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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은 돈·사람 쓰는 것 조심, 이건희 회장은 끝 보는 스타일"

이번 주 출간된 수없이 많은 책 중에서 삼성가 두 회장의 수집 이야기를 담은 '리 컬렉션'(김영사)은 여러 면에서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재벌가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 이건희 회장의 수집 스타일이 어떻게 달랐으며 이들이 수집에 관여한 고미술이 어떤 것인가를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저자 이종선(68)씨는 1976년 삼성문화재단에서 일하기 시작해 1995년 이곳을 떠났다.

20여 년간 지켜봤을 일들을 좀 더 자세히 듣고자 29일 연합뉴스 사옥에서 이씨를 만났다.

그는 자신을 '걸어 다니는 골동품'이라고 말했다.

오랜만에 보는 007 가방에서 책과 메모지 등을 순서대로 내놓는 그에게 가방의 '연식'을 묻자 30여년 됐으며 봄마다 입는 바바리코트는 40년 정도 됐다고 들려줬다.

책 날개에 적힌 작가 약력에는 그가 호암미술관 설립과 개관, 운영을 위해 채용됐다고 소개됐다.

이씨는 "그때 이미 호암미술관이 터를 잡고자 공사가 시작됐더라"며 "정리된 게 아무 것도 없었다"고 돌아봤다.

학계연구실장, 부관장을 역임한 그의 신간은 두 회장의 수집방식, 컬렉션 과정뿐 아니라 삼성가 이야기도 '살짝' 담고 있다.

"이병철 회장이 부인 박두을 여사에게 엄격한 내조를 요구했던 데에 비해 이건희 회장은 홍라희 관장이 미술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보인다"(37~38쪽)고 서술하는 식이다.

이미 알려진 부분일 수 있지만, 새로운 이야기는 없는지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씨는 두 회장의 개성에 대해 "1년인가 지나서 대면한 이병철 회장은 차가운 인상이었다"며 "당시 박물관 건축 현장에 들르곤 했는데 경상도 사투리와 억양이 심했던 게 기억난다"고 했다.

이건희 회장에 대해선 "같은 1940년대생이어서 그런가 동질성도 있었고 실용주의 사고방식이 정서적으로 와 닿았다"고 말했다.

두 회장 중 그는 "이건희 회장이 더 겁났다"며 "이건희 회장은 무슨 얘기를 시작하면 끝을 봤다"고 했다.

그는 책에 "이건희 회장을 겪어본 사람은 이병철 회장보다 그를 더 어려워하는 편"이라며 이건희 회장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토론을 유도하는 방식이었다"고 적었다.

이병철 회장에 대해선 유교와 절제, 이건희 회장은 과감·개방적·글로벌·명품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소장품을 수집한 스타일은 어떠했을까.

"이병철 회장은 돈이나 사람이나 쓰는 걸 조심하고, 비싼 것은 절대 안 샀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은 구입했다. 관련 지식이 필요하면 얘기를 듣고선 판단하고 결정했다." 이건희 회장은 통이 컸다고 한다.

"값을 물어보지 않는다. 소장해야 한다고 얘기하면 그 가치가 있으니까 값을 깎지도 않는다. 어떤 때는 더 보태주기도 했다. 비유하자면 새가슴(이병철 회장)과 큰 맥주통이라고나 할까." 이씨는 이건희 회장에 대해선 "언젠가는 조선시대 좋은 전적류(고서)를 사놓으라고 하더라"며 "돈 쓸 데를 알고 결단력이 빠르다"고 말했다.

이씨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경제력이 있어서 수집이 가능한 건 아니었을까?" 그는 "그 문제는 개인의 소양에 달려있다고 본다"며 "5대 재벌 중 2대에 걸쳐서 이렇게 하고 있는 곳은 여기밖에 없다"고 말한 뒤 "누구라도 수집을 하고 박물관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호기심이 있어야 하고, 체계적 절차를 거쳐야 하며, 나름의 준비성과 경제력, 정보를 갖출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기업 비자금 사건을 비롯해 불미스러운 일에 미술이 연관될 때도 적지 않다.

또한, 재벌을 바라보는 눈길이 항상 고운 것만도 아니다.

이씨도 그런 시선에서 기업이 "자유롭지 않다"고 했고 "개인도 공과(功過)는 확실히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삼성의 경우 공(功)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황무지 같은 문화 분야에서 이런 걸 하지 않았느냐. 고무적은 것은 끌어줘야 한다." 인터뷰 중 자신을 타고난 '반골'이며 통제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씨에게 다른 일을 생각해보지는 않았느냐고 묻자 "우리 집이 가난했다"며 "인문학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이 국민에게 봉사해야 한다고 여겼다"고 답했다.

삼성을 떠난 지 20여년 후에 이런 책을 출간한 이유에 대해선 "첫사랑에 대한 여운이 오래가더라"며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수정하는데 10여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미를 추구했던 사람으로서 아름다운 결과를 낳고 싶다"며 "박물관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이제는 말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마무리했다.

이씨는 서문에 "이 모든 이야기에 대한 평가는 독자의 몫"이라고 적었다.

책에는 이병철 회장이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소재를 파악해야 직성이 풀릴 만큼 애착이 대단했다는 가야금관(국보 제138호), "일본에 있는 중요한 우리 미술품이 계속 북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얘기와 소문으로만 듣던 '김일성 컬렉션'에 대한 얘기를 들은 뒤 구입했다는 이암의 화조구자도 등에 대한 사연이 실렸다.

이씨는 동국대 교수, 서울역사박물관 초대 관장, 경기도 박물관장, 한국박물관학회장 등을 지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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