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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625일째 그 곳에 사람이 있네” 2015년 마지막 날 광화문광장

퇴근을 하고 간단히 요기한 뒤 5호선 지하철을 탔다. 10시 시작인데, 연휴용 기사 데스킹을 받느라 늦었다. 재촉하는 발걸음이 무겁지만, 다행히 날은 포근하다. 도착하니 행사가 한창이다. 광화문 광장엔 100명 남짓한 사람이 모였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625일째인 2015년 12월 31일 밤, ‘기억과 약속, 그리고 다짐’ 행사가 동거차도와 팽목항, 광화문, 안산분향소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 화상으로 연결된 사람들끼리 인사를 나누고 덕담을 주고받았다.

600일 넘는 시간 동안 같은 아픔을 나눈 사람들은 서로에게 또 다른 가족이 돼 있었다. 광화문에선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인 예은이 아버지 유경근 님이 준비해 온 글을 읽었다. 늘 시간을 어겨 혼난다며, 오늘은 정해진 5분을 맞추려 원고를 써왔다고 하셨다. 아버님은 '세월호가 가라앉고 7번의 계절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2014년의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2015년의 봄, 여름, 가을, 겨울. 7번의 계절이 지나고 416 가족들은 지금 광화문광장에 서 있다.
3번의 계절이 바뀌었을 때 쯤엔, 그러니까 정확히 1년 전 이 시각, 난 팽목항에 있었다. 선체 인양을 요구하며 모두가 떠난 팽목항 간이건물에 남아 2014년 마지막날을 보내는 가족들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 260일 지나도 그곳에…팽목항 못 떠나는 가족들 (2014.12.31 8뉴스)

광장을 찾은 건 그 때문이었다. 1년 전 함께 밤을 보낸 실종자, 희생자 가족들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무엇보다 다윤이 아버님을 꼭 뵙고 싶었다. 기사에서 검은색 모자를 쓰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분이 다윤이 아버님이다. 다윤이는 여전히 부모님 품에 돌아오지 못한 채 아직 그곳에 있다. 몇번 용기 내 천막까지 들어가 두리번거렸지만, 세월호 1주기였던 지난 4월 취재차 다시 만난 이후 다윤이 아버님을 뵌 적이 없었다.

지난 14일부터 3일간, 가족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가 열렸다. 나부터도 설레고 떨렸다. 몸 속 어딘가에 숨어 날 죽이는 암 덩어리같은 게 있다면, 드디어 배를 갈라 꺼내보는 심정 같은 것이었다.

도대체 2014년 4월 16일,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누가, 어떻게 해서, 이토록 엄청난 비극이 일어나 수 많은 가정을 고통 속에 밀어넣게 만들었던 걸까. 내가 가족이라면 그날 하루 있었던 모든 상황을 분, 초 단위로 재구성하고 싶을 것 같다. 믿고 싶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 그걸 미스터리로 남겨두지 않고 해부해 속속들이 알고 싶은 건 자식을 잃은, 부모를 잃은 가족들이 응당 요구할 수 밖에 없는 슬픈 본능이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사리 열린 청문회는 어땠나.

▶ 세월호 청문회 사흘 간 일정 시작…여당 특조위원 전원 불참 (SBS 박하정 기자)

▶ [SBS 카드뉴스] 정말 기억나지 않습니까?
- 어제(14일) 열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청문회. 가장 많이 나온 말은 바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였습니다. 도대체 누가, 무엇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요?


▶ [SBS 비디오머그] "아이들이 철이 없었는지"…세월호 청문회에서 나온 해경의 '남탓'
언론은, 우리 언론은 어땠나.

- 청문회에 지상파와 종편 등 방송은 생중계하지 않았고 인터넷 언론에서만 중계한 것은 어떻게 보세요?
"방송사란 방송사는 모두 와서 이걸 어떤 식으로 쓰려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찍긴 찍었어요. 그러나 방송을 안 했을 뿐이죠. 요청은 했지만 새누리당 추천 위원들이 여기 참여를 안 했기 때문에 방송하기 곤란하다고 해서 기대는 안 했어요. 그러나 어쨌든 모든 방송사가 다 와서 찍었으니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는 모르지만 쓰이긴 쓰인다는 거예요. 물론 악용될 수도 있죠. 이들은 중요성 측면에서는 충분히 인정하면서 방송은 못한 거죠."

- 언론보도는 어떻게 보셨어요?
"첫째는 충실한 보도가 별로 없었던 것 같고, 두 번째는 기자들도 국회 청문회와 똑같다고 생각하고 평가한 게 아닌가 해요. 국회 청문회처럼 이것을 끝으로 봐서, 그러면(이후에는) 더 이상 진상규명 못하는 게 아니냐는 평가가 많았어요. 하지만 언론이라면 "청문회에서 위증한 부분 밝히도록 조사를 하라"는 태도로 나왔어야죠. 그런데 "세월호 청문회에서 밝혀진 게 하나도 없다"는 식으로 기사가 나간 거예요. 청문회 답변 거부한 증인이 있다고 아무 성과 없이 끝났다는 건 잘못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 오마이뉴스 "세월호 청문회, 밝혀진 게 없다는 주장은 잘못" <세월호 특조위 비상임위원 장완익 변호사>
(▶기사 전문보기)
                                                   

왜 일기에나 적을 법한 이런 글을 취재파일에 적냐면, '새로운 것이 뉴스'라는 것에 사로잡혀 우리 뉴스가 세월호를 이야기한 지 오래 됐기 때문이다. 기자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비루한 존재일 때가 많지만, 이런 공간이 있다는 건, 그래서 뭔가를 적을 수 있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특권이기 때문이다. 1년 뒤, 또 광화문 광장에 가서 '올해에도 변한 건 없었네요'라고 말하게 될까 봐 두렵다.

교통사고처럼 찾아온 이 엄청난 비극을 온몸으로 맞서고 있는 가족들을 타자화하고 잊히게 내버려두는 건 절대 해선 안될 일이다. 배가 가라앉은 사건 자체보다도, 그 이후에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사태들이 우리 사회가 정말 어디까지 무너질 것인지를 의심케 한다. 새해를 마냥 힘차고 희망차게 맞이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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