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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험지 출마론' 이면의 새누리당 권력 암투

[취재파일] '험지 출마론' 이면의 새누리당 권력 암투

김수형 기자 sean@sbs.co.kr

작성 2015.12.24 15:15 수정 2015.12.24 17:0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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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대희에 이어 오세훈까지…"험지 출마, 당의 뜻 따르겠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험지 출마론 동참 의사는 뜻밖이었습니다. 오 전 시장은 서울시장 출신답게 정치적인 상징성이 있는 정치 1번지 종로를 택해, 5선의 중진인 새정치연합 정세균 의원에게 도전장을 냈습니다. 물론 종로는 같은 당내에서도 3선 출신의 박진 전 의원이 버티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경선과 선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 전 시장은 자신에 대한 험지 출마론이 나올 때마다 "종로가 험지가 아니면 어디가 험지냐"며 후보로 완주할 의사를 강하게 표시해 왔습니다. 이미 예비후보 등록도 마쳤고, 이사도 끝냈습니다. 지역구를 돌며 인사를 하는 활동도 조용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어제(22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면담을 하고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오 전 시장은 "당에서 결정 해주는대로 따르겠다고 결론 내렸다"고 기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지도부에 어느 지역구에 보내도 좋다는 사실상 백지수표를 내줬습니다.

안대희 전 대법관도 김무성 대표를 만나고는 입장이 완전히 바뀌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안 전 대법관은 검찰 재직시 부산 근무를 했었고, 5년 전까지 그의 부모가 해운대에 거주하기도 했습니다. 부산에 사무실까지 준비하고, 본격적인 표밭 다지기에 들어가기 직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제(22일) 김무성 대표가 면담을 하고는 안 전 대법관의 입장을 완전히 바꿔놨습니다.

김 대표는 총선 전략에 도움이 되는 전략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당에 협조해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했고, 역시 마찬가지로 안대희 전 대법관의 백지수표를 받아 쥐었습니다. 서울시장과 대법관 출신의 명망가들을 원하는 지역에 출마시킬 수 있는 꽃놀이패를 새누리당은 지도부는 들게 된 셈입니다.

● "험지출마해도 전략공천은 없다"…김무성 대표의 단언

김무성 대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을 꼽으라면 전략공천을 들 수 있습니다. 김 대표에게 전략공천은 권력자들의 '내 맘대로 공천'의 상징 같은 대상입니다. 본인도 공천 과정에서 아픈 상처를 겪어봤기 때문에 전략공천이라는 말을 극도로 경계합니다. 이미 공개적인 자리에서 여러 차례 "내가 있는 한 전략공천은 없다"고 단언한 바 있습니다.

당 대표의 권한을 내려놓겠다며 후보 선출 단계부터 일반 국민들이 참여해 뽑는 '오픈프라이머리'(완전 개방형 국민경선제)를 하겠다고 했지만, 도입이 무산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략공천을 안하겠다는 것은 김무성 대표가 지켜내야 할 마지막 약속이 됐습니다. 오픈프라이머리를 하면 좋겠지만, 야당이 도입을 거부한 상황에서 사실상 실현 방법은 사라졌습니다. 전략공천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떻게든 지켜야한다는 김 대표의 절박감은 더 커졌습니다.

하지만 험지 출마는 명망가들을 지도부가 원하는 지역에 출마하게 만드는 형식입니다. 이미 다른 지역구에 선거운동을 하려는 오세훈, 안대희 같은 거물들을 야당과 치열한 접전이 펼쳐질 험지에 내려 보내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벌써부터 이들의 상대로 김한길, 추미애, 박영선 의원 같은 수도권 야당 거물 정치인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과거같이 전략공천을 하겠다고 표현하면 이해하기 쉽지만, 대표가 전략공천은 안한다고 하니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김무성 대표가 오가는 길에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고 여러 차례 질문을 했는데, 전략공천 얘기가 나오니까 역시 펄쩍 뛰었습니다. "험지 출마를 해도 전략공천은 없다"고 다시 한 번 단언했습니다.

김 대표는 "모든 건 상향식 경선을 원칙으로 한다"고 답했습니다. 험지에 내려 보내기는 하지만, 새누리당 경쟁자가 있다면 경선을 해서 살아남아야 후보가 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김무성 대표의 한 측근은 "험지에 명망가가 내려가도 지도부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다만 대중이나 당원들이 험지에 누가 왔는지 알기 때문에 경선 과정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김무성 대표가 말하는 험지 출마론의 핵심은 전략적 배치와 배려"라고 설명했습니다.

