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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족보' 따지던 조폭 사라지고 '스마트 조폭' 시대

조폭 시장에도 아웃소싱이 대세?

[취재파일] '족보' 따지던 조폭 사라지고 '스마트 조폭' 시대
영화 신세계의 '골드문'과 공공의 적의 '거성', 둘 다 성공한 조폭 기업입니다. 영화 속 조폭들은 모두 멋진 양복을 빼입은 '정규직' 직원들입니다. 건설, 금융, 경비용역 서비스 등 사업 영역도 다양하게 묘사됩니다. 요즘 조폭들이 추구하는 기업형 조직의 롤모델입니다.

실제로 떼 지어 몰려다니며 세를 과시하고 영역을 나눠 유흥업소에서 돈을 뜯던 조폭들의 모습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수사 기관들의 관리도 엄격하고 세를 과시하며 모습을 드러내 봐야 득 될 게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조폭들은 그 모습을 감춘 채 살고 있습니다. 그만큼 조폭 시장도 '불황'을 겪고 있는 겁니다. 불황이 깊다 보니 이유 없는 물리적 충돌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조폭들이 '족보'를 따지며 실익 없이 싸우는 일이 있었습니다. "니들이 4조 맛을 알아?"라는 한 마디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4조 맛'이란, 범죄 단체를 구성하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처벌을 할 수 있는 '폭처법(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4조'를 뜻합니다. 이 법으로 한 번쯤 처벌받은 전력이 있어야 '뼈대 있는 조폭'이라는 겁니다. 폭처법 4조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조폭이 그렇지 않은 조폭에게 '족보도 없는 놈'이라며 놀려댔다가 호되게 당했던 일화입니다.

하지만 요즘 조폭들 사이에서 이런 싸움은 하수 중의 하수나 벌이는 일입니다. 오직 돈의 논리만이 중요하기 때문에 쓸데없는 일에 힘을 빼려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힘쓰는 일은 다른 조폭들에게 맡기고 싶어할 정도입니다.
이른바 조폭계에도 '아웃소싱'과 '하청'이 대세입니다. 서울 이태원을 무대로 활동해 온 이태원파는 한때 조직원을 뽑을 때 키 175센티미터 이상에 깔끔한 외모와 영어 실력을 강조했습니다. 이렇게 뽑힌 조폭들은 '정규직'에 해당합니다. 이들은 두목의 지시로 경비 용역이나 채권 추심 등 각종 사업을 따낸 뒤 실제로 힘을 쓰는 일은 지방 조직 폭력배들에게 맡겼습니다. 폭력의 하청 시스템입니다.

이태원파는 하청을 맡길 '협력업체'를 구하기 위해 지방을 돌며 돈독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사업 영역을 넓혀나가던 이태원파는 2009년 경찰의 수사망에 걸려 사실상 조직이 와해됩니다.

잠잠하던 이태원파가 최근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우리나라 불교계에서 두 번째로 큰 종단인 태고종에 손을 뻗친 겁니다. 태고종은 지난해 초 두 번에 걸쳐 내부 폭력 사태를 겪었습니다. 총무원장 측과 반대파인 비대위원회 측 스님들이 떼를 지어 몸싸움을 벌이고 서로 폭행하는 볼썽사나운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비대위 측에서는 한 때 '배차장파' 부두목까지 지낸 한 스님이 '맹활약'했습니다. 이 스님의 활약으로 비대위 측은 총무원 사무실을 접수하고 승기를 굳히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총무원장 측의 역습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용역 깡패가 동원된 이 역습으로 '배차장파' 부두목 출신 스님도 상처를 입고, 비대위 측 승려들은 모두 총무원장 사무실에서 쫓겨났습니다. 전직 조폭 출신 스님도 꼼짝 못하게 할 이 '기습' 공격의 배후에 이태원파가 있었던 겁니다.

이태원파 두목 서 모 씨는 이번에도 실제로 폭력 사태에 가담하지 않고 다른 조직원들에게 '하청'을 맡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종단이 안정되면 경비 용역 등 각종 이권을 보장받고 비대위 측을 공격할 조폭들을 제공한 혐의입니다. 서 씨의 이런 은밀한 하청 방식 때문에 검찰도 서 씨를 검거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건 발생 후 거의 1년이 지나서야 서 씨의 범행 정황을 포착해 구속할 수 있었습니다. 이권만 따내고 폭력 현장에는 나타나지 않는 '스마트 조폭'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 씨는 이번 폭력 사태에 개입한 혐의로 구속된 사실에 대해 억울해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자신은 과거를 청산하고 이태원에서 작은 사업을 운영하며 조용히 살고 있는데, 본의 아니게 사건에 휘말렸다는 겁니다.

서 씨가 진짜 '스마트 조폭'인지, 억울한 사업가인지는 향후 검찰의 수사와 재판 과정을 통해 확인될 겁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조직폭력배들이 갈수록 지능화되고 기업화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만큼 수사 기관도 더욱 정교한 수사망을 구축해야 합니다. 또 우리 눈에 예전보다 덜 보인다고 해서 조폭의 폐해가 사라진 건 아닙니다. 폭력을 앞세워 약자를 괴롭히는 조폭의 본질은 그대로인 채 더욱 어두운 곳으로 스며들어 우리의 삶을 좀먹고 있을 뿐입니다. 

▶ [단독] 종교계 내부 폭력사태, '스마트 조폭'이 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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