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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서명' 뉴스를 들은 어느 택시 기사의 웃음

● 장면 1.

"나는 나선 적이 없는데 말이지. 허허허"

라디오 뉴스를 듣던 택시기사가 말했다. '국민'이 나섰다는 그 서명 운동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국민이 나섰다는데, 자신은 나선 적이 없고, 주변도 나선 적이 없어서 낯선 표현이라는 것이 택시기사의 말이었다. 그러면서 당신 주변에는 나선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달리 답은 안 하고 웃어넘겼다. 기사는 승객이 기자인지는 몰랐다. "나는 국민이 아닌가 봅니다." 다시 헛웃음을 짓는 택시기사와 몇 마디 더 나눌 시간이 없었다. 택시비를 계산하고 내렸다.

● 장면 2.

택시를 타기 두 시간 전, 총리실에 등록된 기자에게 총리의 일정이 공지됐다. <황교안 총리, 경제활성화법안 입법촉구 온라인 서명>이라는 일정이다. 다음날 9시 40분 총리 집무실에서 할 것이고, 일정만 공개한다는 내용이었다.

약간의 혼선이 있었다. 원래 서명한 다음에 기사를 쓰라고 하더니, 한 시간도 안 돼서 다시 바로 기사화해도 된다는 공지가 왔다. 그러니까 내일 서명할 것이라는 걸 전날 밤에 기사를 써도 된다는 내용이었다. 보통은 엠바고를 지킨다. 일정이 변경될 수도 있고, 여러 사정상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통 하던 대로 하라더니 금세 바뀌었다. 서명한다는 것 자체는 기정 사실이니 기사 써도 되겠다는 것이다.

이미 그날 오후 4시부터 대통령이 서명했다는 뉴스는 계속 나오고 있었다. 대통령이 서명을 마친 마당에, 국무총리가 서명하는 일정을 다음날 서명하기까지 기사화하지 않을 이유는 누가 봐도 없다. '엠바고' 일정을 두고 이랬다저랬다 하는 문자를 받다 보니, 호들갑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총리가 국민 개인으로 하는 일정이었다면, 이렇게 부산스럽게 움직였겠나. '국민 한 명'이 아닌 현 정부의 '국무총리'가 서명한 것이다.

● 장면 3.

총리의 서명 일정이 하루 지연됐다. 뜻밖에 지연된 것에 대해 기자를 비롯해, 여러 매체의 문의가 잇따랐을 것이다. 서명을 한다는 뜻에는 변화가 없다는 총리실 답변이 돌아왔다. 예정보다 하루 늦은 수요일, 총리가 서명했다. 총리실에서는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사용 시 '국무총리실 제공' 표기를 하라는 안내도 했다. 국무총리 일정에 대한 사진 자료를 제공할 때 통상적으로 따라오는 말이다.

총리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서명하는 사진이 그렇게 배포됐다. 어떤 서명 운동인지, 큼지막하게 화면만 따로 찍었다. 총리가 서명에 동참했다는 것 못지않게 어디에 서명하면 되는지 알려주려는 정보 제공의 측면도 있는 것으로 읽혔다.

이렇게 국무총리의 서명 일정은 국무총리실을 통해 공식화됐다. 혹시 KBS 개그콘서트에서 개그맨이 정색하며 하는 이 말,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다. "너~ 되게 낯설다." 정치부에 온 지 두 달 정도 굉장히 짧은 경험이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이 상황이 그렇게 낯설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른바 '서명 정치'를 놓고 갑론을박 말이 많다. '서명 정치' 국면에서 또 자주 등장하는 것이 '국민'이다. 재계 주도의 서명 운동에 10만 명 이상이 이미 서명했다. 그 10만여 명도 '국민'이니, 국민이 나섰다는 표현이 영 틀린 것은 아니겠다. 하지만, '국민'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개운하지는 않다. 택시 타서 들었던 그 헛웃음 소리가 귓전에 맴돌아서 그렇다. "나는 나선 적이 없는데 말이지. 허허허" 

- 기사분의 동의는 구하지 못한 채 표현을 옮겼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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