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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중수부 부활'보다 중요한 건

김수남 검찰총장 부임 이후 '중수부(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부활'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전국 단위의 부정부패 사건을 수사할 신설 조직을 이르면 이번 달 선보인다는 계획입니다.(중수부 부활 논란은 다음 기회에 다루겠습니다) 대검 중수부가 폐지된 이후 검찰은 대형 부정부패 수사에서 괄목할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조직의 특성상 보고체계가 복잡하다 보니 보안이 샐 우려도 있고 신속한 수사가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검찰 내부에서는 진단하고 있습니다. 대형수사가 잘 안됐던 건 중수부 같은 대형 수사팀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틀린 진단은 아닙니다. 하지만 중수부 같은 조직이 부활한다고 해서 수사가 잘 될 것이라는 처방에는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낮았던 과거에는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산업에 집중해 국부를 늘릴 수 있겠지만 1인당 국민소득 2만 불 시대에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 회귀한다면 명품도 아닌데 누가 비싼 돈을 내고 사갈까요? 과거로 회귀하겠다는 대검의 처방은 '어불성설'입니다. TF에 합류할 수 있다면야 검사들에게는 더없는 영광이겠지만 일선 검사들도 중수부 부활에 동의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작금의 수사 현실이 대형 수사팀을 다시 만든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입니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를 위해 검찰은 특별수사팀을 출범시켰습니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칼잡이'들을 불러보았지만, 리스트에 있는 8명 가운데 2명을 재판에 넘기는데 그쳤습니다. 방위사업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정부 합동수사단을 창설했고 수많은 군장성을 재판에 넘겼지만 적지않은 피고인들이 무죄로 풀려나고 있습니다.

방산비리 수사가 법정에서 흔들리는 결정적인 이유는 피고인들이 진술을 번복하기 때문입니다. 시험성적서 조작 과정에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고 검찰에서 진술하고 지장도 찍었던 사람들은 법정에서만 서면 말을 바꾸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법정에서 위증하면 처벌받지만, 검찰 진술은 검사들 앞에서 겸연쩍은 내색을 한번 비추면 그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몸집을 불린다고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는 게 일선 검사들의 주장입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합니다. 첨단수사기법 다 좋은데 결국 수사는 핵심 인물의 자백이 성패를 결판납니다.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포렌식 기법으로 증거를 찾아낸다고 해도 증거들을 엮을 진술이 없으면 유죄 입증이 어렵습니다. 수많은 피의자와 참고인을 불러 검찰이 들으려고 했던 것도 결국 구슬을 꿸 이들의 자백이었습니다.

과거에는 피의자를 때리거나 잠을 안 재우는 게 다반사였고 이런 가혹 행위가 용인되는 상황에서 쉽게 자백을 받아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검사를 평가하겠다는 변호인들이 배석하고 언론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지금의 상황에서 이런 비인격적인 방법으로는 자백을 받기도 어렵지만 자백할 리도 없습니다.

괜한 멀쩡한 사람을 의심했다가는 검사가 옷을 벗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막강한 검찰의 힘도 인권과 고품질 법률서비스 앞에서는 예전 같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물론 사회가 진화한 만큼 검찰의 특수수사가 새로운 수사기법을 창안해내지 못했다는 원죄가 있습니다.

일선 검사들은 핵심은 미니 중수부라는 하드웨어보다 '자백'을 끌어내고 진술 번복을 막기 위한 소프트웨어를 장착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중 하나는 '플리바게닝'이라는 유죄협상 제도입니다. 지난해 한 검찰 관계자도 비슷한 얘기를 꺼낸 적이 있습니다.

"변호인 참여가 이제 지금은 피의자로 전환 가능한 참고인까지 변호인 참여가 보장되는 상황이라 어쨌든 저희도 이 정도 생황이 되면 미국 형사사법 제도에 있는 유죄협상제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정말 고민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검사들이 수사에 활용할 수 있는 도구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검찰 특수수사의 기본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일단은 (가정하건데) 한 기업인이 등장합니다. 사업권을 수주하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력 정관계 인사에게 접근해 청탁과 함께 금품을 찔러주는 방식입니다. 검찰 수사는 1차로 기업을 겨냥합니다.

특정 기업의 횡령, 배임, 분식회계 혐의로 광범위한 계좌추적을 벌이고 해당 기업인을 소환해 구속합니다. 그리고 기업인에게 자백을 종용합니다. 마음이 약해진 기업인이 진술하면 이를 토대로 정관계 인사들의 뇌물 혐의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는 방식입니다.

이럴 경우 현재는 기업인은 횡령 배임 혐의와 뇌물공여 혐의까지 가중처벌 받게 됩니다. 검찰 수사를 받으면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검찰 수사에 협조한 기업인의 경우 회사도 잃고 주변에 잘나가는 사람들도 잃게 됩니다.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재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기업인들은 이제는 더는 검찰의 공식에 당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처벌당할 바에야 회사를 잃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힘 있는 지인들을 보호하면 몇 년 수감됐다 나와도 재기할 수 있다는 꿈이라도 꿀 수 있다는 이유입니다. 자백을 끌어내기 위해 검찰 수사도 점점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를 압박하기 위해섭니다. 기존 검찰이 '먼지떨이' 수사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이유 중에 하납니다.

검찰 특수수사가 거악과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지향점을 향하고 있다고 전제할 때 부정한 뒷거래가 있었다면 금품을 준 기업인보다 돈을 받고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정관계 인사를 찾아내는 게 검찰의 수사 목표에 부합합니다. 목표를 위해 돈을 준 기업인과 형량협상이 불가피하다는 게 '플리바게닝'의 배경입니다. 기업인의 기업범죄나 뇌물공여 혐의를 화끈하게 면책해주는 대가로 돈을 준 윗선이 누구인지 자백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법의 원칙과 형사처벌의 취지를 따져볼 때 플리바게닝이 최선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먼지떨이 수사를 최소화하고 김진태 전 검찰총장이 강조했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환부를 도려내는 수사가 가능해질 수 있는 환경적 요인을 만드는 데에도 부합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검찰 조사와 법정 진술의 균형을 맞추는 작업입니다. 조서중심주의에서 공판중심주의로 헤게모니는 이미 법원으로 넘겨졌습니다. 이미 검사가 공소유지를 위해 법정에서 쏟아부어야 할 업무 비중이 수사보다 더 중요해진 상황입니다. 검찰 진술조서는 공문서지만 법정에서는 이제는 참고자료에 불과합니다.

강압수사로 인해 거짓진술을 했다는 고백이 아니라면 피고인이 검찰 진술을 법정에서 뒤집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법정에서 위증하면 처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는 것처럼 검찰 진술도 대등한 수준의 제도적 장치를 보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치검찰'이라는 비판 속에 문을 닫았던 대검 중수부였습니다. 다르다고 하지만 중수부를 연상케 하는 반부패수사 TF의 출범이 정치권은 물론 여론의 비판에서 자유롭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수사 현실을 목도한 후배 검사들의 얘기를 귀기울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라운드가 기울어져 있다면 그라운드의 균형을 맞춰주는 게 검찰 수장의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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