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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북 확성기' 심리전 효과 떨어졌나?

[취재파일] '대북 확성기' 심리전 효과 떨어졌나?
지난해까지만 해도 북한은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에 극도로 민감했습니다. 당시 북한의 대응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2015년 8월 4일 북한군은 목함 지뢰로 도발을 감행해 대한민국을 분노케 했습니다.

그로부터 엿새 뒤인 8월 10일 우리 군은 11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죠. 북한은 다음 날부터 온갖 협박과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그래도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지 않자 8월 20일 민간인이 있는 연천 지역에 로켓포를 발사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북 확성기’ 심리전은 탁월한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은 우리를 또 시험에 들게 했습니다. 지난 8일 다시 ‘대북 확성기’를 틀기 시작한 것이죠. 13일에는 대통령이 직접 “확성기 방송이야 말로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심리전이다”라고 우리 군의 전술을 격려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 이상합니다. ‘대북 확성기’ 방송과 관련된 북한의 대응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전과 달리 북한이 대남용 확성기를 남쪽뿐만 아니라 북쪽으로 수시로 돌려놓고 있는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 北으로 대남 확성기 돌리니…완전히 묻힌 대북방송)

‘맞불 방송’을 하는 대신 북한 쪽에 자체 방송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또 한 가지는 불온 전단지를 살포한 것 말고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격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쯤 되면 ‘왜’라는 의문이 들게 마련이지요. 합동참모본부가 국내 소리 공학 전문가에게 ‘대북 확성기’의 효과와 ‘북한이 북한 쪽으로 확성기를 돌려놓은 이유’를 여러 차례 문의한 것도 그 때문일 거라 추측합니다. 이에 대해 소리 전문가는 ‘사운드 마스킹 이펙트’라는 이론을 제시합니다. 이번에 만든 이론이 아니라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이론입니다.
12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일대가 흐릿하게 보이고 있다.
‘멀리서 오는 소리는 가까이 있는, 그 보다 조금 더 큰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는 게 해당 이론에 대한 설명입니다. 숭실대학교 배명진 소리공학연구소 소장의 말에 따르면 ‘대북 확성기’의 소음도는 전투기 소리와 맞먹는 140~145dB입니다.

배 소장은 “이게 비무장 지대를 통과해서 북한군 초소에 이르면 75dB 정도로 떨어지는데, 북한 측 ‘대남 확성기’는 상대적으로 저출력이어서 우리에게 도달할 때쯤이면 잘 들리지 않는 수준이 된다”고 말합니다. 처음부터 남북 간의 ‘맞불 방송’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던 셈이지요.

하지만 배 교수는 “이번에 북한이 뭔가 대책을 마련한 것 같다”는 관측을 내놨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대남 확성기’ 방향을 북쪽으로 수시로 돌려놓을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소리가 북한군 초소에 도달할 때의 소리(약 75dB-멀리서 오는 소리)보다 약간 높은 정도의 소리(약 85dB-가까운 소리)를 북한 쪽에 틀어놓기만 하면 ‘대북 확성기’ 소리는 묻혀서 들리지 않게 되는 ‘사운드 마스킹 이펙트’가 북한군의 대책이라는 것이죠.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전술이 애초부터 잘못된 거라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혹시라도 우리 군의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심리전’이 간파 당했다면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입니다. 군대를 갖고 있는 모든 나라가 수조 원씩 들여가며 계속해서 신무기를 개발하는 것도 그 때문 아니겠습니까. 
인천시 옹진군 연평면 당섬부두 인근에서 해병대 연평부대원들이 경계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군의 ‘대남 확성기’는 대부분 남쪽을 향해 있다”라든지, 갑자기 엉뚱하게 “북측이 뿌린 불온 전단지가 1백만 장에 이른다”는 공식 브리핑을 했다가 뒤늦게 “숫자는 확실하지 않다”고 정정하는 우리 군의 모습에서 ‘보라는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본다’는 능엄겸의 한 구절이 포개집니다.

아, 이건 사담(私談)이긴 하지만 ‘대북 확성기’ 방송에 노출되고 있는 우리 군 장병들의 청각 보호는 제대로 해주고 있겠죠? 전투기 소리와 맞먹는 소음이라 걱정이 돼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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