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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탈레반 이야기 1편 - "이성은 개한테나 줘라"

[월드리포트] 탈레반 이야기 1편 - "이성은 개한테나 줘라"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의 테러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파키스탄 페샤와르 인근의 대학에선 총기 난사로 22명이 숨졌고, 같은 날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선 탈레반의 성폭행 의혹을 보도한 방송국의 퇴근 버스가 자살폭탄 공격을 받아 7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탈레반 하면 뭐가 떠오르나요? 아프가니스탄이야 당연할 테고, 이슬람근본주의, 자살폭탄, 여성 차별, 투석형, 공포정치 같은 것들이 연관돼 기억될 겁니다. 아, 알카에다와 오사마 빈 라덴도 떠오르겠네요.

많은 분들이 요즘 세계를 테러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 IS에 대해선 잘 알면서도 이슬람 무장세력의 원조격이자 이슬람 근본주의 = 테러리스트라는 단순화의 함정을 제공한 탈레반에 대해선 ‘악랄하다’ ‘무섭다’ ‘나쁘다’ 정도로 피상적으로만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된 탈레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점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탈레반은 완전히 다른 조직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는 탈레반을 말합니다.

파키스탄의 탈레반은 ‘파키스탄 탈레반(TTP)’라고 부르며, 원래 탈레반 과는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 건설의 목적은 같지만 지도자도 체계도 완전히 다른 별도의 조직입니다.
탈레반은 알카에다가 충성을 맹세할 정도로 이슬람 무장세력의 원조격입니다.
● 탈레반의 태동
탈레반이 ‘학생들’이란 뜻을 가진 건 많은 분이 아실 겁니다. 탈레반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1994년 봄부텁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은 1989년 구 소련군이 철군하면서 공산정권이 무너졌고, 게릴라전을 벌이던 무자헤딘(이슬람전사)이 분열돼 서로 총구를 겨누며 치열한 세력다툼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었습니다. 파슈툰족의 헤크마티아르와 타지크족의 마수드라는 양대 군벌의 세력 다툼으로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가난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군벌에 고통 받던 아프간 주민들에게 썩은 권력을 털어내고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한 국가 건설을 외치는 탈레반은 이슬람 본연의 가치를 실천하는 청렴한 전사로 비춰졌습니다.(그런 청렴함이 탈레반이 ‘공포정치’에도 불구하고 아프간에서 사라지지 않고 버티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봅니다.)

탈레반의 성장 배경엔 파키스탄의 욕심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친미정권이었던 파키스탄은 소련의 아프간 침공 당시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아프간의 무자헤딘에게 은밀히 자금과 무기를 지원해왔습니다.

이런 가운데 파키스탄 정부는 인도양에서 중앙아시아와 이란으로 연결하는 교역로 확보에 관심을 보입니다. 아프간 남부인 칸다하르를 통하는 루트의 안전확보가 꼭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탈레반을 끌어들입니다. 1994년 봄 파키스탄은 대 소련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무기 집하장을 통째로 탈레반에 넘깁니다. 파키스탄 군병력의 절반을 무장시킬만한 무기였다고 합니다.

이후 탈레반은 날개 단 용이 됩니다. 파죽지세로 칸다하르를 장악하고 소련군이 남기고 간 전투기와 헬기. 탱크도 손에 넣으면서 막강한 전력을 갖춥니다. 불과 1년 만에 아프간의 34개주 가운데 남부와 동부의 10개주를 점령합니다.

당시 파키스탄 국경지대엔 내전으로 피신한 아프간 소년과 청년들이 많았습니다. 사우디는 이곳에 이슬람 학교 마드라스를 세웁니다. 이 곳에서 이슬람을 바로 세우겠다는 원리주의 신념에 가득찬 젊은이들이 대거 탈레반에 가입했습니다. 파키스탄의 자금지원과 이슬람 원리주의 신념, 그리고 파슈툰족의 민족주의가 삼박자로 맞아떨어지면서 탈레반은 불패의 전사로 급성장합니다.
아프간탈레반의 창시자 ‘물라 오마르’
● ‘애꾸눈 오마르’
탈레반의 설립자이자 지도자인 물라 오마르(물라는 선생이라는 의미)는 아랍어와 파슈툰어를 겨우 읽고 쓸 정도의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대 소련 투쟁당시 휴대용 로켓을 잘 다뤄서 무자헤딘 군벌의 부사령관까지 승진했다고 합니다.

1990년대 마드라스(시골학교)로 돌아와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의 시골마을에서 훈장 일을 하면서 지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느 날부터 꿈속에서 한 여성이 나타나 당신이 일어나 혼란을 끝내야 하고 당신을 알라가 도울 것이라고 말하더랍니다. 그런 뒤 오마르는 마드라스 동료 50여명과 탈레반 조직합니다. 이게 탈레반의 탄생입니다.

