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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살아 있는 역사적 인물에 대해서는 인격권 보호가 우선"

<제국의 위안부> 명예훼손 인정…9천만 원 배상

[취재파일] "살아 있는 역사적 인물에 대해서는 인격권 보호가 우선"
지난 2013년 출간된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이 책은 출간된 지 8개월 만에 "일본군 위안부를 '매춘부'로 비하했다"는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문제가 된 표현들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 아편을 군인과 함께 사용한 경우는 오히려 즐기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라는 이미지
▶ ‘일본군’과 함께 행동하며 ‘전쟁을 수행’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 기본적으로는 군인과 ‘동지’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나눔의 집 할머니들은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법에 호소했습니다.
 
소송은 세 갈래로 이뤄졌습니다. 책을 팔지 못하게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과 명예를 훼손 당했으니 이를 수사해 달라는 형사고소, 그리고 이에 대한 손해 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입니다.

앞서 법원은 가처분신청을 일부 받아들여 문제로 꼽힌 34개 부분을 삭제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시중에는 <제2판 34곳 삭제판>이 팔리고 있습니다. 이어서 민사 소송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한 재판의 선고가 13일 이뤄진 겁니다. 

 재판부는 소송을 제기한 피해 할머니 9명에게 각 1천만 원씩, 모두 9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 재판의 내용 ; "학문의 자유 한계를 일탈한 것"
 
할머니들이 문제를 제기한 부분은 모두 34곳입니다. 재판부는 그 가운데 10곳은 명예훼손에, 22곳은 인격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인정했습니다. 

 ['가라유키상의 후예' 위안부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선인 위안부’의 고통이 일본인 창기의 고통과 기본적으로는 다르지 않다는 점]
 [‘위안부’들을 ‘유괴’하고 ‘강제연행’한 것은 최소한 조선 땅에서는, 그리고 공적으로는 일본군이 아니  었다.] 
 

등 10개 표현에 대해서는 구체적 사실 적시를 통한 명예훼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부분은 일본인 매춘부인 '가라유키상'이 조선인 위안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허위사실이라고도 규정했습니다. 가라유키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까지 외국에서 매춘을 하고 본국으로 돈을 보내던 일본인 여성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런 표현은 일반인 독자들로 하여금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가 '본인의 선택에 따라 위안부가 되었고, 경제적 대가를 받고 성매매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암시한다고 보았습니다. 

명예훼손은 표현자, 즉 저자의 주관적인 의도에 의해 위법성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평가에 의해 판단하는 것입니다. 저자가 그런 의도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해도, 그렇게 보인다면 명예훼손의 위법성이 인정된다고 법원은 설명했습니다.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가 기본적으로는 동지적인 관계]
 ['일본 제국에 대한 애국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등 22개 표현은 비록 의견의 표시에 해당하지만 피해자들의 인격권을 침해한다고 규정했습니다.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본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동원 됐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도 보장받지 못한 채 성 노예와 같은 삶을 강요당한 피해자의 지위에 있다는 점"은 판결에 앞서 전제된 사실입니다. 이런 피해자들에게 책의 '의견 표현'은 이들의 피해자성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과장을 넘어 피해자라는 사실을 왜곡함으로써 인격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겁니다. 

 [강제연행과 강제노동 자체를 (일본) 국가와 군이 지시하지 않았다]
 [‘강제연행’이라는 국가폭력이 조선인 위안부에 관해서 행해진 적은 없다'] 


 등 문제가 된 표현 2곳에 대해서는 위법성이 기각됐습니다.

일본이라는 국가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의견 만으로는 모욕이나 인신 공격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었습니다. 

● 박유하 교수의 입장 ; "해석이 잘못됐다."

박 교수는 배상 판결에 대해 "전체적으로 해석이 굉장히 잘못됐으며 부당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며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가장 논란이 됐었던 '자발적 매춘부' 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인용해 온 부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독해의 문제일 뿐이고 모두 반박을 할 수 있다며 항소할 뜻도 밝혔습니다. 

박 교수는 앞서 지난달 2일에도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의 부당한 기소를 규탄한 바 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박 교수는 자신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판하거나 폄훼하는 책을 쓸 이유가 없다며 억울함을 표했습니다. 

자신의 책을 둘러싼 논란이 위안부 지원단체의 악의적인 공세라는 주장도 펼쳤습니다. 박 교수는 자신의 책이 "그동안 위안부 문제에 관여해온 주체들을 모두 조금씩 비판하고 있다"며, "그런 학술적 비판에 대해 나눔의 집이나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같은 강경한 입장의 지원단체가 소송으로 맞대응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 교수가 그의 저서와 기자회견을 통해 주장하는 바를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서 수많은 일본군 위안부가 모두 다 우리가 생각하는 '강제로 끌려간 힘없는 소녀'의 모습은 아니라는 겁니다. 박 교수는 "위안부는 성 노예이지 매춘부가 아니라고만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매춘을 한 경우에는 구제받지 못한다는 것인가? 매춘부는 피해자가 아니라는 얘기와 같지 않느냐?"며 반문했습니다. 

학문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소송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지난달 우리나라 학계와 문화계의 지식인 192명이 "연구와 발언의 자유가 제한받을 수 있다"며, 검찰의 명에훼손 혐의 기소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 법원의 판단 : "인격권 보호가 우선"

이에 대한 재판부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역사적 인물이 생존하고 있는 경우라면 그들의 인격권에 대한 보호의 정도가 학문의 자유에 대한 보호보다 상대적으로 더 중시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는 이미 고인이 되어 역사의 평가와 학문적 분석의 대상이 된 사람과의 차이를 시사합니다. 한 마디로,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는 겁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여러 연구와 평가로 인정된 것처럼, 그리고 박 교수 그 자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미 가혹한 역사의 피해자입니다. 한국과 일본 정부는 아직도 그들의 한을 풀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배상'은 사안의 위법성을 인정해 법적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할머니들은 자신들의 피해를 연구하고 책을 쓴 박유하 교수에게서는 배상을 받게 됐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피해를 야기한 자들에게서는 제대로 된 배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재판에 참석한 이옥선 할머니는 결과를 환영하면서도 "일본 놈들이 나쁜 게 아니라 정부가 나쁜 게... 일본 정부에서 할머니들 배상 안 하겠다하는데. 우리는 위안부 멍에를 뒤집어쓰고 죽어야 되는가? 우리는 그렇게 못 하겠다"고 성토했습니다. 

"피해자가 있는데, 왜 피해자한테 잘못했다는 소리 안 하고 다른 데 가서, 왜 우리를 속이는가." 

논란 속에서도 법원은 문제의 책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박 교수의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형사재판도 오는 20일부터 진행돼, 학술적 저술에 대한 형사처벌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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