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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탈레반 이야기 2편 - 자기 발등을 찍은 파키스탄

지난 글에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출현과 지도자, 이념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2편에선 파키스탄탈레반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파키스탄 탈레반의 명칭은 ‘파키스탄탈레반운동’ (테흐리키 탈리반 파키스탄)입니다. 영어로 앞 글자만 따서 보통 ‘TTP’로 부릅니다.

TTP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2014년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말랄라 유사프자이 입니다. 말랄라는 파키스탄에서 여성의 교육권을 주창하다 괴한의 총탄에 머리에 맞고도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한 뒤 오히려 더 활발한 여성인권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말랄라의 암살을 시도한 게 바로 TTP 입니다.
파키스탄 여성인권 운동의 아이콘 ‘말랄라 유사프자이’

● TTP의 태동

TTP가 조직된 건 2007년 12월 13일로 기록됩니다. 파키스탄 북서부에서 탈레반을 지지하는 13개 이슬람 무장세력이 연합했습니다. 1994년에 결성된 탈레반과는 궤를 같이 하지만 다른 지휘계통을 가진 별개의 조직입니다.

TTP가 어떻게 만들어졌느냐를 두고는 여러 해석이 있는데, 2001년 아프간 탈레반이 축출되는 과정에서 탈레반 잔당들이 파키스탄 북서부 산악지대로 많이 숨어든 뒤 별개의 무장세력으로 전전하다 힘을 합쳤다는 설이 있습니다.

당시 파키스탄 정부는 중앙아시아와 교역로 확보와 아프간에 친파키스탄 정부설립을 위해 아프간탈레반을 지원해왔습니다. 탈레반들이 미국에 쫓겨 파키스탄 북서부에 숨어들었을 때도 미국의 압력에 불구하도 국경지대에 은신하는 걸 묵인해왔습니다.

왜 파키스탄 북서부냐? 구소련의 아프간 침공 당시 파키스탄 북서부에는 파키스탄의 어린이와 청년들이 전쟁의 화마를 피해 온 상태였습니다. 당시 오일머니가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차고넘쳤던 사우디아라비아는 자신들의 건국이념인 이슬람원리주의 사상 ‘와비히즘’을 이슬람권에 확대하기 위해 이슬람학교 ‘마드라사’를 중동 곳곳에 세우고 있었습니다.

공산정권을 피해 정착한 아프간 난민들이 몰려있는 파키스탄 북서부는 와히비즘 전파를 위해 요람이 됐고, 이곳에서 교육받은 젊은이들은 무자헤딘(아프간 전사)이 되어 다시 타도 공산정권을 위한 성전에 참여합니다. 결국 탈레반이 아프간에서 쫓겨나면서 무자헤딘이 대거 자신들이 교육받았던 파키스탄 북서부로 돌아왔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아프간에는 탈레반의 무장투쟁을 돕기 위해 파키스탄의 비밀요원과 군사교관들이 잠입파견 됐었는데, 이들이 탈레반 축출에 나선 미국에 협조하는 파키스탄 정부에 반기를 들어 파키스탄탈레반에 대거 가담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어쨌든 파키스탄으로서는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키운 고양이가 어느덧 호랑이로 자라서 자기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자승자박의 결과를 자초한 셈입니다.
TTP
● 탈레반과 이념적 동지

TTP의 현 지도자는 마울라나 파즈룰라 입니다. 처음 TTP를 결성한 바이툴라 메수드와 2대 지도자 하키물라 메수드는 모두 미국의 드론의 공격을 받아 사망했습니다. 파즈룰라는 말랄라의 암살을 지시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초대 지도자인 메수드가 TTP를 결성하기 이전인 2005년 탈레반의 지도자 물라 오마르에 충성을 맹세한 바에서 알듯이 TTP는 탈레반과 지휘계통은 달라도 사상적 궤를 함께 합니다. 파키스탄에 신정일치의 이슬람 칼리프국가 건설이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현 파키스탄 정부 전복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주로 파키스탄 정부와 군 시설을 주요 테러 목표로 삼아 왔는데 최근들어서 점차 테러의 대상을 민간시설로까지 넓혀가고 있습니다.

TTP는 불과 3,4년 만에 전세계에 이름을 알릴 정도로 강도 높고 대규모의 테러를 감행했습니다. 첫 테러 공격은 설립 일주일 만인 2007년 12월 21일 파키스탄의 전 내무장관이 방문한 이슬람사원에서 벌인 자살폭탄테러로 기록됐습니다.

2008년엔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메리오트 호텔에서 자살폭탄 공격으로 57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2009년 아프간의 CIA 지부에 자살폭탄 공격으로 서방에 주요 테러조직으로 각인이 됩니다.