● 비박(非朴) "진박 놀이 하는 사람들이 험지로 가야"

험지 출마론에 대해 새누리당 비박, 친박계의 시각은 확연하게 갈렸습니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 이렇게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비박계 의원이면서 새누리당 서울시당 위원장을 맡아 초창기부터 험지 출마론을 주장했던 김용태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김 의원은 김무성 대표와 마찬가지로 "전략공천은 있을 수 없다"며 "단수 추천은 해서는 안 되고, 명망가들도 경선을 원하는 당협위원장 등 예비후보들과 당당하게 경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만약 "경선을 두려워한다면 정치를 진작 그만둬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김용태 의원의 험지 출마론은 여기에 그치는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장관, 청와대 수석 등 대통령의 후광으로 선거에 출마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어려운 지역에 출마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른바 '진박(眞朴, 진실한+친박)'이라는 사람들이 새누리당 간판을 달고 출마하면 누구나 된다는 대구, 경북에 출마하기 보다는 열세 지역에 과감하게 몸을 던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대통령의 측근임을 노골적으로 내세우면서 "진박 놀이를 하는 사람들은 험지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친이계의 좌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재오 의원은 한술 더 떴습니다. 어제(23일) 국회에서 열린 회의에서 "새누리당이 국민정당이라고 하는데 부끄럽게도 호남에 의석이 한 석밖에 없다"고 운을 뗐습니다. 그러면서 "권력의 자리에서 권력을 얻은 사람들이 지역구를 새로 선택하려고 하면 과감하게 호남에 출마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쉬운 지역에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도전하는 것이 정치개혁과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겠다고 지적했습니다. 대통령의 후광을 입은 사람들은 험지정도가 아니라 새누리당의 사지(死地)라고 여겨지는 호남에 나가라고 일갈한 겁니다.
김무성 대표 ● 친박(親朴)들의 총반격 "너나 가라, 험지~"

하지만 험지 출마론에 대해서 친박계 의원들은 하나같이 부정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일단 김무성 대표가 전략공천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험지에 명망가를 모신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겁니다. 야당의 강력한 후보와 맞서 싸우려면 외부의 거물을 영입 해와도 시원찮을 판에 당내 선거부터 나가서 죽도록 싸우라고 밀어넣는 게 말이 되냐는 설명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명망가가 새누리당을 택하겠냐는 주장이었습니다. 한 친박계 핵심 의원은 "새누리당 당규에 이미 경쟁력이 월등한 후보는 단수 추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왜 경선을 해야 하는 거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러면서 "험지 출마론을 통해 선거 분위기를 띄우고 싶으면 상향식 공천같이 이미 물 건너간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직설적으로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해수부 장관을 지냈던 친박계 유기준 의원은 라디오 방송에 나와 "총선에 처음 출마하는 분들을 험지에 보내면 이것이야말로 불공평하고 가혹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김무성 대표 본인은 부산 영도 출마를 고집하면서, 명망가라고 하지만 정치 신인에 불과한 사람들은 험지로 내모는 게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하는 친박계 의원들도 많았습니다. 대표 본인이 나서지 않는데, 과연 흥행에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었습니다.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은 라디오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험지 출마를 얘기하려고 하면 본인 스스로가 험지 출마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말해야 한다"고 김무성 대표를 향해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김무성 대표 본인은 '대표 차출'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습니다. 홍문종 의원의 공개 문제 제기를 질문해도 "답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속내를 들어보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았습니다. 김 대표의 한 측근은 "총선이라는 전국단위 선거를 대표가 험지에 나서서 스스로 발목이 잡히는 게 당 전체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선거까지만 나가고 다음 선거에는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만큼 "당 대표로서 이번에는 부산에서 출마하고, 대표로서 전체 선거지원에 나서는 게 전략적으로 옳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또한 차기 대선을 내다보는 입장에서 "부산이라는 지역적인 지원 없이 수도권같이 새누리당의 험지로 무작정 지역구를 옮길 수도 없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 험지출마론 이면의 계파 갈등…공천 전쟁의 서막

험지 출마론은 오세훈, 안대희라는 이름값이 있는 거물들에게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비박들은 험지 출마론을 무기로 진박(眞朴)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치졸한 행위를 하고 있는지 부각시킬 수 있습니다. 야당의 현역 거물 정치인들을 상대로 살신성인하는 명망가들은 선거판에 새 바람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잘만 성공하면 지도부의 전략적인 판단 때문에 선거 구도를 바꿔놨다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값에 기대 꽃밭의 영주 노릇을 하려는 후보자들에게는 정치적인 부끄러움을 심어줄 수도 있습니다. 당선은 되더라도 정치인으로서 자수성가한 게 아니라 대통령의 유산으로만 의원이 됐다는 인상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반면 친박들은 김무성 대표 스스로 '마지노선'으로 그어 놓은 전략공천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험지출마론을 띄우기 위해서는 김 대표가 '전략공천'을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정치적인 계산이 있습니다. 스스로 공천개혁을 이루겠다는 약속을 또 다시 번복해야고 그렇게 된다면 김 대표는 정치적인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전략공천을 하게 되면 친박의 후광을 입은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숟가락을 얹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게다가 현역 의원들은 지역구민들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험지에 나갈 수 없다는 논리는 떳떳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명망가라고 하더라도 정치적으로는 경력이 일천한 사람들을 험지에 몰아넣고, 자신들은 지역구가 있어서 험지에는 못나간다는 주장은 감동이 없다는 친박들의 설명은 대중에게 먹히는 논리이기도 합니다.

공천은 국회의원으로서 정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아주 민감한 문제입니다. 험지 출마론의 공론화는 공천제도 전쟁을 알리는 서막과 같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새누리당 공천제도 특위도 이제 본격적으로 가동될 계획입니다. 논의되는 민감한 주제마다 친박, 비박 모두 정치적으로 양보하기 어려운 사생결단식의 다툼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험지출마론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새누리당 내부의 계파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 [뉴스브리핑] 새누리 "니가 가라 험지"…불 붙는 '험지출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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