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환경부가 "요하네스 타머 아우디폴크스바겐코리아 사장을 대기환경보전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형사고발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동안 폭스바겐의 눈치를 보는 건 아니냐, 너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게 아니냐는 눈총을 받았던 태도가 변한 것입니다. 무엇이 환경부를 변하게 했을까요.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폭스바겐 코리아에게 45일 이내에 리콜계획서를 제출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폭스바겐 코리아는 지난 6일, 제출기한 마지막 날 리콜계획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8일이 지난 14일 환경부는 폭스바겐 코리아에게 리콜계획서를 보완해서 다시 제출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5일 후인 19일, 환경부는 폭스바겐 코리아 대표를 형사고발했습니다. 수정 명령을 내렸으니 수정된 리콜 계획서를 보고 판단할 수도 있었지만, 전격적으로 폭스바겐 코리아가 시정명령을 어겼다며 형사고발까지 하고 나선 것입니다.
환경부는 "폭스바겐 코리아가 제출한 리콜계획서의 내용이 너무 부실해 리콜계획서를 내지 않은 것과 다름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리콜계획서의 내용이 얼마나 부실하길래 환경부가 이렇게 달라졌을까요.
● 얼마나 부실한거야?…달랑 두줄?
위에 제시한 것은 대기환경보전법에 있는 리콜계획서 양식입니다. 결함원인과 시정방안, 이 두 가지가 리콜계획서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폭스바겐 코리아가 낸 리콜계획서에는 결함 원인도 한 줄, 시정방안도 한 줄,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결함원인 : 배기가스 저감 장치의 동작을 저해하는 소프트웨어 장치로 인하여 일부 환경에서 도로 주행시 NOx의 배출량이 증가될 가능성이 있음.
시정방안 : 해당차량의 ECU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작업을 해야 하고, 여기에 1.6 엔진은 추가로 공기유동과 관련된 흡입공기제어기 장착 작업을 해야 함.
● "이건 뭐 소비자 안내문도 아니고…"
환경부 관계자의 이야기입니다. 딱 두 줄에 그친 리콜계획는, 리콜계획서 제출과 수정 명령, 바로 이어지는 형사고발이 어떻게 2주 만에 이뤄졌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리콜계획서를 제출받으면 환경부는 이 계획서를 승인 여부를 판단해야 해야 합니다. 만약 승인이 나면 해당 자동차 회사는 계획에 따라 리콜을 진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딱 두 줄짜리 내용으로는 환경부가 아무런 판단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소프트웨어 장치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작용했는지, 배출가스 저감장치에 어떤 영향을 끼쳐서 정상에서는 어느 정도 수준의 배출가스가 나오는지, 저감장치가 풀리면 배출가스가 어느 수준까지 나오는지, 폭스바겐이 조작한 저감장치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이는 환경부가 리콜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시정 계획도 마찬가집니다. 예를 들면 1.6 엔진에 흡입공기제어기를 장착하면 지금 어떤 상태에서 장착 이후에는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구체적인 데이터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환경부도 이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제 실험을 해서 검증을 하고 확인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역시도 없었습니다.
일반적인 리콜계획서에는 제출해야하는 양식과 별도로 많은 첨부 문서가 붙는다고 합니다. 이 첨부자료들은 리콜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술자료와 데이터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폭스바겐이 낸 리콜계획서는 양식에 채워 넣은 딱 두 줄이 전부였습니다.
소비자 안내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게 환경부 관계자의 말입니다.
● "아, 저희가 설명하겠습니다"…이제야?
환경부가 폭스바겐 코리아 대표 고발을 발표한 지난 19일, 폭스바겐 코리아 대표와 독일 본사 임원이 환경부를 방문했습니다. 독일 본사 임원이 환경부를 방문한 건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사태 이후 처음입니다.
폭스바겐은 이 자리에서야 조금 진전된 내용을 환경부에 설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와서 배출가스 조작장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소프트웨어가 시험인증 상황을 어떻게 인지하고 어떻게 가동하는지, 실내제어모드에 배출량을 저감하는 장치가 어떻게 설치됐는지 개념을 설명했다는 얘깁니다.
