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도대체 뭐가, 누구에게 죄송하다는 말입니까?

인천 11살 샛별이 학대사건 이모저모

소환욱 기자 cowboy@sbs.co.kr

작성 2015.12.24 14:45 수정 2015.12.24 21:5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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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도대체 뭐가, 누구에게 죄송하다는 말입니까?
(SBS는 앞서 학대당한 11살 여자아이를 'A양'이란 알파벳 이름으로 통일했습니다만, 이 취재파일에서는 A양이라는 알파벳 이름 대신 '샛별'이라는 가명을 쓰겠습니다.)
 
● 2015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인천 남동경찰서 현관

키가 작고 왜소한 남자 한 명이 경찰관들과 함께 유치장에서 나옵니다. 미리 정해놓은 포토라인에 선 이 남자에게 기자들의 질문 공세가 이어집니다.
 
-(기자) 왜 둔기로 때리고 그러셨습니까?
=(남자) 죄송합니다.
- 딸이 집에 가기 싫다고도 했고 또 아버지 처벌을 원한다는 그런 가슴 아픈 얘기를 했는데 딸에게 하시고 싶은 말 없습니까?
= 죄송합니다.
- 따님을 막 대하고 부모로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으셨습니까?
= 죄송합니다.

 
남자는 죄송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습니다. 죄송하다지만 반성하는 기미는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뭐가 죄송하다는 말입니까?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지 말고 누구한테 죄송하신 거예요, 지금?"
 
남자는 침묵했습니다. 천천히 대기 중이던 호송차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뒤이어 나온 여자 둘도 마찬가지, 두 번째로 유치장에서 나온 이 남자의 동거녀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상기된 표정으로 나온 동거녀의 친구는 역시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호송차로 향했습니다.

아침부터 취재하기 위해 많은 기자들이 이들을 기다렸습니다. 모두 느끼는 감정은 비슷했습니다. '분노'입니다. 기자는 항상 공정하고 균형 있게 모든 사건을 대해야 한다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감정을 억제하긴 힘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이들은 지난 한 주간 온 나라를 분노케 했던, 인천 11살 여자아이 학대 사건의 피의자들입니다. 경찰 조사를 마친 이들은 크리스마스이브였던 24일 아침 인천지방검찰청으로 송치됐습니다. 
 
● 똘똘하고 착한 아이였던 샛별이…. 어느 날 갑자기 학교 나오지 않아

8년 전 엄마 아빠가 이혼한 이후, 샛별이는 경기도 부천에서 살았습니다. 학교를 다닐 때도 결석을 자주 했다고는 하지만, 학년 진급에는 별문제가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부천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 샛별이는 똘똘한 어린이였습니다. 발표도 곧잘하고, 글씨도 예쁘게 써서 칭찬도 많이 들었다고 하네요.

이런 샛별이에게 시련이 찾아온 건 지난 2013년 가을쯤입니다. 2학년 2학기가 시작됐지만, 샛별이가 갑자기 학교에 나오지 않기 시작한 것입니다. 담임선생님도 걱정됐는지 경찰에 전화도 해보고 출석 독려장을 두 번 보냈지만, 샛별이의 행방은 묘연했습니다.

학교나 관련 기관 모두 샛별이가 어디에 있는지, 왜 학교를 나오지 않는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학대가 시작될 무렵입니다.● 인천으로 이사…. 본격적으로 시작된 학대

 2013년 가을 샛별이 부녀는 부천에서 인천 연수구로 이사를 했습니다. 본격적인 학대는 이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심리적 학대는 있었던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피의자들이 시인하고 있는 것과 샛별이가 진술하는 내용의 거의 이 시기와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부천을 떠나 인천으로 이사 오기까지 잠시 공백이 있는데 이 사이에 모녀는 여관 등을 전전하는 떠돌이 생활을 했다고 하네요. 인천으로 이사 온 직후, 샛별이와 아버지, 동거녀, 동거녀의 친구가 함께 살아온 것으로 보입니다. 

● 파리채로 시작된 학대 노끈으로 묶어놓고 세탁실에 가두기까지

가족의 생활수단은 동거녀가 밤일로 벌어오는 돈이 전부였습니다. 아빠와 동거녀의 친구는 밥 먹는 시간을 빼곤 인터넷 게임만 했습니다. 밥을 주지 않은 것은 애교에 불과했습니다. 피자를 시켜도 샛별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남은 찌꺼기가 전부였고, 새벽녘에 퇴근한 동거녀는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샛별이에게 풀었습니다.

