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명문고 강남 이전과 평준화 정책이 만든 '8학군병'

명문고 강남 이전과 평준화 정책이 만든 '8학군병'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는 흔히 '8학군' 혹은 '강남 8학군'이라는 별칭으로 불립니다.

원래 8학군이라는 명칭은 어떤 뜻을 내포한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1980년대 도심 공동학군이 폐지되고 고등학교 배정 방식이 거주지 중심으로 바뀌면서 서울 시내 고교는 모두 11개 학군 체제로 조정됩니다.

이에 따라 서울 동부(동대문구·중랑구)는 1학군, 서부(마포구·서대문구·은평구)는 2학군, 남부(영등포구·구로구·금천구)는 3학군 이런 식으로 묶였습니다.

그런데 강남구와 서초구를 묶은 8학군만 유독 '교육특구'라는 상징성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제연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상징적 의미의 8학군이 등장한 배경과 발전 과정을 분석했습니다.

8학군이 명성을 얻게 된 결정적 이유는 이른바 명문고의 강남 이전 때문입니다.

정부는 서울 도심에 몰리는 인구를 분산시키기 위해 당시 최고 명문고였던 경기고를 강남구 삼성동으로 이전했고, 이를 계기로 휘문고, 서울고 등 다른 명문고들이 잇달아 강남으로 학교 부지를 옮겼습니다.

당시 학교에서는 강남 이전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경기고 동문은 정든 '화동 언덕'을 버릴 수 없다며 반발했고, 결국,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기존 경기고 건물을 없애는 대신 도서관으로 사용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나서야 이전을 수용했습니다.

오로지 도심지 인구 분산을 목적으로 했던 고교 이전은 평준화 정책을 만나면서 '교육특구의 탄생'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1980년 고교 배정 방식이 거주지 중심으로 바뀌면서 명문고는 모두에게 열린 학교가 아니라, 특정 지역 거주 학생만 갈 수 있는 곳이 됐기 때문입니다.

중산층 이상의 가정은 명문고에 자녀를 보내고자 강남으로 몰렸고, 학교 주변의 집값은 치솟았습니다.

우수한 학생이 집중된 학교는 주요 대학에 많은 합격자를 배출하며 명성을 이어갔습니다.

이런 상호작용 속에서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좋은 대학을 가려면 강남 8학군으로 가야 한다는 등의 신화가 생겨났습니다.

'8학군병', '8학군 증후군'과 같은 용어가 생긴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결국, 8학군병은 명문고 이전과 평준화 정책, 중산층 교육열이 결합해 생긴 기현상인 것입니다.

무수한 논란 속에서 학군제는 1990년대부터 부분적으로 바뀌었고, 8학군이라는 명칭도 공식적으로 폐지됐다.

그러나 8학군은 형태와 방식을 달리하며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과학고나 외국어고 등에 밀려 강남 일대 고교의 명성은 예전 같지 않지만, 거대한 학원가가 형성되면서 '교육특구'는 '사교육특구'로 변화했습니다.

오 교수는 "1970년대부터 시작된 강북 학교의 강남 이전은 1980년 8학군 탄생을 계기로, 교육과 계층 문제에서 쉽게 풀기 어려운 과제를 던진 역사적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