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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상담자가 사건 조사까지…대학 내 성폭력상담소의 현실

‘대학 성폭력 피해자 지원 및 사건처리 매뉴얼 개발 연구' ②

[취재파일] 상담자가 사건 조사까지…대학 내 성폭력상담소의 현실
‘대학 성폭력 피해자 지원 및 사건처리 매뉴얼 개발 연구(이하 매뉴얼)’엔 실제 대학 내 성폭력상담소 근무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실려 있는데, 이를 통해 대학내 성폭력 실태를 잘 파악할 수 있다.

- 사건처리 과정에서 피해자가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신분 노출, 소문 등의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87.5%)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해자를 피하느라 스스로 위축되고 제한하는 대인관계 문제(60%), 학교 시설 이용 제한(46.3%) 등이 그 다음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였다. 그 외에도 사실 관계 확인, 증거자료 확보의 어려움과 수업권 침해로 인한 불이익, 참고인 확보가 곤란한 점, 스스로 혹은 피신고인 인생 망치는 것 등에 대한 자책감 등을 꼽았다.
pp.56~57


- 사건 처리 시 전문성과 공정함을 확보하기 위해 심의위원회 구성 시 외부 전문가의 참여를 규정에 명시한 대학은 47.4%이며, 피해자의 합리적 관점을 확보하기 위해 학생, 직원 등의 참여를 명시한 대학이 59%와 83.2%이다. 심의위원회 활동이 활발하다고 답한 대학은 사건에 대한 기관장의 인식수준이 높고, 학교의 관심이 높기 때문이라고 답하였다. 학교 당국 및 기관장을 비롯한 주요 의사 결정권자의 문제인식과 성인지 감수성 수준이 심의위원회 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심의위원회 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대학이 42.1%, 전혀 이루어지 않는 대학도 20%로 나타났다. '사건 신고 접수 자체가 저조'(51%)하거나, '위원들의 남성 중심성'(4.2%)이 그 이유로 제시되었다. 성폭력 업무담당 실무자로서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전문 인력의 부족'(40.4%)과 '과중한 업무'(37.9%)로 나타났다.

상담원의 고용형태는 정규직 20%, 무기 계약직 12.6%, 기간제 계약직 53.7%로 나타났는데, 이러한 불안정한 고용형태는 업무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확보하는 데 주요한 장애가 되고 있다. '상담원의 대학 내 지위 및 근무조건의 열악함'으로 인해 상담원으로서 어려움을 느낀다고 대답한 비율이 19%에 달한다.
pp.57~58


무엇보다 그들의 실제 목소리가 담겨 있다는 점이 의미 있다.

"교수와 학생간 사건은 가장 부담됩니다. 교수가 가해자일 때 강하게 조사하는 것이 어렵고요. 상담자의 교내 지위가 열악하니까 교수에게 상담소에 와라가라 하기도 좀 그렇고... 그리고 교수라 최소한 예우를 해야 해서요... 교수에게 피해를 입은 학생은 한두 번 피해입고 신고하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참고 참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학업을 포기할 마음으로 상담소를 찾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피해가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라 피해자 상태가 매우 심각합니다." (B)

"교수 사건이 처리하기 훨씬 어렵죠. 조사는 거의 제가 먼저 처리하는데 교수를 조사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조사위원회를 한 번도 열지 않았어요. 사실 학교 측에서도 원치 않고... (중재만 해왔으므로) 징계위원회에 징계 해달라고 한 적은 없었어요." (D)
pp.61~62

"제가 학교에서 일한지는 오래되었지만 교수에게 피신고인으로 지목되었다고 연락하는게 마음의 부담이 큽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더라고요." (D)

"학생 피해자나 가해자들은 대부분 처리과정과 결과에 대해 믿고 따르더라고요. 그런데, 교직원 같은 경우는 '(수용)못한다, 제소하겠다, '나가서 (제기)하겠다'고도 했어요. 그런데, 워낙 사안이 명확한지라, 그래도 윗선 찾아가서 따로 만나기는 했더라고요." (A)
p.63


또한 상담자와 사건처리자라는 역할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는다는 고충도 있다. 내담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하는 상담과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에서 사건처리를 담당하는 입장은 크게 다르지만, 상담자는 이 과정에서도 피해자가 불안하지 않도록 신뢰관계를 유지하면서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무자들은 상담을 통해 사건접수로 이어지고, 사건처리를 할 때 관련자들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다.

"어떻게 보면 되게 다른 성향의 일을 하도록 하는 거죠. 상담도 하고, 사건도 하고." (E)

"상담이지 조사가 아니어서 취조 당하는 기분이 안 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 어려움이 있어요." (B)

"어느 정도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면에서 처리를 해야 하니 상담이 또 깊어질 수가 없어요. 객관적인 내용을 먼저 막 물어보고 나서 피해자 같은 경우는 객관적인 내용이 다 끝났으면 가고 싶은 거예요. 그냥 학교에서 처리해서 딱 줬으면 좋겠고." (E)
pp.63~64


또는 피해자가 상담기구 혹은 사건을 중재하는 상담자를 불신하여 난처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도 있다.

