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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친인척 낙하산' 훈장에 '셀프 훈장'…이게 훈장의 국격?

[취재파일] '친인척 낙하산' 훈장에 '셀프 훈장'…이게 훈장의 국격?
정부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에게 주는 '훈장' 들어보셨을 겁니다. 사실 이 훈장을 받는다고 해서 금전적 보상이 따라오는 건 아닙니다. 그야말로 개인에게는 '명예'이고 국가의 '국격'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국민이 훈장을 받은 이들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존경을 표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 그것이 훈장의 국격 아닐까 합니다.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로 훈장이 수여됐다고 합니다. '훈장 잔치'를 벌였다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정부가 수여한 훈장은 12종 2만6,602건, 2년 만에 2배나 증가했습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에 무공훈장 등 7만2,903건을 수여한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곤 정부수립 후 역대 최대 규모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이유는 공무원연금법 개정과 맞물려 공무원들의 명예퇴직이 급증했고, 그러면서 명예퇴직과 정년퇴직 등 퇴직공무원들이 받는 근정훈장 수여도 급증했기 때문입니다.  
청조근정훈장
교육공무원이 퇴임할 때 받을 수 있는 최고 정부훈장인 '청조근정훈장'입니다. 어깨에서 몸통까지 걸치는 정장과 그외 부장, 금장, 약장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지방 모 국립대 A교수는 지난 2009년 총장으로 재임하면서 자신의 처남을 학교 기성회 직원으로 부당하게 채용한 사실이 발각돼 교육당국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런 '친인척 낙하산'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2월 A교수는 정년퇴임하면서 최고 훈장인 '청조근정훈장'을 받았습니다.
근정훈장
국가공무원은 퇴직할 때 국가에서 '근정훈장'을 받습니다. 직급이나 근속연수에 따라 청조부터 옥조까지 다섯 등급의 근정훈장이 수여되는데요, 국립대 총장은 장관급에 해당돼 A교수는 청조근정훈장을 받았습니다. 

이 사례를 포함해 비위 전력이 있는 교원 90명이 훈장이나 포장을 받고 지난해 2월에 퇴직한 걸로 당시 SBS 취재 결과 드러났습니다. 이들은 쌀 직불금 부당수령, 음주운전, 음주폭행, 공금유용, 아동 성범죄 수사기관 미신고, (불륜으로 의심되는) 품위유지 의무 위반 등의 비위를 저질러 징계를 받았던 전력이 있었습니다.

이런 비위 교원들의 정부 포상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난해 8월 퇴직교원 중 징계경력이 있는 127명은 포상이 보류되기도 했습니다.(관련기사 보러가기 ▶[단독] 음주운전·성범죄 교원들도 정부 포상 받고 퇴직 )
훈장과 포상의 종류
우리나라는 상훈법과 정부표장규정 등에 따라 무궁화대훈장을 포함해 12종류의 훈장과, 훈장 다음으로 가는 12종류의 포장 등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지난해 정부 훈장은 모두 2만6,602건이 수여됐습니다. 이 중 퇴직공무원들이 받아간 근정훈장이 2만2,981건으로 전체 훈장의 86%를 차지했습니다. 정부가 공무원 연금 개혁을 추진하면서 2014년과 2015년 2년간 공무원과 교사들의 '명퇴'와 정년퇴직으로 모두 4만1,529명이 근정훈장을 받은 걸로도 집계됩니다. 나머지 각종 국가 공로자들이 지난해 받은 11종류의 훈장은 3,621건으로, 전년보다 700건 정도만 늘었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 국민의 '공복(公僕)'으로서 일한 공무원들을 치하하는 것에 인색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최근 인기몰이를 했던 '응답하라 1988'에서, 26년간 일했던 직장에서 감사패 하나 못 받고 IMF 명예퇴직한 아버지에게 자녀들이 대신 감사패를 전했던 모습에 많은 분들이 '찡'했던 기억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수만 명이 한꺼번에 전체 국가 훈장의 8-90%를 가져가다보니, 훈장의 국격이라는 측면에서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무궁화대훈장
결이 좀 다른 얘기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무궁화대훈장'은 국가원수만이 받을 수 있는, 우리 나라 훈장 중에서도 가장 명예롭고 귀한 훈장입니다. 금, 은, 루비 같은 귀한 재료가 사용되며 제작비만 5천만 원 정도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3년 2월 27일, 대통령 취임 사흘째 되던 날 자신이 자신에게 수여하는 무궁화대훈장을 받았습니다. 앞서 2월 22일, 퇴임을 사흘 앞뒀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자신이 자신에게 무궁화대훈장을 수여했습니다. 닷새 사이로 전현직 대통령이 재임 중 스스로에게 '셀프 훈장'을 수여했던 겁니다.

행정자치부의 역대 대통령 서훈(훈·포장) 자료를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5.16 군사정변 직후와 유신체제 선포 직후 등 재임기간 동안 모두 다섯 차례 '셀프 훈장'을 서훈했고, 전두환 전 대통령도 12.12 군사반란 직후부터 대통령 재임 중에 모두 9차례 셀프 서훈을 한 걸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지난 2013년 검찰 추징금 환수 수사 당시 전 전 대통령은 훈장 9개 반납을 거부하다 결국 반납했다고 합니다.)

어떤 상이든 자신이 자신에게 '셀프 수여'하는 것은 그 상의 권위를 흔드는 일입니다. 하지만 1963년 상훈법이 제정될 당시부터 무궁화대훈장은 현직 대통령에게만 수여할 수 있도록 규정됐습니다. 그 이후 상훈법이 여러 차례 개정되는 동안 유독 무궁화대훈장의 현직 대통령 조항은 단 한번도 개정 대상으로 논의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셀프 훈장' 같은 코미디 같은 일이 계속될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참고로, 건국 이후 대통령령으로 존재해오던 무궁화대훈장 조항이 법률(상훈법)로 승격된 것이 1963년 12월 14일이었고, 사흘 뒤 12월 17일 박정희 신임 대통령이 법률에 의한 첫 무궁화대훈장을 받았던 게 이 법의 연원입니다.)

그간 굴곡진 우리 현대사 속에서 대통령의 퇴임은 불행하거나 초라했습니다. 오기 싫은데 끌려온 것 같은 굳은 얼굴을 한 전임 대통령은, 신임 대통령의 취임식장 뒷배경에 불과했습니다. 어제의 정적(政敵)이 오늘의 대통령이 되어왔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요, 퇴임하는 대통령에게 신임 대통령이 감사와 존경 혹은 지난 5년의 수고로움을 치하하는 마음을 담아 무궁화대훈장을 수여하면 어떨까요. 또는 전임 대통령이 신임 대통령에게 축하 혹은 앞으로 5년 동안 다가올 예측불가의 수고로움을 격려하는 의미로 무궁화대훈장을 달아주는 건 또 어떨까요. 21세기 한국의 국격을 담기엔 '셀프 훈장'은 한편의 블랙코미디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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