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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턱수염을 되찾은 '투탕카멘'

[월드리포트] 턱수염을 되찾은 '투탕카멘'
이집트하면 피라미드만큼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이 ‘투탕카멘’이죠. 어릴 적 TV에서 해주는 토요명화나 명절에 방영하는 외화로 ‘파라오의 저주’란 영화를 본 기억이 납니다. 고대 이집트 파라오(왕)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저주를 받아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제게 ‘미이라 = 귀신’의 공식을 만들어준 영화였습니다. (실제로 발굴에 참여한 22명이 죽었는데 대부분이 발굴이 끝난 한참 뒤에 죽어서 저주와는 별 관계가 없다는 걸 사회인이 돼서야 알았습니다.)
턱수염을 되찾은 '투탕카멘'
말이 나온 김에 ‘투탕카멘’에 대해 살짝 짚고 넘어가죠. 투탕카멘(영어로는 Tutankhamun)은 ‘투트 앙크 아문(아멘)’이란 원래 이름을 편하게 줄여 부른 말입니다. 투트=이미지, 앙크=살아있는, 아문=태양신 이란 뜻인데, 풀어쓰면 ‘태양신의 살아있는 이미지’라고 보시면 됩니다. 투탕카멘은 고대 이집트 18대 왕조의 12대 왕이었습니다. 기원전 1300년전 인물입니다. 9살에 대제국의 파라오가 됐지만 18세에 요절했습니다.

사망 이유에 대해선 정확히 밝혀진 게 없는데 전차 경주 중에 사고로 죽었다라는 설이 유력했었죠. 그런데 최근에 이 투탕카멘의 미라를 컴퓨터로 분석했더니 발이 안으로 휘는 내반족을 가진 데다 심한 뻐드렁니라서 발음도 정확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왔습니다.

그의 무덤에 150개의 지팡이가 발견됐는데 걷디 힘들었던 투탕카멘이 썼던 것이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이런 장애는 왕족의 혈통 유지를 위해 근친상간이 무분별하게 이뤄지면서 생긴 선천병 유전병이라고 학계는 보고 있습니다.
투탕카멘 내반족…내반족을 앓았을 것이란 투탕카멘의 복원그래픽
그다지 업적도 없이 젊은 나이에 요절한 젊은 파라오가 왜 이리 유명할까요? 1922년 이집트 룩소르의 ‘왕가의 계곡’에서 그의 무덤이 발굴되면서입니다. 당시 워낙 도굴이 심해서 피라미드는 물론 파라오의 무덤에 별로 남아 있는 게 없었는데, 이 투탕카멘의 무덤만이 유일하게 온전히 보존된 채로 발굴이 됐고 3천년 전의 고대 유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유명해 진 거라고 합니다. (젊은 파라오였기에 무덤이 다른 왕에 비해서 그다지 크지도 않다고 합니다.)

‘투탕카멘’ 하면 ‘저주’ 다음으로 떠오르는 게 ‘황금가면’입니다. 이집트 파라오를 상징하는 대명사죠. 이 황금가면을 파라오가 직접 쓰고 다닌 건 아니고요. (설마 정말로 쓰고 다녔다고 믿고 계신 분은 없으겠죠?) 죽어서 쓴 겁니다. 파라오가 죽으면 내장을 빼고 몸에 소금을 채워 미라로 만든 뒤 관에 넣기 전에 의복을 입히고 얼굴에 씌운 게 바로 이 황금가면입니다.

이집트는 프랑스와 영국에게 온갖 수탈을 당했죠. 나폴레옹께서는 오벨리스크를 잘라다 배로 실어서 파리 광장 한 가운데에 박아놓으셨고, 대영박물관에는 미라의 본고장 이집트에서도 보기 힘들다는 미라가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까요.

