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오바마'와 전략적 인내

이성철 기자 sbschul@sbs.co.kr

작성 2016.01.14 10:51 수정 2016.01.15 07:4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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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바마
 
"오직 바라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줄여서 오바마, 꽤 유행했던 건배사다.
 
이 건배사 그대로 오바마는 ‘오바마’다. 미국의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오직 바라는 대로 마음 먹은 대로' 일을 척척 해가고 있다.
 
집권 8년차로 접어드는 마지막 국정연설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State of the Union' - 미국이라는 정치 공동체의 현 상태를 연초에 미 의회에 보고하는 자리다. 과거에는 연두교서라고도 했다.
 
미국 경제도 위기에서 살아나 든든하다. 일자리도 늘었다. 유가는 갤런 당 2달러 밑으로 떨어져 서민들 주머니도 조금은 두둑해졌다. 총기 규제는 의회의 높은 벽에 막혀 있지만 오바마 케어 등 복지 확대에도 진전을 이뤘다.
 
“미국이 약해졌다고들 하는데 여전히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국가입니다. 곧 파멸에 이르는 길이기에 누구도 미국이나 동맹국들을 공격하지 못할 것입니다.”
 
근거 있는 자신감이다. IS의 발호와 총기 테러로 외교 전선에서 어려움이 있지만 그런대로 대응에 전열을 갖춰가고 있다.
 
앙숙 쿠바와도 국교정상화를 한 만큼 의회에서 무역규제만 풀어주면 된다. 무엇보다 이란 핵문제를 해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되돌리고 핵무장을 막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자랑할 만한 외교 치적이다.
 
그러면 북한핵은? 코리아는? 언론과 일반 국민들에게 연설 시작 직전에 인터넷과 이메일을 통해 원고가 배포됐다. SBS 워싱턴 지국 식구들이 샅샅이 뒤지는데 없었다. '노스'든 '사우스'든 '코리아'는 없었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했는데도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 핵 문제를 과연 외면할 수 있을까? 북핵을 거론하지 않으면 그것이 뉴스일 거라는 외교가의 이야기가 현실이 됐다. '말보다는 행동'에 나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해석마저 나왔다. 꿈보다 해몽이다.
 
● 오바마의 침묵 왜?
 
사실 잔칫상에 재를 뿌리면 누가 좋아할까?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국정연설이다. 지난 7년간 이룬 정책 성과를 자랑하고 미국이 나아갈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는 자리였다. 어느 분석가는 오바마가 퇴임연설을 미리 했다고 봤다.
 
그런 큰 그림을 그리는 자리에 북한의 '수소탄' 실험의 낙진이 날아오는 게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이란 핵 잘했다”고 자랑하려는데 “그럼 북한 핵은?” 묻는다면 세계 최강국 국가원수라도 참 곤혹스런 일이다.
 
오바마의 한 마디를 기다리던 한국 취재진들이 바빠졌다. 기사의 방향을 수정해야 했다. '오직 바라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게 또 워싱턴 바닥 취재의 현실이다. 오바마의 마음까지 어찌 읽을까? 오바마는 연설 당일 새벽까지 백악관 참모들과 원고를 수정했다고 한다.
 
국정연설 하룻만에 오바마 침묵의 실체가 드러났다. 연설문 작성에 깊숙이 관여한 백악관 핵심참모 벤 로즈가 외신프레스센터 연단에 섰다.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으로 외교 현안을 꿰고 있고 달변이다. 북한의 핵실험을 ‘북 지도자의 관심 끌기’ 차원으로 치부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해 이야기해주기만을 바랐을 텐데, 그렇게 관심을 줄 필요를 못 느꼈다는 것이다. ‘전략적 침묵’인 셈이다.
 
● 전략적 인내

 
‘전략적 침묵’은 사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상표처럼 붙어 있던 '전략적 인내 (strategic patience)'를 구현한 하나의 전술이라 할 수 있겠다. 전략적 인내는 또 무엇인가? 성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의회 청문회에서 미 행정부가 채택한 공식 정책은 아니라고 둘러대기도 했다. 언론이나 식자들이 붙인 말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북한이 비핵화의 길로 나올 때까지 참고 기다린다는 의미다. 2005년 6자회담에서 약속한 9.19 공동성명으로 돌아오라는 게 일관된 주문이다.
 
