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특히, 스스로 목숨을 거둔 경우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남겨진 가족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황망한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에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조차 힘이 듭니다.
그 단계가 지나면, 다른 사람들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없는 현실에 답답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손가락질 할 까봐, 남은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까봐,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슬픔을 털어놓지도 못하고 오랜 삶의 터전을 떠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죽은 사람의 말을 들어보려는 시도가 바로 ‘심리부검’입니다. 세상을 떠난 사람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그 과정을 통해 고인의 마지막 선택을 좀 더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는 겁니다. 국내에선 지난 2014년에 처음 중앙심리부검센터가 문을 열었습니다.
40대 가장 A씨는 밝고 다정다감한 아빠이자, 남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말수가 적어지고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식사량이 감소하면서 체중도 줄어들었습니다. 혼자 다른 생각에 빠져있어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은 “회사가 지옥이야, 떠나야 돼.”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회사 업무로 스트레스가 많나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이후 남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5년 전 일입니다. 부인 김모 씨는 ‘왜 남편을 돌보지 못했을까?’라는 자책이 들었습니다. 또 가족끼리 함께 친하게 지내던 주변인들도 남편이 자살했다는 이유만으로 이야기를 꺼내는 걸 조심스러워 했습니다. 김씨는 남편과 함께 했던 좋은 추억까지 함께 공유되지 못하고 잊혀져 가는 것 같아 더욱 슬픔에 빠졌습니다.
지난 2014년 겨울, 남편을 떠나 보낸 심명자 씨도 처음엔 사망 사실조차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자살을 선택할 거란 징후도 전혀 없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남편의 죽음이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상한 점이 하나, 둘 기억났습니다. 심 씨는 원래 ‘욱’ 잘 하고, 다혈질이었던 남편의 성격이, 어느 순간부터 유해졌다고 말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성격이 변하나 보다’ 싶었습니다. 죽기 1년 전쯤엔 ‘우울증이 온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장애가 있는 둘째 아이를 돌보느라 힘들었던 부인은 ‘나도 우울증이 있어’라고 대답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또 평소 ‘셀카’를 절대 찍지 않았던 남편이 죽기 하루 전날 밤 갑자기 카메라를 꺼내서 ‘셀카’를 찍는 것도 이상했습니다. 다음 날 발견된 유서에선 그 사진을 자신의 영정 사진으로 써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김 씨와 심명자 씨 남편 모두 죽기 전 일종의 ‘자살 경고신호’를 주변 사람들에게 보냈습니다.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121명의 가족들을 상대로 심리부검을 한 결과 93.4%가 죽기 전 이상 신호를 보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가족들 가운데 81%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해 적절한 도움을 주지 못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중앙심리부검센터는 자살 전 경고신호를 크게 언어, 행동, 정서적 경고로 나눌 수 있다고 봤습니다. 죽음에 관해 직접적으로 언급(“내가 먼저 갈 테니, 건강히 잘 지내고 있어”)하거나, 자살 방법에 대한 언급(“총이 있으면 편하게 죽겠다”), 사후 세계를 동경하는 표현(“천국은 어떤 곳일까?”) 등이 언어적 경고 신호에 속합니다.
수면 상태의 변화, 식욕 감소, 음주량 및 흡연량 증가, 외모 관리에 무관심(염색할 때가 됐는데 하지 않음) 등은 이상 행동에 속합니다. 또 무기력, 대인기피, 흥미상실 등과 같은 정서적 변화도 눈 여겨 봐야 할 경고 신호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심리부검 분석 결과 또 하나 눈길이 가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고인이 된 121명 가운데 28.1%가 가족의 자살이나, 혹은 가족의 자살 시도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는 겁니다. 바꿔 말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망자 역시 누군가의 ‘자살 유가족’이었다는 뜻입니다. 심리부검의 중요성을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심리부검은 고인의 삶과 극단적 선택을 이해하는 작업인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을 이해하고 싶고,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유족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남겨진 가족들에게 얘기해도, 기억해도, 함께 나눠도 괜찮다고 말하며 상처를 어루만지는 시간입니다. 그들에게 혹시라도 극단적 선택이 대물림 되지 않도록, 전염되지 않도록 말할 수 있고 슬퍼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제공해줘야 합니다.
심명자 씨와 김 씨 역시 심리부검에 참여해 많은 도움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남편의 죽음을 겪고 원망만 가득했던 심 씨의 마음은 그를 이해하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를 생각하니 그의 선택을 전부는 아니지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김 씨는 심리부검 과정을 마친 뒤 ‘족쇄에서 풀려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남편의 죽음이 자신, 혹은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란 점을 알게 됐습니다. 또 나와 오랜 세월 함께 살았던 사람에 대해서 마음껏 회상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통해서, 그간 부정당했던 자신의 삶을 회복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김 씨는 기자에게 심리부검을 통해 ‘남편과 함께 지낸 시간들이 누군가에 의해서 모욕당하지 않아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녀는 수많은 자살자 가족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런 죽음과 더불어, 외롭게 숨어서 누군가에게 말도 못하고 슬픔을 버텨내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핀란드에선 지난 1986년 높은 자살률 감소를 위해 국가 자살예방대책을 수립하자는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 결과 이듬해부터 심리부검을 실시하게 됐습니다. 핀란드 국립보건원 주도 아래 4백 개 지자체와 3개 거점병원, 5개 대학병원이 심리부검사업에 참여했고, 심리학자와 정신보건간호사, 의사, 사회복지사 등 모두 245명의 정신보건전문가가 투입됐습니다. 심리부검 결과를 토대로 1991년 자살예방대책이 세워졌고, 1990년 10만 명당 30.2명이었던 자살률이 지난 2012년엔 15.8명으로 47.7%나 감소했습니다.
이에 비하면 아직 국내 심리부검 사업은 걸음마 수준입니다. 2014년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출범했지만, 아직 직원은 11명(전문의, 임상심리전문가, 정신보건사회복지사 등), 1년 예산은 9억 6천만 원(올해 기준)에 불과합니다. 이 11명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한 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약 만 4천 명입니다. 자살률은 OECD 국가 가운데 11년째 1위입니다.
지난해 심리 부검에 참여한 사례가 121건(사망자 기준)인 점을 비춰볼 때, 아직 도움이 절실한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뜻입니다. 극단적 선택의 원인을 파악하고 사전에 이를 예방할 수 있도록, 남은 가족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도록 더욱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죽기 전 많은 말을 남깁니다. 자신을 붙잡아주고, 이해해달라는 말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겁니다.
[취재파일] "족쇄에서 풀려났다"…마음을 치유하는 '심리부검'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죽기 전 '신호'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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