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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세월호 청문회와 우리 곁의 '거악(巨惡)'

[취재파일] 세월호 청문회와 우리 곁의 '거악(巨惡)'
세월호 특조위 1차 청문회 마지막 날 오후.

최고의 ‘씬 스틸러’는 단연 해경 측 증인으로 참석한 김문홍 전 목포해양경찰서장이었다. 하이라이트(?) 몇 장면 모아봤다. 


# 장면 1
[조사위원] 왜 선내 진입 명령을 내리지 않았습니까?
[김문홍 전 서장] 나름대로 저는 상황실에서 기본적인 조치라든가 필요한 사항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중략) 왜 (세월호) 선장이 그렇게 했는가 도저히 지금도 이해가 안 갑니다! 
(객석에서 야유)


# 장면 2

[조사위원] 감사원에서 증인이 어떤 잘못을 했기에 징계했는지 알고 계십니까?
[김문홍 전 서장] 제가 아니까 얘기한 거 아닙니까, 공무원법 56조에 의해서... 성실 의무 위반해서 받아가지고... (그 질문이 아니라고 하자) 근거 조항을 말해야지, 그럼 뭘 말하란 말입니까?


## 장면 3 (조사 지연에 김문홍 전 서장 항의하는 상황)
[조사위원] 김문홍 증인, 3일동안 고생하셨죠?...(중략) 저 미워하지 마세요.
[김문홍 전 서장] 미워할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중략) 저는 인격이 없습니까? 인권이 없습니까 제가?
 (객석에서 고성과 야유)

 
김문홍 전 서장 / 사진=연합뉴스
세월호 사고 당일, 현장 관할서의 최고 책임자였던 김문홍 전 서장은 청문회 내내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객관적으로 봐도 자신이 어떤 자격으로 청문회에 나왔는지, 왜 여기에 나왔는지조차 잘 모르는 듯 했다. 심지어 신문을 맡았던 이호중 위원과의 질의응답 순서에 가서는 청문회를 이 위원과의 ‘개인 대 개인’, 자존심 싸움으로 여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클라이맥스는 “저는 인권이 없습니까!” 라고 부르짖는 장면이었다. 피해 의식에 가득 차 내지른 그 한 마디에 장내가 아우성쳤다. 유가족들의 분통 터지는 고함과 야유가 빗발쳤고 많은 사람들이 말을 잃었다. 김문홍 전 서장은 파르르 고개를 떨며 입을 꾹 다물 뿐이었다. 그는 마주 앉은 조사위원을 ‘미워하고’ 있었다.

 그랬을 수도 있다. 백번 양보해서 이해해 보건대, 김문홍 전 서장은 억울할 수도 있다. 본인의 말처럼 보고를 접하자마자 동원 가능한 전 함정을 신속 출동시켰고 현장으로 보냈다. 어디 가지도 않고 상황실에서 비상근무를 서면서 지휘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그 선장이, 방송도 안 하고 도망갈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지금도 그 선장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뛰었는데... 지금 이 청문회 자리에 나와 앉아있는 것도 억울해 죽겠을 가능성, 충분히 있다.

 여기에 이르면 김문홍 전 서장은 참 순진한 사람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설령 속마음이 그렇다 하더라도 시늉할 줄 모르고, 꾸밈없이 감정을 드러내고, 큰 생각없이 곧이곧대로 알아듣고 이해하는 그런 사람. 저 당당함을 보건대 직장에서는 존경받는 상사, 가정에서는 꽤 괜찮은 아버지였을 것도 같다.

외람된 얘기일 수 있지만 김 전 서장과 세월호 사건이 전혀 관계없었다고 가정하고 정말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났다면 이런 사람, 싫지 않았을 것 같다. 고집은 세고 말귀는 좀 느려도 책임감은 넘치고, 허술한 면도 있어서 소주 한잔하면 정이 철철 넘칠 것 같은. 

 그러나 청문회에 설 때는 사인(私人)으로서가 아닌 공인(公人)으로 서야 했다. 세월호 참사라는 거대한 비극을 잉태한 것도, 결국은 본분을 망각한 숱한 공인들이었다. 그 과오와 염치를 안다면 적어도 인권 운운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비단 김문홍 전 서장 뿐만이 아니다. 책임자로 지목된 이들 모두 가정에서는 좋은 아버지고, 좋은 배우자였을지 모른다. 그래서 본인들은 억울할지도 모른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수행했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알량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그들의 무신경이, 결과적으로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낮과 밤을 앗아가 버렸나. 얼마나 많은 유가족과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을 할퀴고, 무너뜨리고, 이  사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말았나. 

 ● 소소한 ‘악’(惡)이 모여 거악을 이룬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자신의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금은 너무나 유명해진 이 구절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홀로코스트 주범들에 관한 이야기다.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수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한 이들이 사이코패스나 광신도가 아니라, 사실은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아이러니. 명령에 순응하고 주어진 일에 충실했던 ‘보통 사람’들이, 인류 역사에 다시 있어서는 안 될 거악(巨惡)을 저지른 셈이다.
세월호 특조위 1차 청문회 / 사진=연합뉴스
이미 수없이 나온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사고 600여 일이 지나 열린 청문회에서 다시 한 번 우리 곁의 변하지 않는 거악을 마주한다. ‘거악’이라는 호칭에도 격이 있다지만, 평생 잊히지 않는 자식들을 가슴에 억지로 묻은 부모 앞에서 자신의 인권을 주장하고 물속에 잠긴 아이들을 두고 철없음을 탓하는 몰염치와 무신경은 결과적으로 ‘거악’에 다름 아니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참사 앞에서 타성에만 갇혔던 사람과 시스템, 그 소소한 ‘악’(惡)이 모여 거악을 빚어냈음을 다시 한 번 새긴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경계할 것은 우리 가운데 누구나 또 다시 커다란 악(惡)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지켜보았듯, ‘그럴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이 시스템의 변화 없이는 개인의 도덕성과 상관없이 누구나 비슷한 참사의 주범이 될 수 있다.

이제 발을 뗀 청문회가 드러난 누군가를 꾸중하고 탓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실을 반성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기 위함이라는 걸 감안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만의 논리’에 갇혀 세월호를 방조하고 여전히 발전 없는 모든 주체가 우리 사회의 잠재된 거악일 수 있다. 사고 608일이 지나 열린 청문회에서도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많은 것들을 재확인한다. 앞으로도 세월호를 기억하고 주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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