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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반나절 근무하는 공무원 '확대'…일자리 수는 늘렸는데

[취재파일] 반나절 근무하는 공무원 '확대'…일자리 수는 늘렸는데
정부가 시간선택제 공무원 채용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지난해에는 377명을 채용했는데, 올해는 100명 정도 늘어난 466명을 채용하기로 했습니다. 5월중에 채용공고를 내고 선발할 예정입니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늘려 560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시간선택제 공무원은 근무시간이 짧습니다. 전일제 공무원은 주 40시간 하루 8시간 근무를 하지만, 시간선택제 공무원은 이 절반만 일하면 됩니다. 주 20시간 근무니까 오전이나 오후 반나절만 근무하면 되는 공무원입니다.

● 왜 이렇게 뽑나요?

정부가 밝힌 시간선택제 도입의 가장 큰 목적은 경력단절 여성의 채용입니다. 재취업을 원하는 기혼 여성은 가사와 육아, 일을 병행해야 합니다. 정말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육아와 가사를 위한 시간 여유가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 주겠다는 겁니다.

이런 측면에서 시간선택제 채용 정책은 재취업을 원하는 여성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분명 환영할 만한 정책입니다. 일하면서 육아와 가사도 할 수 있으니, 충분히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됩니다. 그런데 정말 좋기만 할까요. 조금 더 따져봐야겠습니다.

● 공무원 연금 대상 아니다…학자금 지원 못 받아

시간선택제 공무원도 정년은 보장돼 있습니다. 근무시간이 짧을 뿐입니다. 당연히 근무시간이 짧으니 전일제 공무원 보다 보수는 적습니다. 7급 기준으로 한 달에 약 140만 원 정도 차이가 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근무시간 외에 전일제 공무원과 시간선택제 공무원은 후생 복지 부분에서 크게 4가지 차이가 납니다. 우선 공무원 연금을 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공무원 퇴직 수당이 없습니다. 공무원과 같은 산재 적용이 안되고, 자녀 학자금 지원도 받을 수 없습니다. 

신분은 공무원이지만 민간 기업에 다니는 근로자처럼 국민연금을 납부해야 하고, 퇴직금도 민간 기업과 같은 기준으로 받아야 하는 겁니다. 

정부는 시간선택제 공무원도 공무원 연금 대상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오히려 경제적으로는 시간선택제 공무원이 더 유리하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공무원 연금법이 일부 개정되면서 시뮬레이션을 했더니 오히려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게 더 유리하고, 퇴직금도 민간 기준이라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산업재해도 정부가 가입한 민간 보험으로 처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보수는 적지만 전일제 공무원과 달리 겸직과 영리활동이 자유롭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 어떤 일을 하나?

시간선택제 공무원 채용공고는 일반 공무원 채용과는 달리 직무군으로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부서와 직무가 명시돼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기획조정관실에서 기록물관리 및 정보공개 업무를 처리할 9급을 몇명 채용한다는 식입니다. 이 채용공고대로 선발돼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9급기준으로 보면 행정부처의 채용직무는 기록물관리, 민원 업무, 자료관리, 문서수발업무, 증명서 발급, 일반 사무나 행정업무, 행정 지원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체국의 경우 9급 기준으로 대부분 창구업무입니다. 경찰도 9급 기준으로는 행정, 민원, 과태료 발급, 과대표 징수의 직무로만 몰려있습니다.

지난해 전체 시간선택제 공무원 선발인원 377명 가운데 9급은 279명입니다. 전체의 약 75%인 이들이 하는 일은 어떤 일인지 충분히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 자세한 내용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당 링크 바로가기)
 
우리나라 공무원 조직은 전일제 근로자를 대상으로 업무 분장이 이뤄져 있습니다. 공무원 뿐 아니라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설계가 그렇습니다. 때문에 시간제로 근무하는 근로자들은 채용공고를 통해서도 봤듯이 정책 결정 등에 관여하는 주요한 보직에서 일을 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결국, 시간선택제 공무원들에게 주어지는 일은 대체 가능한, 다시 말해서 전문성과 업무의 연속성이 덜한 직종에 몰려있는 겁니다. 단순 행정업무 보조나 민원 업무와 같은 '주변 업무‘에 몰릴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겁니다. 

● "조직에서 미래가 없다"…주변업무나 여성으로만 고착되는 건 한계

시간선택제 공무원들이 종사하는 직종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여겨지는 곳이다 보니 성과평가도 좋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진급과 연수, 다른 직종으로의 전환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진급은 전일제 근로자보다 최소 2배 이상 늦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공무원의 진급은 근속연수, 일하는 시간과 비례하는데 시간선택제 공무원은 하루 근무시간이 적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연수나 교육과 같은 직무능력 향상을 위한 복지혜택도 그들에게는 다른 나라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기회를 얻기 쉽지 않을 가능성도 큽니다. 조직내에서 개인의 발전을 기대할 수도, 기회를 잡기도 어렵다는 겁니다. 시간이 흘러도 항상 같은 자리에서 비슷한 대우를 받으며 반복적인 업무를 하는 데 머물수도 있습니다.

노동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자기 개발과 성취를 위한 도구입니다. 시간선택제 공무원의 일은 단순 노동에 머물러 자기성취를 기대하기는 힘들 수도 있다는 겁니다. 여성의 재취업을 위한 정책이었던 만큼 상당부분 여성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시간선택제는 경력채용, 즉 해당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이나 경력이 있는 '전문가'를 채용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못해 보입니다. 바로 이것이 시간선택제 채용이 가지고 있는 지금의 한계입니다.

● 단순 일자리 나누기가 아니다?…일자리의 질 향상 필요

시간선택제 공무원 채용으로 고용률은 높일 수 있습니다. 올해 시간선택제 공무원을 466명 뽑는다고 했으니, 만일 이 인원을 전일제 공무원으로 채용한다면 233명만 채용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고용확대 정책과 맞물립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데 집착하지 말고 고용의 질도 함께 늘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고용문제에서 채용인원을 늘렸다는 지표를 만들기 위한 ‘생색내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노동자에게는 자신의 삶이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한 명이 받을 돈을 두 명이 그냥 나눠 받는 보수 체계에서 당연히 해당 노동자들의 경제적 여유는 보장되기 어렵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자리는 늘어나지만, 해당 노동자들의 삶은 별반 나아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당연히 일자리를 통한 내수 활성화, 경제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겠죠.

경제적 보상도 문제지만 업무 자체에 대한 만족도가 낮은 게 더 문제입니다. 만족도가 낮으니 다른 직업으로 이직이 빈번해지고 해당 노동자들의 직업의 불안정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시간선택제 공무원 제도의 취지는 좋습니다. 재취업을 원하는 여성과 전일제로 일할 수 없는 전문직들에게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고, 일자리를 나눌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이런 좋은 점만 부각시키고 실제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해서는 안 될 겁니다. 이제부터라도 시간선택제 공무원의 업무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선택제 공무원을 바라보는 조직내 시선부터 달라져야 합니다.아르바이트생 정도로 치부하거나 자신의 일을 보조하거나 단순 직종에 종사하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라는 인식부터 바뀌어야 할 겁니다. 이런 시선이 시간선택제 공무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일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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