대영박물관이 워낙 다른 나라에서 약탈한 유물로 가득 채워놓아서 그저 미안한 마음에 관람이 무료라고 하죠? 하여튼 누구도 절대 들 수 없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같은 건축물 빼고 이제 이집트에 남은 유물 가운데 명함을 내밀만한 건 이 ‘투탕카멘의 황금가면’ 정도뿐입니다. 얼마나 애지중지하겠습니까? 이집트 1파운드 동전에도 이 투탕카멘의 황금가면이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1백원 동전에 새겨진 이순신 장군 급입니다.)
 이집트 1파운드 동전에 새겨진 투탕카멘 황금가면

이 황금가면은 카이로 시내 중심인 이집트 국립박물관에 전시돼 있었는데, 보려면 박물관 입장료와 별도로 돈을 또 내야 볼 수 있습니다. 이집트에선 주요 관광지의 입장료가 내국인과 외국인 다른데, 내국인이 300원이면 들어가는 곳을 외국인은 2만 원은 줘야 들여보내줍니다.

아마 제 기억으로는 이 황금가면을 보려면 1만원 정도를 더 내야 할 겁니다. (뭐 그래서 이집트에선 ‘외국인은 알라가 주신 가장 큰 선물’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지만요.) 솔직히 이집트 국립박물관에 가이드 없이 가시면 그 많은 유물이 순 돌덩이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가면’이라도 봐야, 아! 내가 뭘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 테니 웃돈을 주고서라도 볼 수 밖에요.

그런 복덩이같은 ‘황금가면’이 뜻밖에 수난을 겪었습니다. 지난 1월부터 장장 11개월간 전시가 중단됐다가 지난 12월 16일 힘들게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어찌된 사연인고 하니, 사건은 지난 해 8월 벌어졌습니다. 투탕카멘의 황금가면을 비추던 조명을 고치던 중 박물관 직원이 그만 이 귀하고 귀한 황금가면을 바닥에 떨어뜨린 겁니다.

그러면서 청색과 금색으로 꼬아진 턱수염이 ‘똑’하고 부러진 겁니다. 분명 하급 직원이었을 텐데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 했겠죠. 이 분이 어떻게든 되돌려 놓으려는 생각에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 못할 ‘긴급처방’을 내립니다.

다름아니라 ‘순간 접착제’로 불리는 ‘에폭시’ 접착제로 턱수염을 갖다 붙인 거죠. 순간 접착제라면 붙으라는 건 잘 안 붙고 애먼 손가락만 붙어버리는 얄궂은 투명접착제를 말합니다. 그런데 무거운 금덩이 턱수염이 잘 붙겠습니까? 그러니 또 왕창 발랐고 결국 용액이 밖으로 삐죽삐죽 튀어나와 흉물스러운 자국이 남게 됐습니다.
순간접착제로 붙인 턱수염, 접착제 자국이 선명
박물관은 한술 더 떴습니다. 이걸 유물부에 보고도 하지 않고 쉬쉬하고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비싼 웃돈을 주고 들어와 본전을 뽑을 기세로 황금가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관광객의 ‘매의 눈’을 비켜갈 수는 없었습니다.

엉터리 복원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면서 결국 지난 1월 이집트 국립박물관측이 두 손을 들었습니다. ‘걸출한’ 유물에 적합하지 않은 접착제를 썼다며 황금가면의 전시를 중단하고 정밀 복원에 나선 겁니다.

독일의 유물 복원 전문가들이 초빙됐습니다. 접착제를 떼어내는 것부터 다시 턱수염을 원위치로 부착하는 데 두 달이 걸렸습니다. 여기서 복원팀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는데요. 고대 이집트인들이 무거운 금덩이 턱수염을 어떻게 얼굴에 붙였을까?에 궁금증이 풀린 겁니다.

