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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서울시향의 홀로서기…'운명의 타격'에 맞서 이겨내기

[취재파일] 서울시향의 홀로서기…'운명의 타격'에 맞서 이겨내기
정명훈 전 예술감독이 떠난 후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첫 정기연주회가 지난 주말 열렸습니다. ‘정명훈의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은 ‘서울시향의 브루크너 교향곡 9번’으로 공연 제목이 바뀐 채 무대에 올려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낳았던, 정 전 감독의 빈 자리에는 독일 출신의 세계 정상급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섰습니다.

70대 중반의 에셴바흐는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와 미국 휴스턴 심포니,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등의 음악감독을 지내며 세계적 명성을 쌓은 지휘자입니다. 2010년부터는 워싱턴 내셔널 교향악단과 케네디 예술센터의 음악감독으로 재직했으며, 2007년과 지난해에는 각각 파리 오케스트라, 빈 필하모닉과 함께 내한공연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비록 일회성이긴 하지만 서울시향에 깜짝 등장한 구원투수를 관객들은 환영했습니다. 세계적인 명성의 지휘자들은 일반적으로 1년 이상 연주 스케줄이 짜여있기 마련이어서, 시향이 섭외에 착수한 지 채 일 주일도 안 된 지난 9일 에셴바흐가 지휘봉을 잡기로 한 사실을 발표하자 많은 이들이 놀라움을 나타냈습니다.

시향에 따르면, 에셴바흐는 이번 공연을 위해 기존 일정까지 변경했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고 합니다. 시향 측은 에셴바흐가 "서울시향이 정명훈 예술감독과 함께 10년간 눈부신 성장을 이룬 훌륭한 오케스트라라고 익히 들어왔다"며, "시향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기에 힘을 보태고 싶다"면서 공연을 닷새 앞둔 상태에서 대체 지휘자 역을 수락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휘자 에셴바흐
결과는 무척이나 성공적이었습니다. 시향 단원들의 등장에 연주 시작 전부터 응원의 박수를 보내던 관객들은, 공연이 끝난 뒤에는 더 뜨거운 감동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연주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는 평가가 쏟아졌고, 꿋꿋하게 제 역할을 다한 시향 단원들과 기꺼이 힘을 보태준 지휘자에게도 격려와 찬사가 이어졌습니다.

정명훈 전 감독이 10년 간 쏟은 열정과 백 명 단원들의 노력이 한 순간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 공연이었기에, 음악 애호가들은 더 큰 감동을 느끼는 듯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이 그토록 매력적인 곡인지 새롭게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향의 앞날은 험난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번 공연은 첫 걸음에 불과합니다. 정 전 감독은 시향에 대해 ‘자식 같은 오케스트라’라는 표현을 자주 썼는데, 음악적 아버지를 잃은 시향 단원들의 홀로서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당장 이번 주말로 다가온 말러 교향곡 6번 공연부터가 쉽지 않은 도전입니다.
지휘자 최수열
시향은 보도자료를 내고 16일과 17일 공연의 대체 지휘자로 최수열 서울시향 부지휘자가 나설 거라고 발표했습니다. 최수열 씨는 2011년 현대음악 공연 '아르스 노바'에 어시스트 지휘자로 참여하면서 서울시향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후 시향의 '지휘 마스터클래스’에서 정 전 감독과 단원들로부터 최고 점수를 받아 2014년부터 시향의 부지휘자로 활동해 온 30대의 젊은 지휘자입니다.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주는 촉망 받는 지휘자임은 분명하지만, 그가 대신해 서는 자리가 정 전 감독의 빈자리인 만큼 역부족일 거라는 우려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시향 측은 이에 대해 ‘최수열 지휘자가 서울시향의 부지휘자로서 단원들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악단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며, 이번 공연의 적임자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시향이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최수열 지휘자와 전 단원들이 마음을 모아 철골생춘(鐵骨生春)의 정신으로 극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시향이 극복해야 할 난관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정 전 감독의 사퇴 이후 일주일 만에 악장과 공연기획자문이 시향을 떠난 것도 많은 이들의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정 전 감독이 취임한 2006년 시향에 합류한 악장 스베틀린 루세브와 공연기획자문 마이클 파인 이야기입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은 아니지만, 둘 다 시향에는 중요한 인물들이었기에 아쉬움을 낳고 있습니다.

루세브 외에도 팀파니 수석 아드리앙 페뤼송, 트럼펫 수석 알렉상드르 바티, 트롬본 수석 앙투안 가네 등 시향의 핵심 연주자들이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수석을 겸하고 있는데, 정 전 감독의 명성과 음악성을 믿고 한국에 온 이들도 계약기간이 끝나면 시향을 떠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런 주변의 우려를 가장 잘 알고, 가장 많은 고민을 하는 건 무엇보다 시향일 겁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대체 지휘자 선정 소식 등 향후 계획을 담은 보도자료에 ‘운명의 타격에 대한 서울시향 전 구성원들의 극복 의지’라는 부제를 달았습니다.
 
시향이 이번 주말 연주하게 될 말러 교향곡 6번은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인 도이치 그라모폰과의 앨범 발매를 위해 시향과 정 전 감독이 오랫동안 준비를 해온 곡입니다. ‘비극적’이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지만, 말러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암울하고 비극적인 분위기의 곡으로 평가 받습니다.

말러의 자전적이면서도 예언적인 곡으로도 알려진 이 교향곡의 4악장에선 ‘운명에 타격’이라 불리는 나무망치 타격이 등장합니다. 고난을 이겨내려는 주인공의 의지와 희망마저 깨부수는 듯 압도적이면서도 위압적인 소리입니다. 시향은 그 절망적인 타격의 순간을 자신들이 겪는 시련에 빗대 극복 의지를 밝힌 겁니다.
 
정 전 감독이 떠나지 않았다면 이번 주말 시향의 연주는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앨범으로 발매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정 전 감독의 사퇴와 함께 녹음 계획은 무산됐고, 음악은 두 차례의 공연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게 됐습니다.

114명의 시향과 객원 연주자들이 선보일 대작, 말러 교향곡 6번은 어떤 모습일까요? 시향은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말러 교향곡 6번의 내용은 운명의 타격을 견디지 못한 채 비극적 결말을 맞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시향은 과연 ‘운명의 타격’에 맞서 이겨낼 수 있을까요? 응원의 마음을 보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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