방송용 기사에 자세히 쓰진 않았습니다만, 처음에는 파리채 같은 것으로 때리다가 쇠로 된 옷걸이로 때렸다고 하네요. 손발로 구타한 것은 물론이고 둔기로도 때렸다고 합니다. 노끈으로 손발을 묶는 등의 폭행도 자행됐습니다. 동거녀의 친구는 틈만 나면 샛별이의 손과 발을 꽁꽁 묶어서 세탁실에 가뒀습니다.

세탁실에서 가스배관을 타고 탈출한 날도 꽁꽁 묶여 있던 손발을 혼자 풀고 나왔습니다. 지난해 아무도 집에 없는 틈을 타서 집 밖으로 나온 적이 있지만, 지나가던 음식 배달원이 샛별이를 보고 집에 데려다줬다고 합니다. 단순하게 길을 잃은 어린이라고 생각했겠죠.

이때의 학습 효과 때문인지 두 번째 탈출 때는 보육원에서 몰래 나왔다고 했다고 합니다. 불과 11살 난 꼬마 아이가 말입니다.  샛별이에게 집은 포근한 안식처가 아닌 무간 지옥과도 같은 곳이었을 겁니다. 샛별이가 지옥에서 탈출한 지난 12일 저녁, 학대했던 3명은 어딘가로 도망쳤습니다. 동거녀와 친구가 샛별이가 빵을 훔쳤던 슈퍼에서 경찰이 샛별이를 데려가는 모습이 담긴 CCTV를 확인한 직후였습니다. 나흘만인 16일 오후 동거녀는 경기도 광명에서, 아빠와 동거녀의 친구는 인천의 한 모텔에서 잡혔습니다. 
 
● 체계적인 치료가 필요
 
"단순히 체중을 얼마에서 얼마로 급격하게 올리는 것보다는 어떤 장기에 문제가 있는지 호르몬의 균형의 문제는 없는지 성장 전문가나 영양전문가에게 관리를 받아야 될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장기간 학대를 당한 아동의 경우, 신체적인 심한 스트레스뿐 아니라 여러 장기에서 많은 문제가 있을 수가 있기 때문이죠. 골밀도도 감소할 수가 있고요."
 
인터뷰에 응해준 소아과 전문의의 말입니다. 2년 동안 학대가 이어졌다고는 하지만 의료 전문가들은 이전부터 학대가 이어졌을 것이라고 합니다. 샛별이의 발육상태는 4살배기 정도 수준인데, 보통 11살 어린이들은 45cm 정도에 체중도 40kg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키도 평균키보다 25cm 정도가 부족하고 체중도 부족한 아주 심각한 상황이니 오랜 기간에 걸쳐서 영양 결핍이 이어졌을 것이라는 겁니다. 이럴 경우 신장의 기능이나 호르몬 불균형도 심할 수도 있습니다.

반드시 전문팀이 형성되어서 신체적인 문제와 정서적인 문제를 함께 아울러서 체크를 하고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1주일 만에 4kg이 분 것도 심장에 무리가 갈 수도 있어서 좋은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고 합니다.
 
검찰에 사건이 송치되면서 샛별이 사건은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앞으로 3명은 법의 심판을 받겠죠. 사회적인 공분을 일으킨 만큼 응당한 처벌이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정부는 뒤늦게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장기 결석자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선다고 합니다. 큰 사건이 있어야 대책이 나온다는 것이 안타깝긴 합니다만 만약 우리 사회에 제2의 샛별이를 있다면 빨리 찾아내 치유해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여러분의 신고가 절실합니다.

주변에 샛별이와 같은 어린이가 보인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경찰에 신고해주십시오. 남의 아이라고 그냥 넘기시면 안 됩니다. 어린이를 보호하는 것은 우리 어른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 캄캄한 하늘을 밝히는 샛별처럼 자라길

샛별이가 병상에서 그렸다는 그림을 이 글을 쓰는 지금 보고 있습니다. 집과 크리스마스트리를 그린 손가락만한 그림이었습니다. 작은 A4용지에 그린 그림에 남은 여백은 너무나도 컸습니다. 샛별이는 빠르면 이번 달 말쯤 퇴원해서 본격적인 심리치료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부디, 샛별이가 캄캄한 하늘을 밝혀주는 샛별처럼 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학대당한 상처를 잊기 어렵겠지만 다른 아이들이 그린 그림처럼 이 여백을 꽉 채울 수 있게 하루빨리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길 빌어봅니다.
 
(이 기사를 쓰는 데에는 이 사건을 수사한 인천지방경찰청, 인천 연수경찰서 관계자들과 인제대학교 상계 백병원 소아내분비학 전문의 박미정 교수님이 도와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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