오마르에 대해선 신화 같은 이야기들이 전해져 옵니다. 오마르는 한쪽 눈을 전투에서 잃었는데, 상처 입은 눈을 직접 칼로 도려낼 정도로 용맹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마을의 소녀들이 군벌 세력에 납치돼 성폭행을 당했는데 추종자들을 이끌고 이들 군벌을 공격해 성폭행범을 탱크 포신에 목달아 죽였다고 합니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이런 신화적 스토리를 바탕으로 탈레반은 도탄에 빠진 아프간 주민을 위해 궐기한 정의의 세력으로 각인됐습니다.

탈레반이 아프간 남부를 점령하면서 최대 무장세력으로 성장한 1996년 4월, 오마르는 칸다하르 최고층 빌딩에 ‘전설의 외투’를 걸치고 올라섭니다. 이 외투는 이슬람 선지가 무함마드가 입었다는 것으로 칸다하르의 유명 사원에 보관돼 있던 거였습니다.

오마르는 자신이 무함마드의 후계자이면서 이슬람의 최고 지도자임을 스스로 자처한 겁니다. 그리고 수도 카불로 진격을 명합니다. 두 달 뒤 1996년 6월 수도 카불은 탈레반의 수중에 떨어집니다. 바야흐로 아프간에 탈레반 시대가 열린 겁니다.
1970년대와 현재 아프간 여성은 삶은 극단의 차이를 드러냅니다.
● “이성은 개한테나 줘라”
탈레반은 부패한 군벌 세력에 비해 훨씬 청렴했습니다. 어차피 이슬람교도인 아프간 주민은 썩을대로 썩은 군벌보다 이슬람의 교리를 바탕으로 정의를 실천할 것 같은 탈레반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탈레반은 이슬람 원리주의였습니다. 그야말로 이슬람율법대로 아프간을 통치했습니다. 종교도 공포스럽다는 걸 증명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당장 여성들의 학업과 취업을 금지했습니다. 8천명의 여대생이 퇴학조치됐고, 40%의 의사, 50%의 공무원, 70%의 교사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루 아침에 실직자가 됐습니다. 여성은 외출도 금지했습니다. 남성은 턱수염을 강제로 기르게 했습니다.

초기 칼리프 시대의 엄격한 법이 적용됐습니다. 영화와 음악을 금지하고 절도범은 손을 잘랐고, 간통한 이는 돌을 던져 죽였습니다. 심지어 무함마드가 나무 뿌리로 이를 닦았다는 이유로 치약마저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우상 숭배라며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바미안 불상을 폭파시켜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탈레반 하면 가장 유명한 문구는 ‘이성은 개한테나 줘라’ 입니다. 종교경찰청 앞에 붙여진 문구인데 탈레반은 이성을 서양 사상이 만든 악으로 취급했습니다. 이성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의 옳고 그름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라고 본 거죠. 자신들은 오로지 종교적 신념에 따라 타협 없이 행동한다는 걸 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이런 공포정치를 펼치던 탈레반은 2001년 알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을 비호하다는 이유로 미국의 침공을 받고 결국 정권에서 축출되고 맙니다.

● 사라지지 않는 탈레반
2001년 이후의 상황은 많은 분들이 잘 알고 있으실 테니 생략하겠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정권에서 축출됐다고 탈레반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탈레반은 여전히 아프간 전역에서 게릴라전을 벌이며 세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프간의 30%가 탈레반의 지배아래 놓여 있다는 아프간 정부 발표도 있습니다. 그렇게 이슬람 교리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탈레반이 정작 아편으로 자금을 모으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닙니다. 아프간은 세계 최대의 아편생산국 가운데 하납니다.

최근 탈레반의 설립자인 오마르가 2년 전에 이미 죽었다는 사실이 알려졌죠. 그러면서 만수르라는 자가 탈레반의 지도자로 선출됩니다. 경쟁 세력과 치열한 다툼을 벌여 탈레반이 내분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일단 만수르가 지도자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만수르가 지휘관 회의도중 말다툼 끝에 경쟁세력 지휘관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는 설도 있었지만 얼마 전 육성 녹음을 공개해 아직도 건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최근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은 평화협상을 벌이고 있었는데, 오마르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고 강경파인 만수르가 새 지도자로 선출되면서 평화협상도 완전히 중단된 상탭니다. 아프간의 평화는 여전히 멀고 험난한 여정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파키스탄 탈레반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떤 점에서 다른지, 그리고 IS와 탈레반의 관계는 어떤 지에 대해선 다음 편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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