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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연봉 9배 줄게" 中 제의…비상 걸린 인력 '유출' ②

[취재파일] "연봉 9배 줄게" 中 제의…비상 걸린 인력 '유출' ②
● '반도체 인력 10만 양병설' vs '줄어드는 연구인력'

이번 취재를 하며 인재유출 문제보다 더 위협적으로 느껴진 건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중국의 연구 인력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였습니다.

중국은 6년 전부터, 정부 차원에서 중국 내 100개 대학에서 100명씩을 뽑아 10년 동안 장학금과 생활비 전액을 지원하는 교육투자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석 박사급 인재 10만 명을 배출하겠다는 이른바 ‘반도체 인력 10만 양병설’입니다. 이를 위해 10년간 175조 원을 투자한다는 구체적인 청사진까지 내놓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와 정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해가 갈수록 이공계 대학생들의 ‘반도체 연구’ 기피 현상이 심해지는 겁니다. 서울대학교 경우, 반도체 분야 석·박사 배출 실적은 2005년 106명에서 지난해엔 42명으로 절반 이상 줄었습니다. 이처럼 국내에서 석 박사급 반도체 연구 인력 배출이 감소한 건, 근원적으로 ‘반도체를 전공한 교수’가 줄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 세계 1,2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굳이 정부가 나서 연구개발 사업에 투자해야 하느냐는 식의 부정적인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최근 정부가 발주하는 반도체 연구개발 사업은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급기야 올해는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서 반도체 분야는 신규 사업예산을 배정받지 못했습니다.
 
연구에 큰 비용이 들어가는 반도체 산업 특성상, 교수들은 정부의 메모리 반도체 연구개발비 지원 없이는 현실적으로 연구가 쉽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반도체가 아닌 다른 유사 전공 연구자들이 반도체 전공교수로 임용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그렇게 전공 교수가 부족해지다 보니, 다시 석박사 인력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겁니다. 서울대 반도체 공동연구소장에 디스플레이 전공 교수가 임명된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 "반도체는 제2의 조선 산업처럼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조만간 한국의 반도체 사업이 조선 산업처럼 큰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국내 조선 산업은 1997년 일본을 제치고 수주량 기준으로 세계 1위에 올라선 데 이어, 2011년에는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2010년부터 정부의 조선부문 연구개발 지원예산이 기계분야로 흡수됐습니다. 이후,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가 다른 전공자를 교수로 임용해야할 정도로 전문 인력이 줄었습니다. 중국은 2001년 조선업을 5대 집중 육성산업에 포함하고 맹렬히 추격해왔습니다.
 
홍성주 SK하이닉스 미래기술연구원장(부사장)은 ‘산업경쟁력 포럼’에서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조선 산업이 불과 4년 전에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가, 지금은 극심한 위기상황에 빠졌다. 한국의 반도체산업도 조선 산업처럼 이미 위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조선 산업이 위기에 빠진 데는 정부의 외면, 전문인력 양성의 소홀, 중국의 추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반도체산업은 중국의 추격을 받고 있고, 전문 인력이 부족하고, 정부의 외면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 산업과 같은 처지가 돼가고 있다.”
 
● 인재를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 필요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선 국내 반도체업체에서 퇴직한 임직원들이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다시 우리 사회에 돌려줄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들을 대학에서 산학협력교수로 초빙하거나 국책연구소에서 영입하는 방안도 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기업 임직원이나 대학교수, 주요 연구원의 핵심 인재들은 국가가 미리 관리하고, 해외 이직 전엔 정부에 신고하도록 하는 규정을 만드는 것도 필요합니다. 아울러 과거 중국으로 이직한 LCD 연구원들이 약속한 연봉을 다 못 받거나 번 돈을 국내로 송금하지 못해 국내로 들어오지 못한 현실도 미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근원적으로 인재를 소중히 여기는 사회적 문화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해외로 이직한 국내 고급인력들이 이직 사유로 고용불안(21.6%), 과도한 근무시간(21.3%), 폐쇄적인 조직문화(16.3%), 낮은 연봉(12.2%), 연구 자율성 부족(9.4%), 과학기술인 홀대(4.1%) 등을 꼽은 건 여전히 우리가 곱씹어봐야 할 대목입니다.
 
한학자 한양대 정민 교수는 인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혈통 좋은 천리마도 기르는 사람을 잘못 만나면 비루먹어 병든 말이 된다. 겉만 보고는 잘 알 수가 없다. 세상에 천리마가 없던 적은 없었다. 다만, 그것을 알아보는 백락(伯樂)이 없었을 뿐이다.” ‘천리마’를 알아보고 소중히 여기는 사회가 되길 기대합니다.

▶ "연봉 9배 보장"…중국 가는 인재들 '비상'
▶ [취재파일] "연봉 9배 줄게" 中 제의…비상 걸린 인력 '유출'①

※ 취재과정에서 박재근 한양대 나노반도체공학과 석학교수의 조언을 받았습니다.  

(사진=게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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