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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눈 앞에서 태극기만 펄럭이면 애국인가요?

눈에 안 보이는 물 찬 국립묘지부터 해결해야

[취재파일] 눈 앞에서 태극기만 펄럭이면 애국인가요?
국가 유공자가 사망할 경우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자격이 주어집니다. 나라에 봉사한 사람들에게 국가가 최선의 예우를 다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유공자를 모신 묏자리가 물에 차 있다면 유족의 심정은 어떨까요? 이게 제대로 된 나라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이런 일이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1985년 문을 연 대전 현충원은 독립 운동가부터 연평해전과 천안함 용사, 경찰과 소방관까지 11만여 명의 국가 유공자가 안장돼 있습니다. 오와 열이 잘 맞춰진 이들의 묘비엔 형형색색의 꽃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등 적어도 ‘눈으로 보기’엔 깔끔하게 조성돼 있습니다.
하지만 ‘눈에 안 보이는’ 묘비 아래에선 기막힌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이 한 장의 사진이 그 일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사진에 나온 구덩이는 어느 유공자 묘소 바로 옆을 한 70cm 팠을 때 만들어진 겁니다. 국가 유공자의 배우자가 숨질 경우 현충원에 함께 안장될 수 있는데 구덩이를 파서 배우자의 분골함을 넣은 뒤 유공자 분골함 쪽으로 밀어 넣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합장을 위해 판 구덩이에 가득 고인 물. 그걸 퍼낸 바가지와 흥건히 젖은 땅. 이건 과연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그 일대의 지표 턱밑까지 물이 차 있다는 뜻이지요. 유공자의 분골함이 지표에서 60~70cm 아래 묻혀 있으니까 적어도 이 일대 묻힌 유공자들은 ‘안장(安葬)’, 즉 편안하게 묻힌 게 아니라 ‘수장(水葬)’, 다시 말해 물에 잠겨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이해 당사자가 아닌데도 기가 찰 노릇이지요. 하물며 그 일대에 아버지가 묻혀 있는 유족의 입장은 어떻겠습니까. 문제의 ‘물 찬 구덩이’ 사진을 촬영해 취재진에게 제보한 사람이 바로 유족 중 한 분인 송 모 씨입니다. 후두둑 빗방울 떨어지던 날 취재진과 함께 대전 현충원을 찾은 송 씨가 울먹이며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확인할 수 없어서 답답하지만 아버지 분골함이 물에 찼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요. 지금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엔 더 그렇죠.”
유공자를 안장한 땅 속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서경대학교 최재순 교수(토목건축공학과)와 함께 묘역을 둘러봤습니다. 현충원 주변을 둘러싼 지형과 지표의 높낮이 등을 한참 살펴본 최 교수는 ‘배수로’를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묘역 아래 땅 속엔 일정량의 지하수가 있는데 비가 올 경우 수위가 높아져서 분골함을 덮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묘비 중간 중간에 배수관을 따로 설치해서 물을 빼야 유공자의 분골이 수장(水葬)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지적하더군요.

그렇다면 정말 그 일대 유공자의 분골함은 물에 잠겨 있는 걸까요? 대전 현충원 내 다른 묘역은 또 어떤 상태일까요? 놀랍게도, 취재 중에 저를 찾아온 현충원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렇게 넓은 지역에서 물 찬 곳이 100%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털어놓더군요. 덧붙여 “우리 입장에선 불편한 부분”이라고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문제를 알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대전 현충원 측은 “그렇지 않아도 5년 전부터 묘역의 묘비 사이사이에 배수관을 설치하고 있고 전체 묘역 중에 70%는 공사를 완료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예산이 부족해 한 번에 해결하지 못한 게 안타깝다”고 말하더군요.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최근 벌어진 대형 태극기 논란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설치 예산만 10억 원이 든다고 하죠. 과연 보훈처는 눈앞에서 태극기가 펄럭여야만 애국심이 생긴다고 믿는 걸까요? 보이는 것에만 치장하지 말고 안 보이는 것까지 묵묵하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유공자들을 물 찬 땅 속에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나라에서 애국심이 들어설 자리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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