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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다시 뛰는 제조업 ② - 글로벌 强小기업의 비결

[취재파일] 다시 뛰는 제조업 ② - 글로벌 强小기업의 비결
‘히든챔피언’. 이 용어는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 교수가 1996년 펴낸 <히든챔피언>이란 책에서 소개됐습니다. 지몬 교수는 히든챔피언을 ‘일반 소비자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연 매출 40억 달러 이하, 세계 3위 이내 또는 한 개 대륙에서 1위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는 기업’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즉, 낮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각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우량 강소기업’을 뜻하는 것이죠.
 
지몬 교수 정의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히든챔피언은 23개입니다. 헤어기기 제조업체인 유닉스전자, 절삭공구회사 YG-1, 오토바이 헬맷업체 HJC, 오토바이 경기복 제조업체 한일, 완구회사 오로라월드 등이었습니다.

숫자가 너무 적죠. 하지만, 딱 그 기준에는 맞지 않아도 우리 중소 중견 기업 가운데서도 히든챔피언이라 불릴 수 있는 강소기업들은 적지 않습니다. 대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와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기업들입니다. 조선과 철강 등 전통적인 주력 사업이 휘청거리고 있는 사이, 이런 강소기업은 우리 경제의 허리를 받쳐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강소기업의 가장 큰 무기는 기술력입니다. 하지만 이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겠지만, 기업 스스로 갖춰야 할 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 “없던 시장을 저희가 만들었습니다”
 
미국 뉴욕 주에 있는 한 대학 기숙사 지하에는 한국산 온수기 5대가 나란히 연결돼 있습니다. 각 온수기는 집에서 쓰는 보일러 크기였습니다. 옆에는 사용하지 않는 대형 탱크가 있었습니다. 원래 이 기숙사는 대형 탱크에다가 뜨거운 물을 채워 놓고 온수를 공급해 왔습니다. 하지만 온도를 유지하는데 가스를 계속 사용해야 되고, 또 저장할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다 보니, 온수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필요할 때마다 물을 데워서 쓰는 순간식 온수기를 찾았는데, 한국산 온수기가 선택된 것입니다. 왜 한국산이란 질문에 대해 대학 담당자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경제적인 제품이라는 것입니다. 일단 순간식 온수기가 탱크식보다 가스가 적게 드는데다 한국산이 다른 제품보다 효율이 높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효율이 높은 제품은 우리나라 중견 보일러업체인 경동나비엔이 만든 콘덴싱 온수기였습니다. 콘덴싱 기술은 연료를 연소하고 배출되는 배기가스에 포함돼 있는 열을 회수해 재사용하는 기술로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보편화된 기술이죠. 그런데 이 콘덴싱 기술을 가지고 경동은 북미지역에서 지난 2014년 1,3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고 지난해도 15만대의 보일러와 온수기를 팔아 전년 매출을 훌쩍 뛰어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콘덴싱 시장으로만 따지면 시장 1위입니다.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 업체의 이상규 미국법인장은 크게 두 가지 요인을 꼽았습니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틈새 시장을 공략한 점과 현지 사정에 맞는 제품 개발”입니다.
 
이 중견기업이 미국 시장에 진출한 건 지난 2006년입니다. 당시 미국의 가스 온수기와 보일러 시장은 미국 전통 방식인 ‘탱크식’이 90% 이상 차지하고 있었고, 나머지 시장을 앞서 진출한 일본 업체들이 ‘순간식’ 제품으로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경동은 시장에 없던 ‘콘덴싱’ 순간식 제품을 가지고 진출했습니다. 효율은 일본 제품보다 10% 이상 높아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은 땅이 넓고 노후한 집도 많다 보니 가스나 물 압력에 편차가 컸고, 배관 크기도 문제였습니다. 쉽지 않은 문제였지만, 이 업체는 제품 현지화 없이는 진출이 어렵다는 판단아래 제품 개발에 착수해 현지 사정에 맞는 제품을 개발해 냈습니다. 이 업체의 조희상 과장은 “미국의 온수기 보일러 시장은 소비자보다는 도매상이나 설치업자들의 영향력이 큰데, 그 사이에서 효율도 좋을 뿐 아니라 설치도 쉽다는 소문이 나면서 매출이 급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 “기업의 역량과 시장 트렌드를 읽는 능력이 관건”
 
최근에 나오는 스마트폰을 보면 사용자의 지문을 인식하는 기능이 탑재돼 있습니다. 비밀번호를 사용하는 것보다 쉽고, 유출에 대한 우려도 적기 때문에 유용한 기술로 꼽힙니다. 삼성과 애플은 지문인식 관련 제품을 계열사나 인수한 기업에서 만듭니다. 그런데 그 외 중국의 화웨이라던지 10여개의 다른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한 제조업체에서 공급을 받고 있습니다. 바로 한국 중견기업에서요.
 
이 업체는 크루셜텍이란 회사입니다. 이 업체는 원래 스마트폰용 광학마우스를 주로 생산하던 업체였습니다. 스마트폰 버튼을 조작해 마우스처럼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인데, 캐나다 스마트폰 제조업체 블랙베리에 탑재됐었습니다. 블랙베리가 잘 나가면서 이 회사도 급성장했습니다.

하지만 2천년대 후반부터 블랙베리가 침체에 빠지면서 이 회사 역시 비상이 걸렸습니다. 때문에 2012년부터 3년 동안 연속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애플이 아이폰5S에 지문인식 기술을 넣으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많은 제조사들이 지문인식 기술을 가진 이 기업을 찾았고, 덕분에 지난해는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3분기까지 기준)
 
이 기업이 기술을 개발한 것은 2008년도쯤입니다. 블랙베리 덕분에 잘 나가던 때였지만, 새로운 기술을 계속 개발해 나간 것이죠. 그리고 3년간 적자를 볼 때도 R&D에 계속 투자를 하면서 지문인식 기술을 계속 발전시켰고, 다른 기술들도 개발해 나갔습니다. 즉, 꾸준한 연구개발 투자에 따른 기술력이 다시 도약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죠.

하지만 이 업체의 김종빈 대표는 기술력만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김 대표는 “기술과 시장을 읽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에 트렌드가 될 수 있는 기술, 제품을 개발해 낸 것이 상당한 원동력이 된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아무리 기술력이 있다고 해도 미래 시장을 읽고, 그에 필요한 제품을 생산해 나가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특히 외부에서 투자를 받는 데 이런 점이 매우 중요했다고 합니다.
 
● “성장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이들 기업들은 대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IBK경제연구소의 조봉현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중견기업의 특성은 대기업 의존형태로 커왔기 때문에 세계시장에 나아가서 독자적으로 싸울 수 있는 그런 어떤 체질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성장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뛰는 것이 중요하고, 특히 기업체의 대표가 그런 도전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기술력도 중요하겠지만, 정부의 지원 사격도 필요합니다. 정보력이 약한 중소 중견기업들이 진출할 수 있는 시장을 정부의 네트워크로 발굴하고, 또한 능력 있는 기업들이 현지에서 뿌리 내릴 수 있도록 금융지원도 이뤄져야 합니다. 이런 점들이 뒷받침 된다면 기술력이 뛰어난 우리나라의 중소 중견기업들도 진정한 글로벌 히든챔피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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