"저는 피해자, 행위자를 다 보잖아요. 저는. 그랬을 때, 이쪽저쪽 다 왔다 갔다 하면서 말하다가, 다시 한 자리에 앉히고 그럴 때, 애들이, '선생님이 우리 편인가?' 이런 의문들을 내내 갖고 있더라고요. 우리 학생일 때, 우리는 철저히 피해자 입장에 준거하여 하기는 하는데, 그 쪽의 아이들이, 피해 입장에서, 행위자 입장에서도 그걸 놓지 않고, 이렇게 하고 보는 것, 그게 어렵더라고요……. 학교와 어른들에 대한 불신들이 의외로 많더라구요."(A)

"피해자가 전적으로 '내편이다'라고 생각을 못해요. 가해자 편 들까봐 전전긍긍하게 되고. 왜냐면 중립이라는 거, 객관적이라는 게 되게 좋은 게 아닌데 그런 것처럼 보여야 하니까. 학교도 그렇게 중립을 요구하고. 근데 이 상담은 사실 피해자 중심으로, 피해자에게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이렇게 들어가야. 그니까 중간에 피해자들이 그런 상처를 받거나 이렇게 문제가 생기는 것들도 사실은 이 전적으로 사건 처리 과정을 혼자서 다 하다 보니까 전적으로 피해자 입장의 표현을 못 들어봤기 때문이에요.

아마 S대 같은 경우는 피해자 따로 가해자 따로 면담하니까 조금 이게 내 편 내 변호사가 있는 거 같아서. 상담도 좀 진행할 수 있고. 일회가 아니라. 더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더라고요. 장단은 있는 거 같은데 피해자를 위해서는 분리되는 게 좋은 거 같아요." (C)


상담자가 1인 밖에 배치되지 않아 사건 당사자인 피해자와 행위자를 모두 만나 상담을 진행하게 되는 상황이 피해자에게 불신을 야기하거나 상담자의 역할 갈등과 혼란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사건처리를 맡은 상담자는 피해자를 지지하고, 사건에 대응하는 역량을 강화해야 함과 동시에 정서적 안정을 도모하는 등의 일차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동시에 피신고인을 만나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피해자의 요구조건을 전달하면서도 피해자 일방의 주장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사건처리를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 한계로 인해 '피해자 보호 및 지원'과 '사건처리 객관성'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사건 당사자들의 신뢰를 확보하는 일은 난제일 수밖에 없다. 이에 상담 기구에 최소한 2인의 전담인력이 배치되어 피해자와 행위자를 각각 전담하는 형태로 사건처리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상담과 조사를 겸하기 때문에 상담자로서의 지위와 조사자로서의 지위를 한 사람이 하는 것이 어려운 거예요. 중립적인 입장의 조사자, 피해자에게 수용적인 조력자가 다르잖아요. 구분해야 하는 것이 좋다고 봐요. 한 명은 가해자 전담, 한 명은 피해자 전담, 한 명은 조사자의 구조가 좋을 것 같아요. 가해자도 감정 변화가 있고 힘든 것이 있어서 가해자도 처음에는 일정 정도 공감이 필요하구요. 공감이 되죠. 거리두기가 필요해요. 가해자와도 라포가 형성되거든요. 이게 개인적으로도 힘들고 사건 처리에서도 편향성이 있을 수 있다고 봐요." (B)
개인적으로 서울대 내 교수 성추문 관련 두 사건(강석진, 박오수 교수)의 피해자들과 대화를 나눌 일이 많았다. 밤새 통화를 하거나, 펑펑 우는 피해자와 마주한 일도 있었다. 두 사건 모두 알려진 피해자만 수십 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미처 말하지 못한 심적 고통까진 알 수 없지만, 문제제기를 결심한 순간부터 현실적으로 가장 힘들어했던 것이 무엇이었는 지는 정확히 알고 있다. 바로 '누구를 믿어야 할 것인가'였다. 전적으로 의지할 사람 혹은 기관이 없었던 것이, 언론이, 기자가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렇기에 이번 매뉴얼의 개발이 무엇보다 반갑다.

피해자 중심의, 피해자의 마음에 다가서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 것이다. 분명 가해자에게도 인권이 있고, 그들의 명예도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 대학은 학내 성폭력 사건의 처리를 극소수의, 상담원 1~2명에게 모두 맡기는 현실에 대해 자문해 봐야 한다. 심의기구부터 징계위원회의 구성원도 잘 살펴야 한다.

국내 대학 가운데엔 아직 상설기구가 없는 곳도 많다. 학내 성폭력 문제가 개인 간의 감정 싸움이나 송사로 가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매뉴얼에서도 언급했듯이, 피해자 대부분이 학부생, 20대 초중반이다. 성년이지만, 아직 사회에 발을 담그지 않은 '학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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