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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수소폭탄 실험에 확성기 대응?

[칼럼] 수소폭탄 실험에 확성기 대응?
초등학교 무렵 동무들과 이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수소폭탄이란 게 있는데 이거 한 방이면 전쟁 끝이라고, 원자폭탄의 수백 배, 수천 배 되는 위력을 가졌다고, 세상에 이 보다 강한 무기는 없다고. 어떤 연유로 초등학교 조무래기들이 수소폭탄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없지만, 어쨌든 그 때 이후로 수소폭탄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무기라는 이미지로 남아있다.

수소폭탄은 가장 강력한 무기의 대명사였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적이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나 존재하는 비현실적인 무기, 그게 수소폭탄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몇 나라가 이미 수십년 전에 개발해서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도 수소폭탄은 구체적인 크기와 무게와 위력을 갖고 있는 실재 무기라기보다는 여전히 제일 무서운 무기, 가장 강력한 폭탄이란 이미지로만 남아있었다.

사실 수소폭탄이 어떤 폭탄인지는 어제야 알았다. 구 소련이 실험한 수소폭탄 '차르'의 위력이 2차대전 당시 미국이 일본에 떨어트린 원자폭탄 '리틀보이'보다 무려 3천8백 배의 위력을 가졌다는 것도 어제야 알았다. 원자폭탄보다 3천8백 배의 위력이란 것이 어느 정도인지 도대체 가늠이 되지 않는다. 원자폭탄 한 발로 20만명이 죽었는데 그럼 수소폭탄 한 발로 몇 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수소폭탄이 느닷없이 현실로 튀어나왔다. 이제는 우리에게도 얼굴이 낯설지 않은 북한 리춘히 아나운서의 선동적인 목소리에 실려서 우리 삶 속으로 툭 튀어나온 것이다. 인공지진의 규모 등을 감안하면 수소폭탄으로 보긴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 정부나 미국에서도 제대로 된 수소폭탄 실험은 아니라는 입장인데 어째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수소탄 시험 발표' 북한조선중앙TV 리춘히
북한의 수소탄 실험 주장을 인정하느냐와는 별개로 어쨌든 중요한 것은 북한이 수소폭탄 보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실험 단계까지 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한반도에서 수소폭탄이란 괴물이 현실적인 문제가 된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이 4차례 진행되고 장거리 로켓 발사 시험이 거듭되면서 우리 사회에는 북한의 핵무기, 대량 살상무기에 대해서는 일종의 체념하는 분위기가 굳어지고 있다. 이젠 사재기 보도도 없고 금융 시장이 요동치지도 않는다. 수소폭탄 실험이란 초대형 뉴스가 터졌지만 우리 언론 가운데 호외를 발행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방송사들의 긴급 속보도 왠지 기자들만의 일처럼 느껴졌다. 시민들의 일상에서 긴장이 더 고조됐다거나 불안이 증폭된 징후도 그리 없다. '또 했어? 뭐야 이번엔 수소폭탄이라고? 북한 애들 대단하구만. 자기들 맘대로야. 쟤들은 못 말려.' 그리고 끝!이다. 북한의 공격 수단이 장사정포든, 핵폭탄이든 수소폭탄이든 뭐가 크게 다르겠느냐는 것이다. 호외까지 발행하고 통역사까지 동원해 북한의 발표를 실시간으로 중계한 일본에 비하면 우리의 이 밋밋한 반응은 달관이거나 포기 둘 중에 하나다.

결코 용납할 수 없고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는 매번 달라지지 않는 정부의 반응에서도 난감함이 읽힌다. 북한의 불장난을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 없고, 핵장난을 치는 북한을 응징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없는 난감함 말이다. 
오늘(8일) 만 33살(32살이라는 설도 있다) 생일을 맞는 북한의 젊은 지도자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어때 몰랐지? 이번엔 수소탄이라고 수소탄.. 우리 대단하지 않아?' 중국에도 통보하지 않고 그들 주장대로 수소탄 실험을 한 부분에서는 아직 30대 초반 젊은이의 우쭐거림과 치기가 느껴진다. 머리 허연 당 간부며 어깨에 별을 주렁주렁 단 군지휘관들이 이 젊은 청년에게 "할아버지도,아버지도 못 이룩한 민족적 사변입니다", "이제 수소탄까지 보유했으니 북조선은 누구와 상대해도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라는 식으로 듣기 좋은 말을 늘어놓을 것이다.

오늘 한 사람의 생일 잔치 자리가 젊은 치기와 아부로 질펀할 것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핵이 북한을 지켜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위험한 무기를 몸에 지닌 사람은 조금만 수상한 움직임만 보여도 집중 타격 대상이 된다. 초특급 위험 무기를 품에 안았다고 주장하는 북한은 그 무기로 인해 이제 손가락 하나만 까딱 잘못 놀려도 한 순간에 벌집이 될 위기에 놓이게 됐다.

북한 지도부 중에는 수소탄 실험의 의미를 자신들에 대한 외부의 감시와 타격 수준이 높아진다는 점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 핵실험을 체념하듯 바라보는 남녘 동포들의 의식을 북한은 제대로 읽어야 한다. 체념 또는 포기 속에는 북한 지도부와 북한 체제에 대한 짜증과 분노, 환멸이 배어있다. 일상을 위협 받는 남녘 동포들의 고요한 분노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한 방으로 한 공동체를 절멸시킬 수도 있는 가공할 만한 대량 살상무기가 이 땅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지금, 우리들의 이 평온한 반응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한반도의 비정상 상황이 하루 이틀 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제는 비정상을 비정상으로 인식조차 못하는 이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한반도에서 핵을 베개 삼아 편한 잠을 잘 수는 없다는 냉엄한 현실 인식을 기반으로 한 대응책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는 첫 대책이 대북 확성기 방송이다. 저쪽의 수소폭탄 실험에 확성기 방송이라니 뭔가 이건 균형이 맞지 않는 느낌이다. 확성기 방송이 북한을 얼마나 아프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수소폭탄 실험에 확성기 대응은 우리가 갖고 있는 대북 제재 자원이 얼마나 빈약한가를 재확인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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