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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단독] 대우조선해양 수사 핵심인물 잠적…'황당한 사법공조'

프로야구에서 간혹 나오는 '행운의 안타'가 있습니다. 잘 맞은 타구는 아니지만, 내야수와 외야수의 사각지대에 떨어지는 바가지성 안타를 말합니다. 타자가 잘 쳤다고 보기도 어렵지만, 수비수들의 책임을 묻기도 어려운 경우입니다. 최근 검찰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역대 최고급 사건으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 이창하, 대우조선해양 남상태 사장 비자금 조성 의혹의 핵심 인물

과거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검찰은 지난 2009년 대우조선해양의 비리 의혹을 수사했습니다. 이창하 당시 전무가 1차 대상이었습니다. 이창하 씨는 불우이웃들을 찾아가 집을 새로 지어주거나 리모델링 해주는 모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에서 건축 디자이너로 등장해 명성을 얻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회사를 대우조선해양과 합병하며 임원으로 영입됐는데 당시의 인연 때문이었는지 어느새 회사 내부에서 이창하 전무는 남상태 사장의 최측근이자 실세로 거론됐습니다.

체포 당시 이창하 씨는 배임수재 혐의를 받았습니다. 2006년 7월부터 2009년 3월까지 대우조선해양의 전무로 일하면서 납품업체 선정과정에 편의를 봐주겠다며 하도급업체 대표 등 12명으로부터 11억 원을 받은 혐의입니다. 검찰은 이창하 씨의 단독범행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하도급업체와 이 씨를 연결해주는 전문 브로커가 있다고 봤습니다. 전문 브로커는 바로 이창하 씨의 친형이었습니다.

그러나 검찰이 공개수사로 전환하기 직전인 2009년 5월 이 씨의 친형은 캐나다로 도주했습니다. 이창하 씨에 대한 검찰 수사도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검찰은 일단 이창하 씨의 친형을 기소 중지하고 회삿돈을 횡령한 별건 혐의로 이 씨를 구속기소 했습니다. 이창하 씨는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습니다.

검찰이 이창하 씨에 대한 수사에 힘을 쏟았던 이유는 이 씨가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최측근이자 비자금 관리인으로 추정했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남상태 회장의 연임로비 의혹이 불거졌는데 로비가 있었다면 남 사장에게 비자금 저수지가 있을 것이고 최측근이 관리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창하 씨의 친형이 해외로 도피하면서 이창하 씨에 대한 수사는 더 깊게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듬해에도 수사는 계속됐지만, 남상태 사장의 연임 로비 의혹은 규명하지 못했습니다. 검찰 수사가 오히려 면죄부를 준 게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최근 대우조선해양의 수 조 원대의 천문학적인 손실 액수가 드러나면서 감사위원회가 당시 경영진들의 분식회계와 배임 의혹을 수사해 달라고 해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가 살펴보고 있습니다. 당시에 검찰 수사가 잘 진행됐더라면 이번과 같은 불상사를 미리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 도피했던 이창하 친형 캐나다에서 검거…'추방명령'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창하 씨의 친형 이 모씨가 지난해 캐나다에서 붙잡혔습니다. 2015년 2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폭행시비가 붙어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게 됐습니다. 이 씨는 조사 과정에서 비자를 허위로 신고한 사실이 드러났고 캐나다 국정경비청은 청문회를 거쳐서 지난해 12월 11일 이 씨에게 추방명령을 내렸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이 씨는 바로 구금상태에서 비행기에 태워져 추방됐을 겁니다. 그런데 캐나다 법은 좀 관대한 모양입니다. 추방명령이 떨어진 사람도 예치금을 내면 불구속 상태에서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합니다. 이 씨는 캐나다 당국에 15,000달러를 내고 올해 1월 5일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20여 일 동안 구금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검찰은 이 씨가 캐나다에서 추방명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캐나다 당국으로부터 통보를 받고 올해 1월 6일 오후 5시 반 인천공항에서 신병을 인도받을 계획이었습니다. 검찰은 당초 캐나다 당국에 우리 수사관을 현지에 보내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합니다.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의 최측근 강태용 씨나 이태원 살인사건 용의자 패터슨을 송환받을 때처럼 현지에서 신병을 인계받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고 인천공항에서 신병을 받기로 했습니다. 캐나다 당국이 이 씨를 공항에서 만나 비행기에 직접 태우겠다고 약속한 이상-비행기 안에서는 도주의 우려가 없으니까- 굳이 캐나다까지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수사 시간을 벌기 위한 나름의 선택이기도 할 겁니다. 이 씨는 기소중지 상태인데 캐나다 당국에서 이 씨의 신병을 인계받는 시점부터 48시간의 체포시한이 적용됩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12시간을 비행기 안에서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 추방명령에 불응하고 잠적…'대우조선해양 의혹은' 다시 미궁 속으로

문제는 여기서 터졌습니다. 이 씨가 추방명령에 불응하고 공항에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중국 베이징에 주재하는 캐나다 국경경비청 관계자가 다급히 우리 검찰에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캐나다 당국도 당황했다고 합니다. 예치금까지 내고 출국을 약속했던 사람이 잠적한 건 처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씨의 잠적은 국가 망신입니다.

이창하 씨 친형의 송환은 이창하 씨에 대한 수사가 재개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검찰도 당혹스러워졌습니다. 당초 이 씨의 신병을 인계받은 뒤 곧바로 조사해 착수할 생각이었습니다. 동생 이창하 씨를 불러 11억 원의 용처에 대해서도 대질신문할 계획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이창하 씨는 최근 대우조선해양 감사위원회가 수사를 의뢰한 사건에서도 핵심적인 인물입니다. 감사위원회 진정내용의 대표적 사례마다 이 씨 이름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남상태 사장 시절 추진했다 400억 원의 손실을 입힌 오만 선상호텔 사업'의 경우 이창하 씨가 현지법인 고문으로 사실상 총괄했던 프로젝트였고 대우조선해양과 수의계약을 맺은 디에스온의 실소유주도 이창하 씨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남상태 전 사장의 최측근이자 실세였던 이창하 씨가 이사회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해 특혜를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진정 내용의 핵심입니다.

민영기업이지만 사실상 정부의 영향권 안에 있는 기업으로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었습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지적한 세금이 낭비된 사건의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합니다. 사안의 중대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검찰은 통상적인 고소고발 사건인데도 형사부가 아닌 특수부에 배당했습니다. 그러나 이 씨의 잠적으로 대우조선해양 부실 의혹의 진실은 또다시 미궁 속에 빠져들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캐나다 당국은 이 씨에 대해 전국에 수배령을 내리고 최대한 빨리 신병을 확보해 송환하겠다는 입장을 전해왔다고 합니다. 의지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작심하고 잠적했다면 언제 잡을지 기약은 없습니다. 우리 검찰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거나 기다리는 일뿐입니다.

법에 대한 인식, 적용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캐나다든 우리 검찰이든 딱히 책임을 묻기는 애매하지만 사법공조 시스템의 사각지대가 드러난 건 분명해 보입니다.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도 마땅치 않습니다. 기분 나쁜 텍사스 안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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