일단 턱에 짧은 원통 모양의 지지대를 붙입니다. 지지대의 둘레는 턱수염보다 약간 짧게… 그런 뒤 끈적끈적한 벌꿀 왁스를 바른 뒤 턱수염 부분을 꽉 맞게 끼우는 겁니다. 용접 기술이 없는 3천 년 전 고대 이집트인의 지혜가 세상에 드러나게 됐습니다.
고대 이집트 기술을 이용해 복원된 투탕카멘의 턱수염
'턱수염 달고 돌아온 황금가면’을 공개하는 자리에 정말 이집트 언론은 물론 각국의 외신기자들까지 수백 명이 몰렸습니다. 복원 전문가와 유물부 장관의 일장연설이 이어졌고 열띤 취재경쟁도 이어졌습니다.

여기까지 좋습니다.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이날 행사의 주인공인 ‘돌아온 황금가면’을 촬영하는 기회를 주기로 했는데, 전시공간이 협소한 관계로 5명씩 5분간 차례로 들어가 촬영을 하도록 했습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순서는..............?

‘없답니다.’ 선착순! 박물관 1층 로비에서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취재진은 너나 할 것 없이 카메라를 들고, 삼각대를 들고, 절반은 아예 삼각대도 버려두고 2층 전시실로 ‘우사인 볼트’처럼 내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선마이크를 챙겨 넣고 삼각대를 접고 카메라를 들고 달려가면서 생각했습니다.

“와, 기자들이 이렇게 많이 왔는데 줄이 엄청 길게 섰겠구나. 난 언제 들어가려나?” 그런데 웬걸, 전시장 앞에 도착했는데 줄이 없습니다. 줄 대신 눈앞에 보이는 건 ‘한 뭉텅이’로 굴러갈 듯이 엉켜있는 사람들뿐입니다. 전시실 입구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서려는 치열한 몸싸움과 고함소리가 난무하면서 그야말로 좁은 탈출구로 서로 먼저 빠져나가려는 생존경쟁 같은 몸부림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들어가려는 자와 이를 막아서는 자, 뒤에서 무작정 밀려들면서 앞에서 터지는 비명소리, 그 사이에 철창 틈새로 황금가면을 찍어보려는 자까지 ‘아비규환’이 따로 없더군요.
투탕카멘 취재진
이 와중에 박물관의 대응은 더 가관이었습니다. 줄을 세우기 보단 내 마음 드는 대로 골라서 들여보내주기를 하더군요. ‘mbc 마스리’(우리나라 말고) 처럼 이집트에서 좀 알려진 언론사는 무사통과… 이러자 갑자기 나도 ‘mbc’라는 고함이 터져나오고 급기야 멱살잡이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리저리 밀리고 부대끼면서 드는 생각 ‘여기 기자들도 방송에서는 이집트인이 질서를 안 지킨다고 훈계하겠지?’ (이집트인은 줄 안 서기로 유명하거든요.)

행사가 난장판이 되든 말든 알게 뭐야 식으로 진행하는 박물관을 보고, ‘이러니 세계적 유물을 순간접착제로 붙일 생각을 하는구나’ 싶은 쓸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집트는 아직도 ‘관(管)’이 ‘민(民)’ 보다 위에서 군림하는 나라입니다. 그렇다 보니 관공서에서 대민 서비스는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서비스는 고사하고 뒷돈에 따라 일 처리가 달라지는 나라입니다. 이렇다 보니 국가기관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희생과 봉사보단 권위와 군림을 우선시 합니다. 이런 이들이 관리하는 문화유산이 제대로 보존되길 바라는 건 무리일 지 모릅니다.

투탕카멘 턱수염 사건을 이집트에선 단순히 ‘무지한’ 직원의 실수로 치부하는 분위기지만, 한 걸음 떨어져 보는 제 눈에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사회 구조와 인식이 문제로 보입니다. 내일은 어떻게 되든 오늘만 잘 넘기면 된다. 미래에 대한 투자보단 오늘의 이득이 중요하다. 오랜 경제난과 사회불안으로 자신도 모르게 몸에 스며든 인식이 결국 미래 가치를 위한 투자와 보존의 개념을 사라지게 만든 것은 아닐까요?  

▶ 청소하다 턱수염 '툭'…돌아온 투탕카멘 황금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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