TTP 역시 탈레반과 함께 알카에다로부터 자금과 군사훈련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때문에 테러 방식으로 자살폭탄을 주로 활용하는 것 뿐 아니라 규모면에서도 알카에다를 모방하고 있습니다. 2010년 5월엔 뉴욕의 상징인 맨해튼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폭발물 테러를 벌이려다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최악의 테러로는 2014년 12월 페샤와르의 군부설학교를 습격해서 학생과 교직원 등 150여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지난해에도 TTP에 3천 5백여명의 파키스탄인이 희생됐습니다.
페샤와르 습격
파키스탄 정부는 페샤와르 군부설학교 습격사건을 계기로 10만병력을 투입해 대대적인 TTP소탕작전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3천여명의 TTP대원을 사살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파키스탄에 2만 5천 명 가량의 TTP 조직원이 활동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파키스탄 정부의 공격이 시작되면 아프가니스탄으로 넘어가 있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파키스탄으로 내려와 보복테러를 감행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 TTP와 IS

최근 몇몇 보도에선 TTP가 알카에다와 등을 돌리고 IS에 충성을 맹세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제 생각에는 전체적인 TTP의 줄기는 여전히 알카에다와 닿아 있습니다. 아마도 ‘호라산그룹’과 혼동하고 있지 않나 생각듭니다.

아프간이니 파키스탄이니 하고 국경선이 갈리기 전 이란 동부와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지역을 호라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활동하는 이슬람 무장조직을 통틀어서 호라산그룹이라고 합니다. 30~40개 정도로 알려졌는데 지난해 이중 10여개 조직이 IS에 충성을 맹세하는 장면이 IS 홍보영상을 통해 공개된 적이 있습니다. IS는 이를 ‘호라산 지부’로 명명했습니다.

아프간탈레반의 경우 산하 조직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IS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고 TTP에선 ‘준달라’라는 분파가 IS에 충성을 맹세했다는 주장도 있고 반대로 준달라가 ‘IS는 이슬람이 아니다’라며 비난도 했다는 보도가 엇갈리는 상황입니다. 일단 현재로서는 TTP의 경우는 알카에다 라인으로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미국은 물론 서방세계는 TTP가 아프간탈레반에 비해 세력은 약하지만 파키스탄 정부를 전복할 경우 IS와 비교할 수 없는 위협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파키스탄은 핵무기 보유국입니다. 자칫 이 핵이 TTP로 넘어갈 경우 상상을 초월하는 위협이 지구촌을 뒤덮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IS에 충성을 맹세하는 ‘호라산’의 이슬람무장조직
● 탈레반과 IS

아프간탈레반과 TTP의 관계를 정리하자면, TTP는 탈레반의 곁가지로 태어났지만 탈레반과는 별개의 동체를 가졌다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탈레반은 요즘 아프간에서 IS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IS는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탈레반 휘하조직을 하나 둘 자신의 수하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탈레반은 아프간에서 칼리프제국 건설이 목적인 민족주의자라면, IS는 전세계에 칼리프제국 건설이라는 광역적인 이념으로 지구촌 전체를 이슬람 성전의 도가니로 몰고라는 광신도 집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군 중심의 나토군이 아프간에서 탈레반의 준동을 저지하기 위해 주둔을 연장하는 가운데 이게 반대로 IS의 세력 확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역설도 나옵니다.

반대로 러시아는 IS 격퇴를 위해 탈레반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아프간 특사는 대놓고 “탈레반과 러시아의 이해가 객관적으로 일치한다”며, 탈레반과 정보교환 통로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구소련 시절 무자헤딘을 눈에 가시처럼 여겼던 러시아가 IS 때문에 ‘적의 적은 동지’라는 공식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가장 큰 위협은 이슬람교도가 대부분인 체첸입니다. IS 가담자가 가운데 상당수는 러시아의 영향권에 이는 카자흐스탄과 체첸의 이슬람교도입니다. IS가 자칫 중앙아시아 지역의 러시아 이슬람교도와 연계해 러시아 본토에 대한 위협을 가중시킬 것이란 우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아프간에 IS가 세력을 키운다면 러시아로선 앞마당을 내주는 격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중국 역시 신장 위구르지역의 무슬림을 다스리기 위해 탈레반의 영향력을 이용해오고 있습니다. 탈레반은 오마르 시절 중국에게 위구르의 이슬람 조직을 자신들은 돕기 않는다는 걸을 애써 강조해왔습니다. 신장의 위구르족들이 IS에 가담하면서 중국으로선 아프간까지 IS가 자리를 잡는 걸 원치 않고 있습니다.

일련과 과정을 돌이켜보면 국제정치는 참 아이러니 합니다. 공산정권을 견제하려고 탈레반을 키워놓은 파키스탄은 20년 뒤 자신의 만든 괴물에 매년 수천 명을 희생시키고 있습니다. 40년 전 서로에게 총구를 겨눴던 아프간의 지하디스트들과 구소련의 후예 러시아는 이제 암약적으로 손을 맞잡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는 탈레반 퇴치를 위해 군대를 주둔시키고 어느 나라는 탈레반이 사라지면 더 무서운 암이 자기한테도 퍼질까 은근히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보면 국제정치에서는 여전히 ‘정의’보다는 ‘자국의 이해’가 더 우선된다는 자명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 [월드리포트] 탈레반 이야기 1편 - "이성은 개한테나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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