폭스바겐이 독일에 제출한 자료도 받기로 했습니다. 환경부는 외국에 제출한 자료와 우리에게 제출한 자료를 비교하면서 더 폭넓은 검토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우리정부가 만만했던 걸까?
미국 정부는 폭스바겐에 우리 돈으로 100조 원에 달하는 벌금부과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배출가스 저감 장치가 조작된 차종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도 하지 않고, 달랑 141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폭스바겐은 이미 이 과징금 납부를 마쳐 ‘면죄부’를 줬다는 눈총도 받았습니다.
물론 미국과 우리나라의 법체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은 불법적인 이익의 최대 3배까지 과징금을 물릴 수 있고, 우리는 매출액의 0.1%, 차종 당 10억 원으로 과징금이 제한돼 있습니다. 해당 차종의 판매 규모에 따라 과징금 액수도 차이가 날 수 밖에 있습니다.
문제는 확연히 느껴지는 두 나라 정부의 ‘태도’ 차이입니다. 미국 정부는 폭스바겐의 행위를 ‘불법’이라고 보고 벌금을 최대한 부과하고, 리콜 계획서도 단번에 거부하는 등 강력한 제재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법 테두리에만 갇혀 대응했던 우리 정부와 비교되는 모습입니다.
이러니 폭스바겐의 리콜계획서 제출도 ‘요식행위’에 그쳤을 지도 모릅니다. 45일 동안 리콜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출기한 안에 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결함원인 한 줄, 시정계획 한 줄짜리 리콜계획서가 나오지 않았을까요.
환경부도 두 줄짜리 리콜계획서를 기점으로 태도가 변했습니다. 리콜계획서를 분명히 냈음에도 내용이 너무 부실하니 내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며 형사고발을 한 것입니다. 이런 정부의 강력한 대응은 폭스바겐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시민단체나 소비자들에게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100조 원대 벌금 부과 소송, 리콜 계획 거부와는 대조적으로 부정적인 여론의 눈치나 보다가 뒤늦게 대응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폭스바겐 사태 이후에도 국내 판매량은 증가…부끄러운 민낯
정부를 향해 손가락질하기 전에 우리 소비자들의 모습도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배출가스 조작 사태 이후 미국에서 폭스바겐 차량 판매가 급감했습니다. 지난 9월 4천 2백대에서 10월에는 1천 8백대, 11월 201대로 크게 준데 이어 12월에는 76대로 곤두박질 쳤습니다.
이는 미국정부가 문제가 밝혀진 폭스바겐 모델 이외에도 조사 중인 모델까지 판매 중단조치를 한 영향도 있지만, 소비자들이 불법 행위를 한 회사 제품을 냉정하게 외면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폭스바겐은 더 잘 팔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에는 국내 진출 이후 최대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11월 한 달에만 7천 5백대가 팔렸는데 전년 동기보다 무려 60% 가까이 늘어난 규몹니다. 지난해 12월에도 5천 1백나 팔려 전년 동월 대비 18.2% 성장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문제가 확인된 구형디젤 엔진 탑재 모델만 판매가 중단된 것도 영향을 줬지만, 폭스바겐 코리아의 판매촉진 유인책에 소비자들이 매장으로 몰린 것으로 보입니다.
폭스바겐 입장에서는 가장 무서운 게 뭘까요. 해당 나라 정부일까요. 엄청난 액수의 과징금일까요. 소비자들의 외면이 가장 무서울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차 값을 할인해 준다고 하니 불빛을 보고 모여드는 불나방처럼 몰렸습니다.
우리정부가 아무리 강한 압박을 한다고 해도, 과징금을 더 물린다고 해도, 형사고발을 수백 번 한다고 해도 폭스바겐 입장에서는 5% 더 할인해 주면 아무 문제없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환경부는 지난 19일 폭스바겐 본사 임원과의 만남에서 이런 요구를 했습니다.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리콜에 참여해야 하니까 본사와 이야기해서 소비자들이 자발적 리콜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아 달라고...소비자들이 리콜을 받으면 연비가 떨어지니 배기가스가 얼마나 더 나오든 리콜을 받지 않으려 할 것이라는 유령 같은 이야기를 환경부도 들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