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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돋보기] 일본군 위안부…그들이 과거사를 대하는 법

[뉴스 돋보기] 일본군 위안부…그들이 과거사를 대하는 법
지난 토요일(26일), 일본 지상파 TV 한국 주재 지국장으로 지난 여름까지 근무하다 귀국한 일본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일본에서는 한일 간 위안부 문제 협상이 곧 타결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자신이 보기에는 협상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일본 언론들은 돌파구가 마련됐다고 보도하고 있고, 자신이 근무하는 방송국에서도 그렇게 전망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국 근무 시절 술잔을 나누며 친분을 쌓아온 나는 당신의 말이 맞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위안부 문제처럼 민감한 사안이 그리 쉽게 타결되겠느냐고, 자칫 정치적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는 사안인데 한국 정부가 쉽게 양보하겠느냐고, 특히 소녀상 철거라니 그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그리고 위안부 협상이 타결된 다음 날인 어제(29일), 그 지인이 다시 전화를 해왔다. 한국에서는 이번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협상 타결을 어떻게 보느냐고.

난감해진 나는 한국과 일본 정부가 이행하기 힘든 불가능한 협상을 타결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과거사 문제를 두 나라 정부 당국자가 만나 일괄 타결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물론 두 나라 정부의 공무원들이 앞으로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할 수 있지만, 민간에서 특히 피해 당사자들이 엄연히 살아서 하는 말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느냐고. 민간에서 세운 소녀상 철거를 정부가 어떻게 약속할 수 있는가. 위안부 문제는 정부차원에서 할 수 있는 협상 대상이 아니다. 장기간에 걸쳐 일본이 지속적으로 사과하고 진정성을 가지고 신뢰를 쌓아갈 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렇게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나나 그 일본 지인이나 뒷맛이 개운치 않다. 현실을 잘못 진단한 것이고 예측을 잘못한 것이니 이른바 전문가라는 기자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냥 “정말 그런 것 같지요”라는 말로 위안을 삼았을 뿐이다.

“일본군 위안부 (慰安婦, 일본어: 慰安婦いあんふ 이안후, Comfort Women) 또는 일본군 성노예(日本軍性奴隸, 영어: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 일본 측 주장 종군위안부(從軍慰安婦じゅうぐんいあんふ 주군이안후)는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일본군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강제적이거나 집단적으로, 일본군의 기만에 의해 징용 또는 인신매매범 혹은 매춘업자 등에게 납치, 매수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끌려가, 일본군을 대상으로 성적인 행위를 강요받은 여성을 말한다.”

위 문장의 ‘위키피디아’ 정의처럼 위안부는 보는 사람들에 따라 명칭도 서로 달리 한다. 한때는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아무렇게나 불리기도 했다. 90년대 중반 캄보디아의 ‘훈 할머니’의 경우처럼 한때는 희귀한 일로 인식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피해자가 25만 명까지 되는 것으로 추산되는 안타까운, 슬픈, 그리고 아픈 역사적 사실이다.
피해자들의 국적도 한국은 물론 필리핀, 중국, 타이완, 인도네시아, 그리고 네덜란드까지 일제시대 일본군의 발길이 닿은 곳이면 피해자가 존재하는 엄연한 세계사적 진실이다.

이런 중대한 역사적 사실인 위안부 문제를, 어떤 협상이 후대에게 물려주지 않고 불가역적으로 완전히 해결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일본 정부가 출연을 약속한 10억 엔과 사과 성명이 어떻게 이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모든 나라, 모든 민족, 아니 모든 사람들에게는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 1·2차  세계대전, 월남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국가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미국에도 인디언 토벌대가 있었고, 호주에도 대륙의 원래 주인 인디언들에게 자행한 숨기지 못할 부끄러운 과거가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부끄러운 과거를 대하는 태도다. 부정하고 숨기고 왜곡하기 보다는 제대로 밝히고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반면교사로 삼는 것이 올바른 태도 아닐까.

일본 시민단체들의 말대로 일본이 진정으로 위안부 문제를 사과한다면 소녀상 철거는 요구해서는 안 되는 일일 것이다. 소녀상 철거 요구는 과거 잘못에 대한 사과의 진정성을 부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후대에게 짐을 더 이상 짐을 지워서는 안 된다는 일본 아베총리의 말도 대다수 한국인에게는 도저히 그 진의가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일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과거사에 얽매여 서로 미워하고 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부끄러운 과거일수록 겸허하게 인정해야 신뢰를 쌓을 수 있고, 그 신뢰를 통해서만 진정한 관계개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끄러운 과거도 인정하고 후대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부끄러운 과거를 되풀이 하지 않는 방법이요, 균형 잡힌 세계관을 가르치는 정도일 것이다.

한국 정부가 만들고 일본 정부가 재원을 출연한다는 재단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한 목표를 잃은 유령재단이 될 것 같다. 그 재단의 1차 목적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하고 밝히는 것으로 하면 생존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마음을 좀 풀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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