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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귀하게 느껴지는 연주'를 위한 헌신

지난해 10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일약 ‘스타’로 떠오른 조성진 씨의 귀국 공연이 열렸습니다. 쇼팽 콩쿠르 상위 입상자 6명이 함께 하는 이 갈라 콘서트는 당초 지난 2일 저녁 8시 공연만 계획됐지만, 뜨거운 예매열기 속에 같은 날 낮 2시 공연이 추가됐습니다.

티켓은 예상대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두 차례 공연 모두 예매가 시작된 지 한 시간도 채 안 돼 매진됐습니다. 쇼팽 콩쿠르 우승이 몰고 온 ‘조성진 열풍’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평일 낮 2시에 간 건 저도 처음이었는데, 햇살이 밝게 비치는 로비를 지나 어둑하고 아늑한 공연장 안으로 들어서니 조금은 낯설고 설레는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21살의 젊은 한국인 피아니스트, 그 스타 탄생의 과정을 목격하려는 사람들 속에 저도 있었습니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 갈라 콘서트에는 6명의 피아니스트가 등장했지만, 제게는 샤를 리샤르 아믈랭(Charles Richard-Hamelin, 제17회 쇼팽 콩쿠르 2위)과 조성진, 두 사람의 무대처럼 느껴졌습니다. 매끄러웠지만 밋밋하고 못내 아쉬움이 남았던 연주들 끝에 아믈랭의 연주가 이어졌습니다. 유연하면서도 섬세한 그의 음악은 피날레를 장식할 다음 연주에 대한 기대를 한층 높여줬습니다. 
마침내, 조성진 씨가 등장했고 객석에선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앞뒤 객석을 향해 단정한 인사를 하고 의자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 뒤, 조성진 씨는 쇼팽의 녹턴과 환상곡, 폴로네이즈를 차례로 연주했습니다.
 
시적이면서도 힘이 넘치는 연주였습니다. 날카로운 심사위원들의 시선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었던 그답게, 부담스러울 법한 고국 팬들의 시선 앞에서도 단단한 연주를 펼쳐 보였습니다. 콩쿠르에서 그에게 ‘폴로네이즈 최고 연주상’을 안겨주기도 했던 폴로네이즈 6번 ‘영웅’은 듣던 대로 탁월했고, ‘감상의 행복감’을 한껏 끌어올려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젊은 피아니스트가 이런 연주를 보여주기까지, 그의 10대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력이 있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린 나이에 외부적 요인보다는 강력한 내적 동기에 의해 음악가가 되기를 ‘선택’하고 흔들림 없이 그 길을 걸어온 젊은 연주자의 성취가 새삼 마음을 움직입니다.

공연을 하루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또래 친구가 많지 않아 요즘 20대가 어떻게 노는 지 잘 모른다고 그가 스치듯이 한 말은 음악을 향한 헌신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간담회가 진행되는 동안 조성진 씨는 담담한 듯 보였지만 긴장한 듯 했고, 대범한 느낌도 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퍽이나 조심스러워 보였습니다. 표정을 통해 감정을 읽기는 어려웠지만, 연주와 답변에서 그의 성품과 의지는 선명히 드러납니다. 귀하게 느껴지는 연주를 하고 싶다는 그의 말은, 그래서 더 믿음이 갑니다.
 
"귀하게 느껴지는 연주를 하는 사람이 정말 훌륭한 피아니스트이고, 음악가라고 생각을 해요. 저는 음악을 할 때만큼은 진지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요. 명곡은 작곡가들이 엄청난 노력과 고뇌를 통해 쓴 걸작이기 때문에, 그런 거를 대할 때는 되게 진지하게 대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그런 자세를 갖고 있는 사람을 훌륭한 음악가라고 생각을 합니다."
 
또 다른 연주를 위해 조성진 씨는 공연이 끝난 뒤 여독을 풀 여유도 없이 이튿날 바로 출국했습니다. 오는 4월에는 최근 전속 레코딩 계약을 맺은 권위 있는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정명훈 지휘자와 함께 첫 정규 앨범을 녹음하는 등 세계무대에서의 활동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세계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한 피아니스트 조성진 씨의 행보를 앞으로 전세계 수많은 음악 팬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볼 겁니다.

"제가 만 21살인데 언제까지 살 지도 모르고 어디가 정점일 지는 예측을 잘 못하겠지만, 제 마음속으로는 지금 이제 막 시작했다고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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