미 행정부는 미사일 발사나 소니 해킹 사건 이후 제재를 부과하기는 했어도 실효성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을 낳았다. 그렇다고 북한이 '어!' 할 정도의 인센티브를 내놓은 것도 없다.
 
핵실험을 유예할 테니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유예하라는 북한의 제안을 미국은 '암묵적 위협'이라며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 美 "핵 실험-군사 훈련 중단 연계, 암묵적 위협"

평화협정 체결 요구를 하고 나오면 비핵화가 먼저라고 역시 손사래를 쳤다. 그동안 ‘큰 채찍’ 도 ‘큰 당근’도 없었던 셈이다.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으로 도대체 하는 게 뭐냐는 비판이 매파와 비둘기파 양쪽에서 동시에 나오는 이유다. 이번 북한의 4차 핵실험 뒤에도 역시 비판론이 비등하고 있다.
 
● '전략적 인내'와 '인내하는 전략'
 
그 '전략적 인내'를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국정연설을 통해 국가 전략으로 공식화했다. '인내하는 전략, 규율된 전략 (patient and disciplined strategy)' 이다. 'strategic patience'를 'patient strategy'로 표현만 바꿨을 뿐이다.
 
"더 현명한 접근법이 있습니다. 인내하고 규율된 전략입니다. 국력의 모든 요소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필요하다면 독자적으로 행동해 우리 국민과 동맹국들을 보호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지구적 우려 사안들에 대해서는 전 세계가 우리와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동원해, 각 나라들이 자신의 역할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그 '인내 전략'의 예로 시리아 사태 해법을, 이어서 이란 핵 외교를 들었다. 에볼라 대처, TP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도 그렇고 쿠바와의 외교 복원도 그 예다.
 
이란 핵의 경우를 보자. 전지구적 연합체(coalition)를 구성해서, 제재와 원칙 있는(principled) 외교로, 이란의 핵무장을 막았다. 이란은 핵프로그램을 되돌렸고 우라늄 재고를 해외로 반출했으며 그리하여 세계는 또 다른 전쟁을 피하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의 말이다.
 
국정연설에서 굳이 '수소탄' 실험을 입에 올리거나, 북한은 비핵화의 길로 돌아와야 한다, 중국은 북한이 그러도록 압박을 가하라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지만, 북한 핵은 고스란히 이 범주에 들어 있는 문제다.● 김정은의 '오바마'
 
수소탄 실험이라는 ‘메가톤 급’ - 실제 폭발력은 킬로톤 급이지만 - 도발에 나선 북한의 김정은 제1비서는 4차 핵실험에 기여한 과학자들을 표창하는 자리에서 "미제를 괴수로 하는 제국주의 세력에게 핵 공격을 가할 수 있게, 핵무장력을 강화해 나가자"고 말했다. "적들이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고 도발을 감행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미국민들로서는 섬뜩한 일이다.
 
물론 미국민들을 자극하면 미 행정부가 움직이고 북한이 원하는 조건 아래 북미 양자 협상이 가능할 것이라는 계산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김정은 정권이 '오직 바라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될까?
 
오바마 대통령이 확인한 '인내하는 전략, 규율된 전략'의 큰 그림대로라면 내년 임기가 끝날 때가지 현재의 정책 기조를 바꿀 것 같지는 않다. 행여 일각의 비판대로 오바마 대통령이 사실상의 북핵 방치를 ‘전략적 인내’로 포장해 이대로 임기를 마칠 생각이라면 그 또한 마음대로 될지 미지수다.
 
물론 오바마 행정부 인사들은 한사코 이를 부인하고 있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하루도 북핵 문제를 소홀히 한 적이 없다”며 언론의 추궁에 반박했다. 벤 로즈 NSC 부보좌관도 “북핵 문제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커다란 우선과제”라고 말했다.
 
북한이 수소탄을 터뜨렸다고 김정은의 ‘오바마’가 이뤄질까? 벌써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무시’의 벽에 부딪쳤다. 거꾸로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와 전략적 무시를 언제까지 끌고 갈 수 있을까? 미국민들이 특히 민감해 하는 장거리 로켓 발사 같은 추가 도발에 나선다면?
 
굳이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논쟁으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오직 바라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이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 'disciplined'의 우리말 옮김을 ‘원칙에 기반한’에서 ‘규율된’으로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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