고 전했습니다.
아예 차례를 생략하는 가정도 등장했습니다.
자영업자인 이모(41)씨네 가족은 이번 설에 차례를 지내기 위해 큰집을 찾아가는 대신 곧바로 조상 묘소로 향했습니다.
친지들과 묘소에서 만나 단출하게 준비한 음식을 펼쳐놓고 성묘를 한 뒤 예약해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점심을 함께하며 회포를 풀었습니다.
이 씨는 "차례를 생략하니 대식구 뒤치다꺼리를 안 해도 돼 힘도 덜 들고, 가족끼리 괜히 부딪히는 일도 없어 좋았다"며 "쓸데없이 많이 준비한 음식이 남아 처치 곤란에 빠지는 일도 없어 '일석삼조'인 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씨는 "물론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함께 지내면 좋겠지만 공연히 음식 준비로 큰소리가 오가고 불화가 생기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것 아니냐"며 "오히려 팔순 가까운 아버지가 제의해 차례를 안 지내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연휴가 길었던 이번 설에는 미리 성묘를 한 뒤 여행을 떠나는 가족도 많았습니다.
11일 한국공항공사 청주지사에 따르면 지난 6일부터 10일까지 설 연휴 기간 청주국제공항 이용한 승객 수는 모두 3만3천57명에 달했습니다.
이는 하루 평균 6천611명이 청주공항을 이용한 것으로 평소 하루 이용객 수(1천700명)와 비교하면 4배 가까이 많은 수치입니다.
이런 새로운 설 풍속도는 세태가 바뀌면서 현실에 맞춰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자주 만나지 못하던 가족, 친지가 모두 한자리에 모여 단란한 한 때를 보내는 명절 분위기가 점차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강희경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 핵가족화와 산업화에 따라 개인이 생산활동의 주체가 되다 보니 전통적인 가족 또는 명절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서 "또 다른 교류의 장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쿡방' 뜨니 남자도 음식 장만…달라진 설 풍속도
차례 안 지내고 산소서 만나 성묘만…"다툴 일 없고 우애 돈독"<br>닷새 황금연휴에 설 전에 미리 성묘하고 가족여행 떠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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