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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3D프린터가 불러온 의료혁명

[취재파일] 3D프린터가 불러온 의료혁명
-'맞춤형 수술'로 성공률 100% 도전
-훌륭한 미래 먹거리산업…정부 허가 관행 개선이 관건

무엇이든 프로그램대로 찍어낸다는 3D프린터가 의료계에도 커다란 전환점을 찍어낼 것으로 보입니다. 벌써부터 병원의 시술이나 수술 소개란에선 '3D프린터'란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의료계에서 3D프린터가 가장 많이 활용되는 곳은 치과의 '치아교정 분야'입니다. 지금까지 '치아교정'은 고무같은 것으로 입안을 떠서 석고(돌가루반죽)같은 치아모형을 만드는 과정부터 시작됐습니다. 그 모형을 기초로 이른바 '철길'이라는 교정틀을 제작하거나 투명필름을 찍어서 치아에 맞추는 형식이었죠.

그런데, 석고 틀은 정확히 치아구조를 찍어내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외부 충격 등에 의해 변형되기 쉽습니다.  정교하지 못한 교정기를 착용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치과의사를 만날 때마다 다음 단계의 교정틀을 만들기 위해 매번 고무같은 물질을 입안에 물어야 하는 수고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3D프린터의 등장은 이런 복잡한 과정을 단순화시켰습니다. 3D스캔으로 입안을 정확히 측정한 뒤 '교정프로그램'을 이용해 현재부터 단계별로 교정 후의 모습까지 설정을 해 놓습니다. 그 설정대로 3D프린터가 찍어낸 치아구조 모형을 토대로 교정틀을 만들어 내는 겁니다.

4시간 뒤면 이 틀에 따라 '1년에 12단계' 또는 '10개월에 8단계'...이런 식으로 투명교정기를 찍어내고, 환자는 이 틀을 의사의 지도에 따라 끼고만 있으면 됩니다. 스캔을 정확히 하면 교정틀의 정확성도 높일 수 있습니다.

변욱 치과전문의의 말입니다. "기존에도 투명교정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본을 떠서 기공소로 보내고 기공소에서 작업을 하고, 보철물을 받는데 보통 1주일 이상 걸렸습니다. 그러나 3D프린터를 이용하면 진단해서 바로 출력을 해주기 때문에 하루안에 교정기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3D프린터는 입안 치아의 상태를 거의 오차없이 정확한 모형을 복제해 줍니다. 뒤틀림이나 그런게 없어졌죠. 환자가 얼마나 편하겠습니다. 그게 바로 치아 교정계의 혁명입니다"

치과 다음으로는 정형외과에서 3D프린터를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관절은 키에 따라서, 뼈의 굵기에 따라서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인공 관절 수술은 일단 절개를 한 뒤 환자의 뼈상태를 확인하고,  일정한(누구에게나 적용하는)수술 틀을 이용해 인공관절을 넣어서 각도와 위치를 고정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3D프린터가 도입된 뒤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먼저 환자의 수술부위를 그대로 모형으로 재현합니다. 수술 전에 환자의 관절(똑같은 모형)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그 모형에 수술 도구를 다 맞춰보고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있게 된 겁니다. 그 결과 수술 시간이 대폭 줄어들고, 수술의 성과도 좋아지게 됐습니다.
사진=게티 이미지
뼈의 모습을 수술 전에 그대로 재현해 낼 수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수술을 할 때 절개하지 않고도 뼈의 구조나 뼈 뒤의 보이지 않는 곳까지도 모두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얼굴 뼈 뒤에 숨은 암세포 제거 수술은 이미 3년 전 국내 삼성의료원에서 성공시켰는데, 이 때도 3D프린터가 큰 활약을 했습니다.

교통사고 등으로 두개골이 함몰된 경우, 머리뼈를 3D프린터로 찍어내서 그에 맞는 보형물을 제작하면, 수술에 들어가서 '레고식 맞춤형' 수술로 모든 과정을 마칠 수 있습니다. 수술시간이 짧아지면 환자의 안전이나 회복속도도 덩달아 빨라질 수 있습니다. 

대동맥 수술을 할 때에도 3D프린터로 심장과 대동맥 부분을 출력한 뒤 모의 수술을 해보면, 실제 수술에 들어가서 빠르고 정확한 수술이 가능하다고 흉부외과 전문의들은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처럼 3D프린터는 뼈나 장기, 신체일부를 정확한 모형으로 출력해 내는 식으로 의료계에 큰 바람을 몰고 왔습니다. 시뮬레이션 바람, 모의수술 바람입니다.
사진=게티 이미지
그런데 솔직히 기자인 저도 취재 전까지는 3D프린터가 직접 뼈, 장기, 신체 일부를 찍어내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모형을 바탕으로 한 시뮬레이션 도구로서가 아니고 말이죠.

신체 일부를 직접 찍어내는 것을 '바이오 프린팅'이라고 하는데, 이 바이오 프린팅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대학병원은 물론 일선 성형외과나 정형외과에선 인공혈관이나 인공뼈, 인공 신체 일부를 '시험용'이란 단서를 달긴 했어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만들 능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지만 상용화는 아직 안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태어날 때부터 한쪽 귓바퀴가 없었던 이 모씨는 현재 세브란스 병원에서 귀 이식 수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3D프린터로 귀를 만들어 낸 겁니다. 얼굴 뼈 재건에 쓰이는 재료로 만들었기 때문에 안전에도 문제가 없다는게 의료진 판단입니다. 지난 9월 출력을 마쳤는데도 아직 이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식약처의 '허가' 때문입니다.

이씨의 담당 주치의 윤인식 교수의 말입니다. "지난해 9월쯤, 3D프린터로 인공 귀를 다 만들어서 늦어도 12월이면 환자에게 이식할 걸로 생각했습니다. 이미 사용되는 재료로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게 제작을 한거죠. 하지만 이게 맞춤형 보형물이다보니까 한건 한건 건별로 허가를 얻어야 하더라고요. 환자에게 기다리라고는 했는데, 솔직히 (허가는) 오리무중이죠..."

아직까지 관련 제도가 없다는 이유로, 식약처에선 건별로 허가를 받도록 해놓은 겁니다. 이에 대해 의료계 일선에선 대놓고 반발은 못해도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제가 직접 만났던 의료계 인사들의 말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의과대 흉부외과 교수
"출력물의 장벽보다는 시스템, 사회 시스템의 장벽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의과대 방사선종양과 교수
"3D프린터 기술은 급격히 발전하는데, 의료인허가 문제 때문에...이런 인허가 문제에 대한 지속적 연구가 필요합니다."

#정형외과 전문의
"인공관절을 충분히 만들수 있어요. 저희도 만들어서 연구중입니다. 그런데 바로 쓸 수 없어요. 허가가 나야 하는데, 너무 오래 걸려요. 2년, 3년? 외국에선 바로 해서 논문을 내거든요. 우리는 허가과정에서만 3년 가까이 뒤지는 겁니다."

#성형외과 전문의
"미국이나 유럽에선 너무 활발히 연구가 진행됩니다. 현재 우리 기술력으로는 따라가는게 아니라 앞서갈 수 있거든요. 그런데 제도가 안 따라주는 상황에서 미국 유럽이 시장을 장악해버리면 한국은 또다시 사다써야 하는 상황이 되는거죠. 다시 말해, 고속도로는 뚫어 놨어요. 그런데 통행금지라는 겁니다, 지금...왜? 신호등이랑 차선을 못 그렸다고 다니지 말란 겁니다."

앞으로 10년 안에 3D프린터 시장은 10조원대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 가운데 의료분야가 2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3D시장의 국가별 점유율이 2%대에 그치고 있습니다.

도입 초기부터 의료분야에서만도 '혁명'을 몰고 올 것으로 기대됐던 3D프린터. 의료계 일선의 부단한 시도와 환자들의 관심, 엔지니어들의 기술개발 의지 등을 종합해보면 발전 가능성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 바이오먹거리로 큰 역할이 기대됩니다. 규제의 고삐를 잡고 있는 정부가 조금만 더 똑똑해진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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